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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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는 서기전 1세기~서기 6세기,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일부에서 형성된 작은 나라들의 연합이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존속하였다. 근래에는 전북특별자치도 동남부 일부 지역 혹은 전라남도 동부 일부까지 가야의 범주에 넣는 견해도 제기되며, 고대 한반도의 삼국에 이은 제4의 나라로 사국시대론이 주장되기도 한다. 가야의 기원은 삼한시대 변한 혹은 변진 12국 중 구야국이다. 해로상의 요충지로서 대방군에서 한반도 남부, 나아가 일본 열도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해상 교통의 결절지였다.
가야 (加耶)
가야는 서기전 1세기~서기 6세기,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일부에서 형성된 작은 나라들의 연합이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존속하였다. 근래에는 전북특별자치도 동남부 일부 지역 혹은 전라남도 동부 일부까지 가야의 범주에 넣는 견해도 제기되며, 고대 한반도의 삼국에 이은 제4의 나라로 사국시대론이 주장되기도 한다. 가야의 기원은 삼한시대 변한 혹은 변진 12국 중 구야국이다. 해로상의 요충지로서 대방군에서 한반도 남부, 나아가 일본 열도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해상 교통의 결절지였다.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 중엽경 일본열도의 왜가 한반도 남부로 출정해 가야와 그 주변을 정벌한 다음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였고, 이후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학설이다. 즉, 일본 관학자들을 중심으로 고대의 왜가 한반도 남부지역을 2세기에 걸쳐 경영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설의 근거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일본부'라는 표현이다.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임나일본부라는 어휘를 임나, 즉 가야를 경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의 통치기구라고 해석한다.
임나일본부설 (任那日本府說)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 중엽경 일본열도의 왜가 한반도 남부로 출정해 가야와 그 주변을 정벌한 다음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였고, 이후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학설이다. 즉, 일본 관학자들을 중심으로 고대의 왜가 한반도 남부지역을 2세기에 걸쳐 경영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설의 근거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일본부'라는 표현이다.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임나일본부라는 어휘를 임나, 즉 가야를 경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의 통치기구라고 해석한다.
「양직공도」는 중국 양나라 원제 재위 연간 소역이 백제사신의 행차를 그린 문서이다. ‘백제사신도’라고도 한다. 526년∼536년 무렵 양나라에 파견된 외국인 사절을 그림으로 그려 해설한 것이다.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는 12국의 사신 그림과 기록이 남아 있다. 사신의 모습과 복식은 각국의 특색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림에 따르는 기록은 그 나라의 상황과 중국과의 왕래 사실을 서술한 것으로, 『양서』 제이전의 서술과 부합한다. 특히 삼국시대 백제 사신의 모습과 그에 대한 기술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서 우리나라 학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양직공도 (梁職貢圖)
「양직공도」는 중국 양나라 원제 재위 연간 소역이 백제사신의 행차를 그린 문서이다. ‘백제사신도’라고도 한다. 526년∼536년 무렵 양나라에 파견된 외국인 사절을 그림으로 그려 해설한 것이다.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는 12국의 사신 그림과 기록이 남아 있다. 사신의 모습과 복식은 각국의 특색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림에 따르는 기록은 그 나라의 상황과 중국과의 왕래 사실을 서술한 것으로, 『양서』 제이전의 서술과 부합한다. 특히 삼국시대 백제 사신의 모습과 그에 대한 기술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서 우리나라 학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금관가야의 제1대(재위: 42년~199년) 왕.
수로왕 (首露王)
금관가야의 제1대(재위: 42년~199년) 왕.
순장은 왕과 귀족 등 권력자가 사망하여 무덤에 매장될 때 그에 종속되어 있던 사람을 함께 죽여 매장하는 장례 풍습이다. 순장은 세계사적으로 권력이 집중되거나 국가가 발생하는 단계에 출현하였다. 고대 한반도에서는 3세기 후반 금관가야에서 처음 출현하였으며, 5세기에 아라가야, 대가야, 비화가야, 신라 중앙과 지방으로 확산되어 다양한 양상으로 성행하다가 6세기 중엽에 소멸되었다.
순장 (殉葬)
순장은 왕과 귀족 등 권력자가 사망하여 무덤에 매장될 때 그에 종속되어 있던 사람을 함께 죽여 매장하는 장례 풍습이다. 순장은 세계사적으로 권력이 집중되거나 국가가 발생하는 단계에 출현하였다. 고대 한반도에서는 3세기 후반 금관가야에서 처음 출현하였으며, 5세기에 아라가야, 대가야, 비화가야, 신라 중앙과 지방으로 확산되어 다양한 양상으로 성행하다가 6세기 중엽에 소멸되었다.
삼국시대 가야 소국들에서 제작, 사용된 낙동강 서쪽 일대에서 출토되는 토기.
가야토기 (加耶土器)
삼국시대 가야 소국들에서 제작, 사용된 낙동강 서쪽 일대에서 출토되는 토기.
가야연맹체(加耶聯盟體)의 한 나라로서 후기 가야연맹체의 맹주국.
