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최규하는 일제강점기~현대에 만주국 관료, 대한민국 국무총리, 제10대 대통령 등을 역임한 관료이다. 농림부에서 근무하다가 1951년 외무부 통상국장을 시작으로 오랜 기간 외무부에 종사하였다. 1976년 3월 제12대 국무총리에 임명되었고, 1979년 10·26사태로 인해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자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았다. 1979년 12월 6일 제1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단독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2월 12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군사 반란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1980년 8월 16일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현대, 만주국 관료, 대한민국 국무총리, 제10대 대통령 등을 역임한 관료.
인적사항
주요 활동
1951년 외무부 통상국장을 시작으로 오랜 기간 외무부에 종사하였다. 1951년 UN ECAFE[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 무역진흥회 수석대표, 1952년 주일 한국대표부 총영사, 1957년 주일 한국대표부 참사관, 1958년 제4차 한일회담 대표, 1959년 주일 한국대표부 공사 · 외무부차관 · 외무부장관 직무대행 등을 지냈다.
박정희 정권기에는 1963년 외무부 본부대사 겸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외교담당고문, 1964년 주말레이시아연방 특명전권대사 등을 거쳐 1967년 외무부장관에 임명되었다. 1971년 대통령 외교 담당 특별보좌관,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대표이자 서울 측 위원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1975년 국무총리 서리에 이어 1976년 3월 제12대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1979년 10·26사태로 인해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자 국무총리였던 최규하는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았다. 직후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하여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으며, 김재규를 중앙정보부장에서 면직하고 전두환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하였다.
1979년 11월에는 현행 유신헌법에 따라 새 대통령을 선출한 후 빠른 시일 내에 헌법을 개정해 민주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하여 논란이 있었다. 이에 따라 대통령선거는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선거로 치러지게 되었고, 1979년 12월 6일에 있었던 제10대 대통령선거에서 유일하게 입후보한 최규하 대통령 직무대행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12월 12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군사 반란으로 인해 대통령으로서의 실권이 없었고, 당선 후 약 8개월 만인 1980년 8월 16일에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대통령 사임 이후 국정자문회의 의장,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6년 10월 22일 급성심부전으로 사망하였다.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논란과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한국대통령 통치구술사료집 1: 최규하 대통령』(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 선인, 2014)
논문
- 박진현, 신재철, 「최규하 대통령 연구: 정치적 행보와 평가를 중심으로」(『한국과 세계』 6-2, 한국국회학회, 2024)
인터넷 자료
- [최규하대통령기념사업회](http://www.choikyuhah.or.kr)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