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뉴스 (news)

만화
문헌
1949년 3월, 주간지로 창간되어 한국전쟁 전까지 1년여간 발행된 시사만화잡지.
문헌/연속간행물
창간 연도
1949년
종간 연도
1950년
간행주기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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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만화뉴스』는 1949년 3월 주간지로 창간되어 한국전쟁 전까지 1년여간 발행된 시사만화잡지이다. 주간신문 형태였으며 김용환이 창간을 주도했다. 김성환, 신동헌, 김의헌 등의 만화가가 『만화뉴스』 지면에서 활동했다. 발행 당시 높은 인기를 얻었으나 일부 필진이 이탈하여 『만화신문』을 창간하면서 발행 부수가 감소하였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잡지 발행이 중단되었다.

정의
1949년 3월, 주간지로 창간되어 한국전쟁 전까지 1년여간 발행된 시사만화잡지.
창간 경위

1948년 9월 창간되었으나 이승만(李承晩) 정부를 비판(批判)하고 풍자(諷刺)하는 내용이 문제가 되어 2호 만에 폐간된 주간 시사만화(時事漫畫) 잡지 『만화행진(漫畫行進)』의 창간을 주도한 김용환(金龍煥)이 『만화행진』의 뒤를 이어 새롭게 창간한 시사만화 잡지가 『만화뉴스(漫畫news)』이다. 김용환이 새로운 잡지 창간을 위해 만화뉴스사(漫畫news社)를 설립했고 편집주간은 송태식(宋泰植)이, 편집국장은 박수산(朴首山)이 맡았다. 주간신문(週刊新聞) 형태로 창간되었으며 한국전쟁(韓國戰爭) 직전까지 1년여간 발행되었고 발행 당시 높은 인기를 얻었다.

구성과 내용

『만화뉴스』는 시사만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창간을 주도한 김용환을 비롯해 고바우 영감으로 한국 신문 만화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김성환(金星煥), 훗날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약하는 신동헌(申東憲), 김용환의 동생이자 일본에서 삽화가로 활동했던 만화가 김의환(金義煥) 등이 『만화뉴스』 지면에 작품을 발표했다. 이들 주요 필진은 이후 시사만화뿐 아니라 명랑만화(明朗漫畫), 학원만화(學院漫畫), 신문 네칸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한국 현대 만화의 기틀을 다진 작가들이라는 데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변천 및 현황

김성환의 회고에 의하면 『만화뉴스』는 최고 7만 5천 부를 찍으며 높은 인기를 얻었으나, 내부 문제로 김용환을 비롯한 일부 필진이 이탈해 『만화신문(漫畫新聞)』을 따로 창간하면서 발행 부수가 반감하였다. 경쟁잡지인 『만화신문』과 발행 부수를 반씩 나눠 갖게 되었기 때문인데, 발행 부수가 감소한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잡지 발행은 중단되었다.

의의 및 평가

『만화뉴스』는 창간 초기에 4만 5천 부, 전성기 7만 5천 부가 발행되었다. 『만화뉴스』의 성공은 이후 다양한 시사만화 잡지가 창간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만화뉴스』의 성공에 영향을 받아 창간된 시사만화 잡지는 실력 있는 신인 작가들을 발굴했고, 이들이 다양한 지면에서 활동하며 시사만화와 풍자만화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만화뉴스』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 한국전쟁의 발발로 만화잡지와 만화 출판의 맥이 끊기지만, 이후 잡지와 신문 발행이 정상화하면서 다양한 만화 지면이 부활한다. 『만화뉴스』의 성공 사례가 있었기에 한국의 시사만화는 언론의 탄압과 검열, 표현 규제에도 꾸준히 발전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손상익, 『한국만화통사 하』(시공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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