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映像)』은 창간호에 창간사를 별도로 싣지 않았다.
창간 초기에는 논단이나 특집기사를 통해 당시로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진론, 사진과 미술과의 관계, 사진 산업의 현주소, 세계 사진사의 경향 등을 기사화하였다. 강운구, 이해선, 임응식, 정운봉, 홍순태 등의 작품을 소개하였고, 안준천의 영상미학과 사진 구도론, 최인진의 사진 사조에 관한 사진 이론 등을 수록하였다. 상업사진가 특집란에는 김한용을 비롯한 5인의 국내 광고 사진가가 소개되었다.
세계의 작가란에는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와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의 사진이 육명심의 해설과 함께 실렸다. 또한 특집란에는 세계 사진 사조를 실었는데, 육명심은 1850년대 구스타브 레일랜더(Gustave Rejlander)의 합성사진부터 1970년대 리처드 아베던(Richard Avedon)의 패션사진에 이르기까지 세계 사진 사조를 정리하여 소개하였다.
그러나 월간지로 바뀐 이후 시대성을 반영한 특집기사나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논단 등의 심층기사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해외 잡지의 작품을 단순 소개하거나 번역 기사를 반복 게재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 결과 국전 작가 위주의 작품이나 아마추어 사진가 대상의 사진 콘테스트, 사진 촬영과 암실 기법, 촬영지 소개, 외국 작가와 작품, 전시회 평, 눈요깃감의 누드사진 화보 등을 오랫동안 반복하면서 기존의 내용을 답습하는 경향을 드러내었다.
특히 『영상』은 1980년대 초반부터 대학 사진학과 출신의 사진가가 늘어나고 1980년대 후반부터 해외 유학파 사진가가 등장하자 취미 오락 수준의 잡지도 아니고 전문지도 아닌 다소 어정쩡한 편집 형식과 내용을 보여 주었다. 아마추어 작가, 전문 작가, 이론가 군(群)이 한데 어울려 그 어떠한 특색도 없이 복잡하고 혼란했던 당시 사진계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영상』은 1976년까지 부정기적인 계간 형식으로 발간되다가, 1977년부터 월간 형식으로 바뀌었다. 판형은 창간 당시엔 4×6변형판[187×172㎜]이었지만, 이후 4×6배판[257×182㎜]으로 변경되었고 페이지와 컬러 화보도 증가하였다.
『영상』은 한국 사진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의 사진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으나, 구독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영업상의 목적으로 아마추어 취향에 안주하는 양상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월간사진』과 함께 1980년대 중반까지 사진 잡지의 양대 축으로서, 한국 사진 역사의 산 증거이자 오늘날 한국 사진 문화를 가능케 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