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음력 7월 10일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죽포(竹圃)이다. 아버지는 목사이자 1948년 제헌국회 국회의원에 당선된 오관택으로,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부인은 신재덕이며, 1942년 결혼하였다.
5세 때 서울로 이주하였다가 아버지 오택관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사카[大阪]의 기독교계 학교 도산중학(挑山中學)을 다녔고, 1937년 릿쿄대학[立敎大學] 경제학부에 입학하여 1941년 졸업하였다. 이후 화신백화점에 취업하여 박흥식 사장의 비서로 일하였다. 1944년에는 조선총독부 산하 중앙시험소 서무주임이 되었다.
해방 후 미군정청 보건후생부 후생시설국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감찰위원회 정인보 위원장의 비서과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전쟁기에는 내무부 총무과장, 허정 총리서리 비서관, 김법린 문교부장관 보좌관을 맡았다.
1955년 국무원 사무국 차장을 역임하였고, 1956년 7월 36세의 젊은 나이에 공보실장으로 임명되어 1959년 1월 말까지 활동하였다. 공보실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법령의 공포, 정보, 선전, 인쇄, 신문 · 잡지 및 기타 정기간행물과 방송 관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다. 언론 통제 조항이 포함된 국가보안법이 자유당 단독으로 통과된 2·4파동 직후 공보실장에서 물러났다.
이승만 정권 붕괴 직전인 1960년 3월 31일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으로 임명되어 1961년 1월까지 일하였다. 5·16군사정변 후인 1961년 7월에는 공보부장관으로 임명되었고, 1962년 6월에 물러났다. 1964년 1월 국제관광공사 총재에 취임하였으며, 같은 해 3월에는 태평양지구관광협회[PATA] 회장, 4월에는 한국관광협회 회장에 선출되었다.
극동방송국 이사장을 시작으로 기독교방송에도 종사하였다. 1970년 CBS기독교방송의 운영이사장에 취임하였고, 이 시기에 한국관광협회장, 국제광고협회 한국 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언론인기금 이사장, 체육진흥재단 이사장, 실명예방협회 초대 이사장, 세방여행사 명예회장, 군복음화 후원회 초대 총무, 재단법인 언어교육 이사장 등을 겸직하였다.
1983년에는 동아일보 대표이사를 역임하였고, 말년에는 USO 한국재단, 국제로타리, 플랜인터내셔널 운동 등에 참여하며 봉사활동을 하였다. 2012년 6월 27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저서로 『수상(隨想) 22년』[범서출판사, 1973], 『죽포문집(竹圃文集): 대나무밭 정경』[문학사상사 출판부, 1977], 『로타리, 나의 보람』[죽포로타리문집간행위원회, 200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