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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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읍지』는 1899년 전라남도 강진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여 채색 지도 1장을 첨부하였다. 1책 20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19세기 후반 강진군의 연혁과 인문지리, 행정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문헌이며, 더불어 당대 지식인들이 가진 지역 인식의 변화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강진군읍지 (康津郡邑誌)
『강진군읍지』는 1899년 전라남도 강진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여 채색 지도 1장을 첨부하였다. 1책 20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19세기 후반 강진군의 연혁과 인문지리, 행정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문헌이며, 더불어 당대 지식인들이 가진 지역 인식의 변화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사터에 있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백제계열의 석조 불탑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진각국사혜심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월남사는 정유재란 시기에 큰 타격을 받은 뒤, 18세기에 폐사되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마찬가지로 모전석탑 양식을 보이는 3층 석탑이다. 2층 이상의 탑신 높이가 일 층에 비해 크게 줄지 않은 점 등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백제계열의 석탑임을 보여준다. 이 양식은 단순한 지역적 양식의 계승이 아니라 백제계 사찰의 확산에 기인함을 짐작할 수 있다.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康津 月南寺址 三層石塔)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사터에 있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백제계열의 석조 불탑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진각국사혜심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월남사는 정유재란 시기에 큰 타격을 받은 뒤, 18세기에 폐사되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마찬가지로 모전석탑 양식을 보이는 3층 석탑이다. 2층 이상의 탑신 높이가 일 층에 비해 크게 줄지 않은 점 등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백제계열의 석탑임을 보여준다. 이 양식은 단순한 지역적 양식의 계승이 아니라 백제계 사찰의 확산에 기인함을 짐작할 수 있다.
강진 백운동 원림은 조선시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있는 이담로가 조영한 별서 정원이다. 월출산 옥판봉 남쪽에 자리하며, 2019년 3월 11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원림의 뜰에 시냇물을 끌어 마당을 돌아나가는 ‘유상곡수’의 유구와 화계가 남아 있고, 다산 정약용 등 방문객들이 남긴 글과 그림들이 많이 있다.
강진 백운동 원림 (康津 白雲洞 園林)
강진 백운동 원림은 조선시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있는 이담로가 조영한 별서 정원이다. 월출산 옥판봉 남쪽에 자리하며, 2019년 3월 11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원림의 뜰에 시냇물을 끌어 마당을 돌아나가는 ‘유상곡수’의 유구와 화계가 남아 있고, 다산 정약용 등 방문객들이 남긴 글과 그림들이 많이 있다.
강진청자박물관은 고려청자의 가마터였던 전라남도 강진군에 있는 고려청자 전문박물관이다. 1913년 박물관이 위치한 사당리 가마터 일대에서 청자편이 발견되었다. 이후 이 일대에서 100여 개의 고려청자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1960년대 현재의 박물관 터에서 대규모 가마터 발굴이 이루어졌다. 박물관의 소장 유물은 청자 파편을 포함하여 3만여 점에 이른다. 청자와 가마터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실 이외에 고려청자를 재현, 판매하는 작업장과 판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청자의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박물관이다.
강진청자박물관 (康津靑磁博物館)
강진청자박물관은 고려청자의 가마터였던 전라남도 강진군에 있는 고려청자 전문박물관이다. 1913년 박물관이 위치한 사당리 가마터 일대에서 청자편이 발견되었다. 이후 이 일대에서 100여 개의 고려청자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1960년대 현재의 박물관 터에서 대규모 가마터 발굴이 이루어졌다. 박물관의 소장 유물은 청자 파편을 포함하여 3만여 점에 이른다. 청자와 가마터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실 이외에 고려청자를 재현, 판매하는 작업장과 판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청자의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박물관이다.
