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의사로 활동하다가 제4대, 제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정치인. 의료인.
인적사항
주요 활동
이승만 정권 붕괴 이후 치러진 1960년 제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재선되었다. 원주시에는 3대 국회의원 함재훈과 강원도의회 의원이었던 민주당 구파 조한규 등이 출마하여 갈등이 치열하였는데, 이들을 제치고 당선되었다. 1961년 1월 민의원 보건사회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고, 민주당 강원도당 위원장을 맡았다. 신파와 구파의 파벌 갈등이 심했던 민주당에서 신파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분류되었다.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원주에서 의사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정계에 복귀하여 1963년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 제15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66년 민중당 강원도당이 결당되었을 때 고문으로 선출되었다. 1969년에는 3선개헌 반대 국민투쟁위원회의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1978년 1월 12일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 자택에서 8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원주창씨계출자 모두 이백여명」(『조선일보』, 1940. 6. 13.)
- 「의사 박충모씨 강원공의로 취임」(『조선일보』, 1927. 9. 7.)
- 「의사가 모히 밀매하고」(『조선일보』, 1926. 12. 5.)
단행본
- 『원주시 50년사(1955~2005)』(원주시 50년사 편찬위원회, 2005)
- 『원주시사 역사편』(원주시사 편찬위원회, 2000)
인터넷 자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근현대인물자료](https://db.history.go.kr/modern/im/level.do)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