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섭은 ‘봉선이’ 시리즈로 1960년대 순정만화 시대를 열었던 작가이다. 경상북도 영주에서 태어나, 1958년 대구 『 매일신문』 신춘만화 공모전에 입선하면서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초기 한국 순정만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작품의 그림체는 명랑만화의 조형성을 따르고 있으나 착한 소녀의 고난을 그린 이야기 구조는 ‘전형적인 순정만화’의 서사를 띄고 있다. 특히, 권영섭은 ‘봉선이’ 라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울 밑에 선 봉선이」, 「봉선이하고 바둑이」, 「봉선이와 아나」라는 세 작품을 시리즈물로 제작하였다.
그는 1960년 다니던 교회에서 홍난파의 「울 밑에 선 봉선화」를 듣게 되면서 캐릭터에 ‘봉선이’라는 이름을 붙여,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권영섭은 「울 밑에 선 봉선화」가 우리 민족의 슬픔과 애환을 노래하고 있어 일제강점기에 금지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정신을 ‘봉선이’에 담고자 했다고 하였다.
권영섭의 ‘봉선이’ 시리즈에서 첫 번째 작품인 「울 밑에 선 봉선이」는 당시 순정만화 속 주인공의 서사와 다르지 않게 이야기가 전개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가곡인 「울 밑에 선 봉선화」를 모티브로 제작된 「울 밑에 선 봉선이」는 한국의 정서를 담고자 했으며, 이 작품은 한국전쟁의 고통을 표현하고자 했던 작품이었다. 그는 이런 주제를 표현하기 위하여 ‘봉선이’ 캐릭터를 앞세워 한국전쟁 이후 역경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렸다.
권영섭은 명랑만화의 그림체로 조형성을 표현하였고, 앵글이 눈높이에 고정이 되어 있어 앵글 각도의 변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는 1960년대 흔히 쓰였던 십자 모양으로 연결된 칸새를 쓰지 않고, 독자가 칸의 순서를 매끄럽게 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울 밑에 선 봉선이」는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동일하게,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착하게 사는 주인공의 이야기 서사를 갖고 있다. 봉선이가 부모님에게 돌봄을 받지 못하고,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것은 앞의 순정만화 서사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선이’는 초기 순정만화 주인공들과는 다르게 소년만화의 주인공들처럼 자주적이고, 주체적이다. 봉선이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울기만 하는 순응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상황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권영섭은 소녀를 주인공으로 초창기 순정만화를 개척했던 작가 중에 하나로 평가된다. 여성 작가가 많았던 1960년대 순정만화 장르에서 인기를 얻은 유일한 남성 작가로, 그의 작품은 순정만화 역사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