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 한국 만화가 다양한 장르로 분화해 발달하는 과정에서 어린 여학생을 주요 독자로 하는 순정만화(純情漫畫)가 등장했다. ‘순정(純情)’은 사전적 의미로 순진한 마음, 참되고 맑은 사랑을 의미하며 한국 최초의 순정만화는 1957년 발행된 한성학(韓成鶴)의 『 영원한 종(永遠한 鐘)』이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으로 헤어진 혈육을 찾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원한 종』은 세 명의 어린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전쟁으로 인한 이별, 가난하지만 착한 소녀, 소녀를 시기하고 괴롭히는 반 친구, 권선징악적 결말 등을 주요 서사로 한다.
『영원한 종』 이후 권영섭(權榮燮)의 『 울 밑에 선 봉선이』 의 성공은 순정만화가 주요 장르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10대 초반의 소녀 봉선이가 겪는 고난을 그렸다. 이 작품의 인기는 ‘봉선이’를 작품의 제목에 넣은 다양한 후속 작품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초 순정만화는 주로 남성 작가가 창작했으며, 조형적인 특징보다는 슬프고 가난한 여자아이가 부딪히는 여러 고난의 서사에서 장르적 특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1964년 여성 작가인 엄희자(厳喜子)가 그림을 그리고 조원기(趙元基)가 서사를 구성한 만화 『 행복의 별(幸福의 별)』이 등장하면서 순정만화는 시각 표현에 큰 변화가 생긴다. 엄희자의 등장 이후 순정만화는 커다란 눈과 가늘고 긴 신체, 여자 주인공의 화려한 의상과 머리 모양, 다양한 칸 나누기 구성, 꽃 그림을 장식적 요소로 활용하는 연출 등 시각적 표현에서 다른 장르의 만화와 뚜렷한 차별성을 가지며 발전한다. 이러한 시각적 표현은 이후 순정만화 장르를 대표하는 특징으로 자리 잡는다.
엄희자 이후 민애니(閔애니), 송순히(宋順姬), 장은주[본명 장영자(張英子)], 윤애경[본명 조인요(曺仁堯)] 등 여성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순정만화는 주요 만화 장르 중 하나로 인기를 얻는다. 1960년대 중반 이후 판타지 설정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작품이 증가하면서 서사의 다양성이 생겨났지만, 1970년대 순정만화는 만화 표현에 대한 강한 규제로 인해 서사는 물론 특유의 화려한 인물 표현도 제약받았고 결국, 독자들에게 외면받는다.
1980년대에는 역사 속의 유럽이나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장대한 서사를 가진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는데, 이 시기 순정만화는 만화방용 단행본으로 주로 유통되었고 많은 작품이 10권 이상의 장편으로 출간되었다. 순정만화가 사랑 이야기를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만화에 대한 검열이 비교적 완화한 1980년대 이후로 특히 비극적인 장편 서사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1988년 한국 최초의 순정만화 전문잡지인 『르네상스』가 창간되면서 순정만화의 창작과 유통에 큰 변화가 생겼다. 『르네상스』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 다양한 순정만화 전문잡지가 창간되었고 이들 잡지는 신인 작가 발굴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잡지에 연재된 작품이 서점 판매용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만화 판매량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발표되는 작품 수가 증가하고 중견작가뿐 아니라 개성 있는 신진 작가들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전개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를 한국 순정만화의 황금기로 평가한다.
순정만화는 창작과 소비 모두 여성을 중심으로 하며 독특한 시각적 표현을 바탕으로 한다. 사랑 이야기뿐 아니라 매우 다채로운 서사가 전개된 장르이며 순정만화의 시각적, 서사적 특징은 여러 웹툰으로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