대가야 (大加耶)
가야연맹체(加耶聯盟體)의 한 나라로서 후기 가야연맹체의 맹주국.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널무덤·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김해 대성동 고분군 (金海 大成洞 古墳群)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널무덤·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삼한시대 변한(弁韓)의 한 소국(小國).
구야국 (狗邪國)
삼한시대 변한(弁韓)의 한 소국(小國).
임나란 가야 혹은 금관가야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특히, 김해의 금관가야를 칭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역사 기록에서는 3곳에서 '임나'라는 표현이 확인된다. 「광개토왕릉비문」에서는 '임나가라',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에는 '임나왕족', 『삼국사기』 열전 강수열전에서는 '임나가량'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임나는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서도 확인되며, 『일본서기』에서는 임나와 함께 '임나일본부'라는 표현도 다수 쓰였다.
임나 (任那)
임나란 가야 혹은 금관가야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특히, 김해의 금관가야를 칭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역사 기록에서는 3곳에서 '임나'라는 표현이 확인된다. 「광개토왕릉비문」에서는 '임나가라',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에는 '임나왕족', 『삼국사기』 열전 강수열전에서는 '임나가량'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임나는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서도 확인되며, 『일본서기』에서는 임나와 함께 '임나일본부'라는 표현도 다수 쓰였다.
초기국가시대 삼한시대 염사(廉斯)의 우거수를 역임한 군장.
염사치 (廉斯鑡)
초기국가시대 삼한시대 염사(廉斯)의 우거수를 역임한 군장.
파형동기는 바람개비 모양의 청동기로 가야의 중심 고분군인 김해 대성동에서만 출토되는 유물이다. 대성동 내에서도 최상위 고분에서만 출토되어 가장 위계가 높은 신분 상징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용도는 방패, 화살통, 활집 등에 매달아 장식하던 것으로 보인다.
파형동기 (巴形銅器)
파형동기는 바람개비 모양의 청동기로 가야의 중심 고분군인 김해 대성동에서만 출토되는 유물이다. 대성동 내에서도 최상위 고분에서만 출토되어 가장 위계가 높은 신분 상징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용도는 방패, 화살통, 활집 등에 매달아 장식하던 것으로 보인다.
삼한(三韓)시대의 정치 집단체.
변한 (弁韓)
삼한(三韓)시대의 정치 집단체.
신라 초기에 복속된 가야(加耶)의 소국(小國).
거칠산국 (居漆山國)
신라 초기에 복속된 가야(加耶)의 소국(小國).
김해회현리패총은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원삼국시대~삼국시대의 패총이다. 사적 제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구(舊) 회현리패총과 봉황대유적 등을 묶어 김해봉황동유적으로 확대 지정되었다. 김해 지역 금관가야인들의 중심 거주 지역으로 왕궁터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며, 주위를 봉황토성이 둘러싸고 있다. 가야인들의 생활상을 보전하고 있는 타임캡슐이라 할 수 있다.
김해 회현리 패총 (金海 會峴里 貝塚)
김해회현리패총은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원삼국시대~삼국시대의 패총이다. 사적 제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구(舊) 회현리패총과 봉황대유적 등을 묶어 김해봉황동유적으로 확대 지정되었다. 김해 지역 금관가야인들의 중심 거주 지역으로 왕궁터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며, 주위를 봉황토성이 둘러싸고 있다. 가야인들의 생활상을 보전하고 있는 타임캡슐이라 할 수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능. 왕릉.
김해 수로왕릉 (金海 首露王陵)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능. 왕릉.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고령캠퍼스)와 경상남도 김해시 삼계동(김해캠퍼스)에 있는 사립 대학교.
가야대학교 (加耶大學校)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고령캠퍼스)와 경상남도 김해시 삼계동(김해캠퍼스)에 있는 사립 대학교.
가야연맹체의 한 나라.
고령가야 (古寧加耶)
가야연맹체의 한 나라.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은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연꽃무늬 벽화가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무덤이다. 이 무덤은 남북으로 긴 장방형의 널방과 널길이 있는 ㄱ자 형태의 굴식 돌방무덤이다. 널방과 널길 천장돌에 연꽃무늬 벽화가 남아 있다. 벽화가 있는 점에서 백제 묘제와의 관련성이 있고 고령에서 무주, 금산, 논산평야를 통하는 가야와 백제의 문화 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벽의 아치형 축조 수법, 바닥의 도량 설치 등 백제의 고분 축조 양식과 공통되는 부분이 존재하여 가야에 미친 백제문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 (高靈 古衛里 壁畵 古墳)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은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연꽃무늬 벽화가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무덤이다. 이 무덤은 남북으로 긴 장방형의 널방과 널길이 있는 ㄱ자 형태의 굴식 돌방무덤이다. 널방과 널길 천장돌에 연꽃무늬 벽화가 남아 있다. 벽화가 있는 점에서 백제 묘제와의 관련성이 있고 고령에서 무주, 금산, 논산평야를 통하는 가야와 백제의 문화 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벽의 아치형 축조 수법, 바닥의 도량 설치 등 백제의 고분 축조 양식과 공통되는 부분이 존재하여 가야에 미친 백제문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옛 지명.
밀성 (密城)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옛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