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동만화자율회(韓國兒童漫畵自律會)는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만화에 대한 심의(審議)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로 만화가들과 출판업자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명분은 자율적인 심의를 통해 불량만화(不良漫畫)를 근절하고 만화의 질을 높인다는 것이었으나 사실상 만화 원고에 대한 사전심의로 만화 표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완성된 만화 원고를 심의하고 심의를 통과한 원고는 심의필 마크를 붙여 출판되었다. 원칙적으로 심의를 통과하지 않고는 책으로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만화는 원고 단계에서 심의를 꼭 받아야 했다.
한국아동만화자율회 설립 이전의 만화심의는 유료 심사 방식으로, 일부 심사위원의 편파적인 심의 등 불공정성이 문제가 되자 1968년 9월 9일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韓國兒童漫畫倫理委員會)가 설립되었고 사전심의 업무는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로 이관되었다. 만화 사전심의(事前審議) 제도는 1997년 사후심의로 전환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만화가와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국아동만화자율회가 결성되면서 만화는 원고 상태에서 엄격한 사전 심사를 받아야 했고 심의에 통과한 원고만 출판될 수 있었다. 아동 만화가들은 모두 한국아동만화자율회에 가입해야 했고 한국아동만화자율회에 가입된 만화가에 한해 만화 원고를 심사받을 수 있었다. 원고의 사전심의 없이는 만화가 출판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자율이 아닌 강제 심의였다. 초기의 심사는 원로 만화가들이 담당했으나 심사 업무가 많아 작품 활동에 지장을 주자 문화계의 인사들을 초빙해 월급을 지급하고 심사를 맡기게 된다. 한국아동만화자율회에 가입된 출판사가 심의를 독점하는 관행이 생기고 이에 반발하는 출판사들이 늘어나면서 만화의 사전심의를 위해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가 설립된다.
한국아동만화자율회의 설립은 만화에 대한 사전심의가 시작된 계기였다는 점에서 한국만화 발전을 저해했다고 평가받는다. 만화의 사전심의는 만화를 아동용으로만 머무를 수밖에 없게 했다. 표현의 제약이 상당히 심했고 심의 기준 또한 모호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활동한 만화가 상당수는 당시 만화심의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