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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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사시대와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술단체.
한국고대학회 (韓國古代學會)
한국 선사시대와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술단체.
김정주는 해방 이후 「일본의 한국침략사」, 「구주와 한인」, 「일제통치사료」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태어나 1982년에 사망했다. 1933년 진주고보를 졸업하고 1938년에 메이지대학에 입학하였다. 1945년 재일한인사회의 민족운동에 투신하여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봉환하는데 일조하였다. 한국사료연구소를 설립하고 한일고대관계사자료와 일제의 한국침략사사료를 수집하여 한일고대관계사의 개척자가 되었다. 재일한국인의 민족적 단결과 한국문화가 일본에 끼친 영향을 ‘한래문화(韓來文化)’란 용어로 정리하는 등 학문적으로 기여하였다.
김정주 (金正柱)
김정주는 해방 이후 「일본의 한국침략사」, 「구주와 한인」, 「일제통치사료」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태어나 1982년에 사망했다. 1933년 진주고보를 졸업하고 1938년에 메이지대학에 입학하였다. 1945년 재일한인사회의 민족운동에 투신하여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봉환하는데 일조하였다. 한국사료연구소를 설립하고 한일고대관계사자료와 일제의 한국침략사사료를 수집하여 한일고대관계사의 개척자가 되었다. 재일한국인의 민족적 단결과 한국문화가 일본에 끼친 영향을 ‘한래문화(韓來文化)’란 용어로 정리하는 등 학문적으로 기여하였다.
『조선반도의 벽화고분』, 『고분유물』 등을 저술하며 초창기 고고학 발전에 기여한 고고학자.
김기웅 (金基雄)
『조선반도의 벽화고분』, 『고분유물』 등을 저술하며 초창기 고고학 발전에 기여한 고고학자.
원시사회부터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에 이르는 과도기적 단계에 나타나는 정치조직체. 부족연맹체.
부족국가 (部族國家)
원시사회부터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에 이르는 과도기적 단계에 나타나는 정치조직체. 부족연맹체.
삼국시대는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이다. 남북국시대,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처럼 한국사 속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시대 구분 용어이다. 삼국이 고대 국가의 체제를 완비해 간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국의 국가 형성부터 삼국시대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삼국시대 (三國時代)
삼국시대는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이다. 남북국시대,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처럼 한국사 속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시대 구분 용어이다. 삼국이 고대 국가의 체제를 완비해 간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국의 국가 형성부터 삼국시대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고문은 한문으로 쓰인 산문체의 문장이다. 당나라 때 유행하던 수식이 많은 변체문(騈體文)과 다른 산문 체제가 출현하였다. 당나라 한유는 변려문을 비판하고, 고대 문학 정신을 계승한 선진고문을 문장의 모범으로 삼았다. 고문 운동가들은 고대 문학 전통을 계승하여 새로운 문학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였다. 우리나라는 당나라에 유학했던 최치원의 영향으로 고려 초기까지 변려문이 주로 쓰였다. 조선 중기 최립은 의고문파의 이론을 흡수하여 진한고문을 본받고자 하였다. 허균, 박지원 등은 고문의 가치는 자기 시대의 문체를 만드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고문 (古文)
고문은 한문으로 쓰인 산문체의 문장이다. 당나라 때 유행하던 수식이 많은 변체문(騈體文)과 다른 산문 체제가 출현하였다. 당나라 한유는 변려문을 비판하고, 고대 문학 정신을 계승한 선진고문을 문장의 모범으로 삼았다. 고문 운동가들은 고대 문학 전통을 계승하여 새로운 문학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였다. 우리나라는 당나라에 유학했던 최치원의 영향으로 고려 초기까지 변려문이 주로 쓰였다. 조선 중기 최립은 의고문파의 이론을 흡수하여 진한고문을 본받고자 하였다. 허균, 박지원 등은 고문의 가치는 자기 시대의 문체를 만드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한국불교전서 편찬실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한역불교근본경전』, 『한글아함경』, 『한국의 불교사상』 등을 저술한 불교학자.
고익진 (高翊晉)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한국불교전서 편찬실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한역불교근본경전』, 『한글아함경』, 『한국의 불교사상』 등을 저술한 불교학자.
『위서(魏書)』는 고대 중국의 위(魏)나라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좁은 의미로는 위수(魏收)의 『위서』 등 특정 사서를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진수(陳壽)의 『위지(魏志)』를 포함하여 조위(曹魏) 혹은 북위(北魏)의 역사를 다룬 사서의 범칭이기도 하다.