강진 고성사 목조 삼불 좌상 및 복장유물은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고성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그 복장유물이다. 2013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석가여래상의 높이 133㎝, 아미타여래상의 높이 124㎝, 약사여래상의 높이 123.7㎝이다. 복장유물로 아미타여래개금발원문(1751년)을 비롯하여 불설천지팔양신주경, 육경합부, 묘법연화경 등 발원문 1점, 전적 24점이 발견되었다. 단구의 신체 비례와 간결한 선묘, 평담하고 대중적인 조형미로 17세기 중·후반의 조각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강진 고성사 목조 삼불 좌상 및 복장유물 (康津 高聲寺 木造 三佛 坐像 및 腹藏遺物)
강진 고성사 목조 삼불 좌상 및 복장유물은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고성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그 복장유물이다. 2013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석가여래상의 높이 133㎝, 아미타여래상의 높이 124㎝, 약사여래상의 높이 123.7㎝이다. 복장유물로 아미타여래개금발원문(1751년)을 비롯하여 불설천지팔양신주경, 육경합부, 묘법연화경 등 발원문 1점, 전적 24점이 발견되었다. 단구의 신체 비례와 간결한 선묘, 평담하고 대중적인 조형미로 17세기 중·후반의 조각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6월 유두와 7월 백중 때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일대에서 세벌 김매기 후, 마을사람들이 패를 나누어 승부를 가리는 민속놀이. 세시풍속.
강진 땅뺏기놀이 (康津 땅뺏기놀이)
6월 유두와 7월 백중 때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일대에서 세벌 김매기 후, 마을사람들이 패를 나누어 승부를 가리는 민속놀이. 세시풍속.
고려시대의 백자 향로.
백자 박산형뚜껑 향로 (白磁 博山形뚜껑 香爐)
고려시대의 백자 향로.
조선 후기에, 예조좌랑, 은산현감, 강계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강윤 (姜潤)
조선 후기에, 예조좌랑, 은산현감, 강계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교촌리에 있는 공립 실업계 고등학교.
전남생명과학고등학교 (全南生命科學高等學校)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교촌리에 있는 공립 실업계 고등학교.
전라남도 강진 지역의 옛 지명.
도강 (道康)
전라남도 강진 지역의 옛 지명.
광주광역시 북구 비엔날레2길(용봉동) 중외 공원(中外公園) 안에 있는 시립 역사민속 박물관.
광주역사민속박물관 (光州歷史民俗博物館)
광주광역시 북구 비엔날레2길(용봉동) 중외 공원(中外公園) 안에 있는 시립 역사민속 박물관.
조선후기 「서구도올」, 「북행백절」, 「석고가」 등을 저술한 시인. 여항시인.
조수삼 (趙秀三)
조선후기 「서구도올」, 「북행백절」, 「석고가」 등을 저술한 시인. 여항시인.
청자 투각 칠보문뚜껑 향로는 투각·첩화·상형·상감 등 각종 기법을 통해 제작된 12세기 고려 시대 향로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향로는 뚜껑·몸체·받침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뚜껑은 투각기법으로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칠보문을 장식하고 있다. 향로 몸체에는 여러 장의 국화잎이 감싸고 있는 꽃봉오리 모양이다. 섬세한 잎맥을 첩화기법으로 표현하였다. 굽다리 부분에는 향로를 등에 얹고 있는 듯한 모습의 토끼 세 마리가 장식되어 있다. 이 향로는 고려 전성기 비색청자의 조형적 우수성과 비색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청자 투각 칠보문뚜껑 향로 (靑磁 透刻 七寶文蓋 香爐)
청자 투각 칠보문뚜껑 향로는 투각·첩화·상형·상감 등 각종 기법을 통해 제작된 12세기 고려 시대 향로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향로는 뚜껑·몸체·받침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뚜껑은 투각기법으로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칠보문을 장식하고 있다. 향로 몸체에는 여러 장의 국화잎이 감싸고 있는 꽃봉오리 모양이다. 섬세한 잎맥을 첩화기법으로 표현하였다. 굽다리 부분에는 향로를 등에 얹고 있는 듯한 모습의 토끼 세 마리가 장식되어 있다. 이 향로는 고려 전성기 비색청자의 조형적 우수성과 비색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에 있는 공립중학교.
성전중학교 (城田中學校)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에 있는 공립중학교.
형미는 보림사 보조선사의 제자로 입당하여 도응의 법을 전수받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선승이다. 905년 귀국 후 강진 무위사에 주석하였다. 태봉이 전라도 남부지역 일대를 석권하면서 궁예, 왕건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궁예의 의심을 받아 처형되었고, 이후 왕건이 즉위한 후 대사를 위한 사찰과 탑을 건립하도록 하고 선각대사라는 시호를 내려 주었다.
