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경성사진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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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사진협회는 1955년 4월 7일 인물사진을 주로 찍는 사진관 영업 사진사들이 조직한 대한사진가연합회로 출발한 단체이다. 특별행위세 철폐 등 사진 문화 정책을 개선하였고, 『사단』 등의 회보를 발간하였으며, 출판사 광화를 운영하였다. 특히 한국사진사연구소를 건립하고 사진의 날을 제정하는 등 한국사진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일제강점기 경성사진사협회를 모태로 하고, 해방 공간의 다양한 사진관 단체들을 근거로 하는 영업 사진가 단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프로사진협회 (韓國프로寫眞協會)
한국프로사진협회는 1955년 4월 7일 인물사진을 주로 찍는 사진관 영업 사진사들이 조직한 대한사진가연합회로 출발한 단체이다. 특별행위세 철폐 등 사진 문화 정책을 개선하였고, 『사단』 등의 회보를 발간하였으며, 출판사 광화를 운영하였다. 특히 한국사진사연구소를 건립하고 사진의 날을 제정하는 등 한국사진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일제강점기 경성사진사협회를 모태로 하고, 해방 공간의 다양한 사진관 단체들을 근거로 하는 영업 사진가 단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사진사는 지운영이 일본에서 사진을 가르쳐준 헤이무라 도쿠베이의 이름에 붙여 존경의 뜻을 담아 부른 명칭으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지운영은 한국에 처음 사진을 도입한 선각자 중의 한명이었고, 대한제국 황실사진가를 지낸 해강 김규진도 천연당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자신의 이름에 자연스럽게 '사진사'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 이후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사 (寫眞師)
사진사는 지운영이 일본에서 사진을 가르쳐준 헤이무라 도쿠베이의 이름에 붙여 존경의 뜻을 담아 부른 명칭으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지운영은 한국에 처음 사진을 도입한 선각자 중의 한명이었고, 대한제국 황실사진가를 지낸 해강 김규진도 천연당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자신의 이름에 자연스럽게 '사진사'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 이후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태평양사진관은 사진사 민충식이 현성린과 함께 1930년 서울의 종로 낙원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개업 이후 5년간 운영된 사진관은 서울에서 사진 값이 비싸기로도 유명했고 가장 큰 시설을 갖춘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초상사진 영업을 주로 했지만 일본 헤이번샤가 펴낸 36권짜리 『세계지리풍속대계』에 서울 전경 사진을 찍어 제공하는 등 사진기록 작업도 했던 사진관이었다.
태평양사진관 (太平洋寫眞館)
태평양사진관은 사진사 민충식이 현성린과 함께 1930년 서울의 종로 낙원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개업 이후 5년간 운영된 사진관은 서울에서 사진 값이 비싸기로도 유명했고 가장 큰 시설을 갖춘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초상사진 영업을 주로 했지만 일본 헤이번샤가 펴낸 36권짜리 『세계지리풍속대계』에 서울 전경 사진을 찍어 제공하는 등 사진기록 작업도 했던 사진관이었다.
독립사진관은 1930년 사진사 박만달이 서울 종로 관철동에 개업해서 운영한 사진관이다. 사진관 시설과 사진사의 실력이 좋아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일본인 고객도 많았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탄압의 상징인 종로경찰서 부근에 '독립'이란 상호를 달고 영업해 일본 경찰과 충돌이 잦았다. 한국 사진사들의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사진관이었다.
독립사진관 (獨立寫眞館)
독립사진관은 1930년 사진사 박만달이 서울 종로 관철동에 개업해서 운영한 사진관이다. 사진관 시설과 사진사의 실력이 좋아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일본인 고객도 많았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탄압의 상징인 종로경찰서 부근에 '독립'이란 상호를 달고 영업해 일본 경찰과 충돌이 잦았다. 한국 사진사들의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사진관이었다.
