관립공업전습소

  • 과학
  • 단체
  • 대한제국기
1907년 대한제국기에, 공업 기술을 교육하고 전파하기 위해 설립된 초보적인 공업 교육 기관이자 과학 기술 교육 기관.
이칭
  • 이칭경성공업전문학교 부설 공업전습소, 조선총독부공업전습소, 중앙시험소 부설 공업전습소
단체
  • 발간지공업계
  • 설립 시기1907년
  • 설립자대한제국 농상공부
  • 설립지한성
  • 소재지서울특별시 종로구
  • 전신관립농상공학교 공업과
  • 해체 시기1922년
  • 후신경성공업학교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김근배 (전북대학교 과학학과)
  • 최종수정 2024년 08월 05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관립공업전습소는 1907년 대한제국기에, 공업 기술을 교육하고 전파하기 위해 설립된 초보적인 공업 교육 기관이자 과학 기술 교육 기관이다. 이 기관은 비록 그 수준이 하급 기술에 치중하였으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과학 기술 교육 기관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정의

1907년 대한제국기에, 공업 기술을 교육하고 전파하기 위해 설립된 초보적인 공업 교육 기관이자 과학 기술 교육 기관.

설립 목적

전통적인 가내공업의 개량 및 육성을 이끌 하급 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공업 정책 수립에 필요한 기초적인 조사 시험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및 현황

조선 정부는 1899년(광무 3) 관립상공학교(官立商工學校) 관제를 공포하였으나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다가 1904년(광무 8) 관립농상공학교(官立農商工學校)로 개편하면서 그 운영을 시작하였다. 통감부(統監府) 설치 이후 1907년(광무 11) 농상공학교 공업과(工業科)가 일본인 전문가들의 개입 속에 관립공업전습소(官立工業傳習所)로, 농업과(農業科)와 상업과(商業科)는 각각 수원농림전문학교(水原農林專門學校)와 선린상업학교(善隣商業學校)로 분리되었다. 설치 학과로는 염직(染織), 도기(陶器), 금공(金工), 목공(木工), 응용 화학(應用化學), 토목(土木) 등 6개의 과가 있었다. 1년 과정의 실과(實科)와 2년 과정의 본과(本科), 그리고 본과를 마친 후 진학하는 전공과(專攻科)를 두어 운영하였다. 이후 관립공업전습소는 1910년 조선총독부공업전습소(朝鮮總督府工業傳習所), 1912년 중앙시험소(中央試驗所) 부설 공업전습소,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京城工業專門學校) 부설 공업전습소로 명칭이 바뀌었고 1922년 경성공업학교(京城工業學校)로 승격되었다.

주요 활동

관립공업전습소는 일본인 소장과 교사들의 주도 하에 운영되었다. 공업가의 자제 또는 장래 공업에 종사할 의향이 확고한 남자들을 대상으로 모집을 하였는데 경쟁률이 높았다. 학생들에게는 기숙사와 교복, 필기류 등의 경비로 사용할 수당이 지급되었다. 공통 과목으로 물리, 화학, 수학, 도화, 일본어, 영어가 교육되고, 전공과목에 대한 강의와 함께 특별히 실습에 중점이 두어졌다. 매년 봄과 가을에는 제작품 진열회를 개최하였고, 전국의 공업 현장을 방문하여 기술 지도를 하였으며, 주요 공업품 및 원료에 관한 「시험조사 보고서」도 발간하였다. 1915년까지 졸업생은 본과 344명, 실과 251명, 전공과 61명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관리로 가장 많이 진출하였고 자영 및 공장 취업, 전습 교사나 조수(助手) 등이 그 다음 순서를 나타냈다. 공업 종사자는 단기 과정인 실과를 통해 많이 나오게 되었다.

한편, 1908년(융희 2)에는 학생들이 사회 저명인사들의 후원을 받아 ‘국부민강(國富民强)을 이뤄 독립권을 회복’하려는 취지로 공업연구회(工業硏究會)를 조직하였다. 공업연구회는 공업 기술 연구와 연구 성과 강연, 초청 인사 연설, 월보 『공업계』 발간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의 잡지 발간 금지와 활동 억압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졸업생 중에서는 김용관(金容瓘)과 박장렬(朴璋烈) 같은 선구적인 과학 기술자, 박찬익(朴贊翊)김약수(金若水) 같은 명망있는 독립운동가가 나왔다.

의의 및 평가

공업전습소는 비록 일제의 개입 속에 운영된 초보적인 과학 기술 교육 기관이지만, 이곳 졸업생과 공업연구회, 잡지 『공업계』 등은 우리나라 근대 과학 기술의 효시를 이룬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관립공업전습소일람(官立工業傳習所一覽)』 (관립공업전습소, 1909)

  • - 『관립공업전습소보고 제1회(官立工業傳習所報告 第1回)』 (농상공부, 1909)

  • - 『조선총독부공업전습소일람(朝鮮總督府工業傳習所一覽)』 (조선총독부공업전습소, 1915)

  • 논문

  • -김근배, 「대한제국기-일제 초 관립공업전습소의 설립과 운영」 (『한국문화』 18,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996)

  • -서희정, 「관립공업전습소의 용기화교육과 주체성 고찰: 농상공부소관 『관립공업전습소일람』(1909)의 검토를 통해서」 (『인문과학연구』 45,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2)

  • -최공호, 「관립공업전습소 연구」 (『한국근현대미술사학』 8,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0)

주석

  • 주1

    : 천에 물을 들임. 우리말샘

  • 주2

    :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시작되어 나온 맨 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자≫의 <재유편(在宥篇)>에 나오는 말로, 전쟁을 시작할 때 우는살을 먼저 쏘았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