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3월 조선총독부 전문학교관제가 공포되면서 기존의 농림학교가 개편, 발족된 것이 3년제 농업전문학교이다. 수원농림학교의 시초는 1904년 9월 대한제국 학부가 한성부 수진동에 설치한 농상공학교(農商工學校)의 농과이다.
1906년 9월 10일 농과를 독립시켜 농상공부가 관장하는 농림학교로 학교 이름을 변경하였으며, 1907년 1월 수원에 교사를 신축, 이전하였다. 1908년에 수의학 속성과를 증설하고, 1910년에는 일제의 한국병합에 따라 농림학교를 권업 모범장에 부속시키고 권업 모범장장이 교장을 겸임하도록 하였다.
1918년에는 다시 권업 모범장에서 독립하여 수원농림전문학교로 개편되었고, 1922년 3월에 수원고등농림학교로 개칭되었다. 1927년 6월 실업보습학교 교원양성소가 부설되고 이어 1928년 4월에 실업보습학교가 부설되었다.
1936년 7월부터 농업교원양성소를 겸하게 하였으며, 1937년에는 수의축산과가 증설되었다. 1942년부터는 지리 · 박물(博物) 교원을 양성하였고, 1943년 농업토목과가 증설되었다.
1944년 4월 7일 학교관제 개정으로 다시 수원농림전문학교로 개칭되었다. 따라서 1918년부터 1921년까지의 전기 농림전문학교 시기와 1944년부터 1946년까지의 후기 농림전문학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 농림학교가 설립된 후 12년 만인 1918년 농림전문학교로 승격된 것은 당시 주종산업인 농업의 발전을 위한 기술요원 양성이 절실하였기 때문이다. 1918년 전문학교로 개편되면서 권업 모범장 소관에서 학무국 관할로 되고 시설 확충과 기구 개편이 이루어져, 이로부터 농학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농업전문 기술인을 양성하게 되었다.
1920년 전문학교과정으로 한국인 11명, 일본인 7명의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22년 전문학교가 고등농림학교로 바뀌고, 그 전의 농과 단과제에서 농학 · 임학 두 과로 분리, 운영되었다. 또한 그 전의 관비제에서 자비제로 바뀌었으나 교과 운영 등은 별 변동이 없었다.
재학생의 구성비율은 대체로 한국인 1인에 대해 일본인 2인이었다. 졸업생 중 장면(張勉) 등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으며, 고농사건(高農事件) 등 학생 애국운동도 있었다.
광복 후 1945년 11월에 대구농림전문학교를 병합하였다가 이듬해 3월 다시 분리하였으며, 농화학과가 증설되고 임시 생물 중등교원 양성과가 설치, 운영되었다. 1946년 8월 국립 서울대학교가 발족되면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병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