박필호는 경성사진사협회에 참여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한 사진가이다. 1920년대 초에 경성일보 주최 공모전에서 입선하였으며, 1925년 종로3가에 연우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영업 사진사의 길로 들어섰다. 1926년 경성사진사협회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해방 후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사진협회 등에서 고문을 맡는 한편,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사진 이론과 사진사 연구에도 열정을 보여 다수의 글을 남겼다.
박필호 (朴弼浩)
박필호는 경성사진사협회에 참여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한 사진가이다. 1920년대 초에 경성일보 주최 공모전에서 입선하였으며, 1925년 종로3가에 연우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영업 사진사의 길로 들어섰다. 1926년 경성사진사협회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해방 후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사진협회 등에서 고문을 맡는 한편,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사진 이론과 사진사 연구에도 열정을 보여 다수의 글을 남겼다.
경성사구회는 1930년대 YMCA 황성 기독교 청년회 학관 사진과 출신을 중심으로 결성된 사진가 단체이다.일제강점기 경성 사진사 협회, 경성 아마추어 사진 구락부, 백양 사우회 등과 더불어 한국인 사진가들로만 결성된 단체로서 다수의 재한 일본인 사진가 단체들과 경쟁을 하며 사진 예술의 방향을 모색하였다.
경성사구회 (京城寫究會)
경성사구회는 1930년대 YMCA 황성 기독교 청년회 학관 사진과 출신을 중심으로 결성된 사진가 단체이다.일제강점기 경성 사진사 협회, 경성 아마추어 사진 구락부, 백양 사우회 등과 더불어 한국인 사진가들로만 결성된 단체로서 다수의 재한 일본인 사진가 단체들과 경쟁을 하며 사진 예술의 방향을 모색하였다.
경성사진학강습원은 1934년 경성사진사협회의 주도로 경성부에 설립되었던 사진 교육기관이다. 한국 최초의 공식적인 사진 교육기관이었던 YMCA 사진과가 폐과되자, 경성사진사협회는 경성인상사진연구회와 경성사구회 등과 협력하여 사진 교육의 정상화를 꾀하였다. 당시 사진계의 역량이 총동원된 교육기관이었으며, 『사진요람』을 간행하여 교재로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체계적인 교육의 기틀을 갖춘 대표적인 사진 교육기관이었다.
경성사진학강습원 (京城寫眞學講習院)
경성사진학강습원은 1934년 경성사진사협회의 주도로 경성부에 설립되었던 사진 교육기관이다. 한국 최초의 공식적인 사진 교육기관이었던 YMCA 사진과가 폐과되자, 경성사진사협회는 경성인상사진연구회와 경성사구회 등과 협력하여 사진 교육의 정상화를 꾀하였다. 당시 사진계의 역량이 총동원된 교육기관이었으며, 『사진요람』을 간행하여 교재로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체계적인 교육의 기틀을 갖춘 대표적인 사진 교육기관이었다.
사진업조합은 1922년 사진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경성의 사진업자들이 결성한 사진조합이다. 초대 조합장은 금옥당사진관의 김경집이 맡았으며 조합 사무소도 종로 공평동에 위치한 금옥당사진관 안에 두었다. 조합장이 조선인이었다는 점에서 경성 지역 최초의 조선인 사진단체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업조합 (寫眞業組合)
사진업조합은 1922년 사진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경성의 사진업자들이 결성한 사진조합이다. 초대 조합장은 금옥당사진관의 김경집이 맡았으며 조합 사무소도 종로 공평동에 위치한 금옥당사진관 안에 두었다. 조합장이 조선인이었다는 점에서 경성 지역 최초의 조선인 사진단체로 평가되고 있다.
금광당사진관은 1925년 김광배가 서울 종로 서린동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1920년대 가장 대중적인 조선인 사진관 중의 하나였다. 관주 김광배는 조선인 사진단체인 경성인상사진연구회를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경성사진사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사진계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금광당사진관 (金光堂寫眞館)
금광당사진관은 1925년 김광배가 서울 종로 서린동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1920년대 가장 대중적인 조선인 사진관 중의 하나였다. 관주 김광배는 조선인 사진단체인 경성인상사진연구회를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경성사진사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사진계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