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찾아 삼만리」는 김종래가 1958년 세계문화사에서 펴낸 대표적인 시대극화이자 우리나라 만화 단행본 최초의 베스트셀러이다. 당시로는 기록적인 1만 5천여 부가 팔렸고, 1964년까지 10판이 재출간되는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다. 원화는 201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엄마를 찾아나선 어린 금준이의 파란만장한 삶이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만화 연출로 돋보이며, 극적 긴장감과 신파적 요소를 잘 활용한 작품이다. 김종래 특유의 동양화 풍의 그림체와 현대 만화 초창기의 극화체가 잘 어우러져 한국 현대만화사의 주요한 작품이다.
김종래[1927. 1. 17.~2001. 1. 28.]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일본 교토회화전문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으며, 1947년 한국으로 귀국, 1952년 육군본부 작전국 심리전과에서 선전용 전단 만화를 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만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만화잡지 『만화천국』에서 활동하다가 1952년 「붉은땅」으로 데뷔하였다. 역사적 소재를 바탕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한 고전극화나 전쟁 직후 피폐하고 비극적인 한국 사회상을 신파적 정서로 잘 녹여낸 작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적 동양화풍의 시대극화를 선도한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기록된다. 1978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만화작업을 중단했지만, 그는 만화가로 활약했던 25년간 약 500종, 1천 5백여 권에 이르는 작품을 펴냈다. 1996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공로상, 2001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붉은땅」[1952], 「박문수전」, 「눈물의 수평선」[1955], 「무정만리」[1956], 「복수의 칼」[1957], 「엄마찾아 삼만리」[1958], 「눈물의 별밤」[1960],「흑두건」[1961], 「마음의 왕관」, 「울지마라 은철아」[1962], 「조국」, 「효녀숙향」[1965], 「도망자」[1969], 「암행어사」[1970], 「우리들만세」, 「명랑가족」[1976] 등이 있다.
「엄마찾아 삼만리」는 김종래가 1958년 세계문화사에서 펴낸 대표적인 시대극화이자 우리나라 만화 단행본 최초의 베스트셀러이다. 당시 보기 드물게 고급스런 국판 양장본으로 제작되었으며, 상 · 하권 총 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서점 판매용 만화책이다. 「엄마찾아 삼만리」는 2013년 등록문화재 539호로 지정되었다.
‘김종래 만화 걸작선’이라는 이름으로 「엄마찾아 삼만리」[1964, 제일문고]로 출판, 이후 개작한 작품 「엄마찾아 머나먼 길」[1972, 상록문화사], 「엄마찾아 삼천리」[1980, 도서출판 홍문]까지 시리즈로 이어졌다.
초판본 「엄마찾아 삼만리」는 ‘그림소설’이라는 표제로, 긴 내레이션과 삽화 같은 극화체의 그림들이 한 페이지에 두 컷씩 삽입되어 있다. 인물들의 성격과 심리 묘사가 붓 끝의 섬세한 터치로 잘 표현되어 있다. 내레이션에서 표현된 인물의 심리가 다시 그림으로 재현되어 인물들의 풍부한 표정과 감정이 절묘하게 묘사되어 있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세밀하고 사실적인 그림체로 한국의 토속적 풍경을 배경 그림으로 제시하고 있어 전통극화라는 시대적 질감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술과 노름으로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아버지로 인해 팔려간 엄마를 찾아 전국을 떠도는 금준이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암행어사가 된다는 스토리로 입신출세담의 모티프를 바탕으로 한다.
엄마를 찾아나선 어린 금준이의 파란만장한 삶이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만화 연출로 돋보이며, 극적 긴장감과 신파적 요소를 잘 활용한 작품이다.
1958년 출간된 「엄마찾아 삼만리」는 상 · 하권 총 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국판 양장본으로 출간되었다. 떼기만화가 성행하던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고급화된 서점 판매용 만화책이다. 각 권 300환에 달하는 고가의 책이었지만 당시로는 기록적인 1만 5천여 부가 팔려나갔고 1964년까지 10판이 재출간되는 유례없는 기록을 세우며 우리나라 만화 역사상 최초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었다.
「엄마찾아 삼만리」는 김종래 특유의 동양화 풍의 그림체와 현대 만화 초창기의 극화체가 잘 어우러져 한국 현대만화사의 주요한 작품으로 언급되고 있다. 조항리는 김종래를 “붓과 펜의 심지에 눈물을 심은 듯 선생의 작품은 눈물의 색채를 띤다”고 회상한바 있다. 원화는 2013년 등록문화재[현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