형미 (泂微)
형미는 보림사 보조선사의 제자로 입당하여 도응의 법을 전수받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선승이다. 905년 귀국 후 강진 무위사에 주석하였다. 태봉이 전라도 남부지역 일대를 석권하면서 궁예, 왕건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궁예의 의심을 받아 처형되었고, 이후 왕건이 즉위한 후 대사를 위한 사찰과 탑을 건립하도록 하고 선각대사라는 시호를 내려 주었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청심사 인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후기 목조여래좌상이다. 도금이 거의 벗겨져 검은 옻칠이 전면에 걸쳐 드러나 있다. 머리와 육계의 구분이 없는 반구형의 머리에 흙으로 별도 제작한 나발을 촘촘히 부착하였다. 동그란 얼굴은 턱이 짧고 가운데를 약간 뾰족하게 처리하여 살이 오른 앳된 소년의 형상이다. 불의(佛衣)는 이중으로 걸쳤으며, 양쪽 무릎 앞에는 몇 가닥의 사선 주름이 펼쳐져 있다. 강진 옥련사 목조석가여래좌상(1684년)이나 구례 천은사 목조석가여래좌상(1693년), 일본 고려미술관 목조아미타삼존불감(1689년) 등과 양식적으로 상통한다.
하동 청심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河東 淸心寺 木造 阿彌陀如來 坐像)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청심사 인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후기 목조여래좌상이다. 도금이 거의 벗겨져 검은 옻칠이 전면에 걸쳐 드러나 있다. 머리와 육계의 구분이 없는 반구형의 머리에 흙으로 별도 제작한 나발을 촘촘히 부착하였다. 동그란 얼굴은 턱이 짧고 가운데를 약간 뾰족하게 처리하여 살이 오른 앳된 소년의 형상이다. 불의(佛衣)는 이중으로 걸쳤으며, 양쪽 무릎 앞에는 몇 가닥의 사선 주름이 펼쳐져 있다. 강진 옥련사 목조석가여래좌상(1684년)이나 구례 천은사 목조석가여래좌상(1693년), 일본 고려미술관 목조아미타삼존불감(1689년) 등과 양식적으로 상통한다.
청자를 제작하는 기능 또는 그일에 종사하는 장인.
청자장 (靑瓷匠)
청자를 제작하는 기능 또는 그일에 종사하는 장인.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서 충청남도 천안시에 이르는 일반 국도.
국도 23호선 (國道 23號線)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서 충청남도 천안시에 이르는 일반 국도.
청자음각 앵무문 정병은 고려시대 제작된 청자 앵무문 정병이다. 12세기에 전라남도 강진 일대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체부 전면에는 세 마리의 앵무문이 음각문으로 시문되었는데, 이는 송대 절강성 월주요 청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동시기 고려청자에 자주 보이는 문양 중 하나이다. 정병에 표현된 사례는 청자 중에서도 문양의 희소성 때문에 고려청자 연구에 잠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다.
청자 음각 앵무문 정병 (靑磁 陰刻 鸚鵡文 淨甁)
청자음각 앵무문 정병은 고려시대 제작된 청자 앵무문 정병이다. 12세기에 전라남도 강진 일대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체부 전면에는 세 마리의 앵무문이 음각문으로 시문되었는데, 이는 송대 절강성 월주요 청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동시기 고려청자에 자주 보이는 문양 중 하나이다. 정병에 표현된 사례는 청자 중에서도 문양의 희소성 때문에 고려청자 연구에 잠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다.
청자상감운학국화문개합은 고려 후기 제작된 상감청자 유개합이다. 고려 후기 강진에서 생산된 뚜껑과 대접, 받침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 청자합이다. 특수 목적을 위해 생산된 기종으로 추정되며, 생산지는 강진 사당리에서 뚜껑과 같은 조각이 출토되어 사당리 일대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청자 상감 운학국화문 개합 (靑瓷 象嵌 雲鶴菊花文 蓋盒)
청자상감운학국화문개합은 고려 후기 제작된 상감청자 유개합이다. 고려 후기 강진에서 생산된 뚜껑과 대접, 받침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 청자합이다. 특수 목적을 위해 생산된 기종으로 추정되며, 생산지는 강진 사당리에서 뚜껑과 같은 조각이 출토되어 사당리 일대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