위서 (魏書)
『위서(魏書)』는 고대 중국의 위(魏)나라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좁은 의미로는 위수(魏收)의 『위서』 등 특정 사서를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진수(陳壽)의 『위지(魏志)』를 포함하여 조위(曹魏) 혹은 북위(北魏)의 역사를 다룬 사서의 범칭이기도 하다.
1927년 역사학자·문인 최남선의 한국고대문화사에 관한 학술서. 역사서.
아시조선 (兒時朝鮮)
1927년 역사학자·문인 최남선의 한국고대문화사에 관한 학술서. 역사서.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시대구분론 (時代區分論)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의림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고대 저수지이다. 산곡형 저수지로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삼한시대 축조설, 우륵 축조설, 정인지 축조설 등이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지질학적 학술 조사의 결과로는 AD 800~900년인 삼국시대 말기~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본다. 고대 수리 시설 중에서 오늘날까지 폐기된 적 없이 사용되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수리 시설만이 아니라 노송과 누정 그리고 호수가 어우러진 경관이 뛰어나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의림지 (義林池)
의림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고대 저수지이다. 산곡형 저수지로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삼한시대 축조설, 우륵 축조설, 정인지 축조설 등이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지질학적 학술 조사의 결과로는 AD 800~900년인 삼국시대 말기~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본다. 고대 수리 시설 중에서 오늘날까지 폐기된 적 없이 사용되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수리 시설만이 아니라 노송과 누정 그리고 호수가 어우러진 경관이 뛰어나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안재홍이 우리나라 고대사와 관련된 여러 논문들을 모아 수록한 역사서.
조선상고사감 (朝鮮上古史鑑)
안재홍이 우리나라 고대사와 관련된 여러 논문들을 모아 수록한 역사서.
태학은 372년 고구려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기록상 고구려 최초의 학교이자 한국 최초의 학교로서 관료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박사나 조교가 교수자였고, 귀족 자제들이 학생이었으며, 오경 등 유교 경전을 가르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경당과 함께 고구려의 대표적 학교였으며, 고구려 멸망 전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태학 (太學)
태학은 372년 고구려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기록상 고구려 최초의 학교이자 한국 최초의 학교로서 관료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박사나 조교가 교수자였고, 귀족 자제들이 학생이었으며, 오경 등 유교 경전을 가르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경당과 함께 고구려의 대표적 학교였으며, 고구려 멸망 전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토총은 고대 삼국시대 흙으로 쌓아 올린 무덤 양식이다. 봉토분이라고도 한다. 봉토분은 매장 주체 시설인 묘와 그 위에 이를 표시하기 위하여 흙을 높이 쌓은 봉분이 결합되어 나타난 무덤을 말하는데, 동아시아에서 봉토분은 중국 춘추시대 말기 무렵에 출현한다. 근대 고고학이 성립될 즈음 옛무덤의 종류는 봉분을 쌓은 이 토총과 돌을 쌓아 무덤임을 표지한 석총(石塚)으로 구분하였으나 지금은 봉토분(封土憤)과 적석총(積石塚)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토총 (土塚)
토총은 고대 삼국시대 흙으로 쌓아 올린 무덤 양식이다. 봉토분이라고도 한다. 봉토분은 매장 주체 시설인 묘와 그 위에 이를 표시하기 위하여 흙을 높이 쌓은 봉분이 결합되어 나타난 무덤을 말하는데, 동아시아에서 봉토분은 중국 춘추시대 말기 무렵에 출현한다. 근대 고고학이 성립될 즈음 옛무덤의 종류는 봉분을 쌓은 이 토총과 돌을 쌓아 무덤임을 표지한 석총(石塚)으로 구분하였으나 지금은 봉토분(封土憤)과 적석총(積石塚)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초기철기문화를 배경으로 서기전 3∼2세기경 한반도 중남부지역에 성립해 있었던 정치집단.
진국 (辰國)
초기철기문화를 배경으로 서기전 3∼2세기경 한반도 중남부지역에 성립해 있었던 정치집단.
신(神)을 대변하는 제사장(祭司長)에 의해 다스려지는 국가 또는 정치체제.
제정일치 (祭政一致)
신(神)을 대변하는 제사장(祭司長)에 의해 다스려지는 국가 또는 정치체제.
팔조법금은 고조선시대의 법률이다. ‘팔조금법’·‘금법팔조’라고도 한다.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전에는 기자가 조선에 와서 8조의 교법(敎法)을 만들어 인민을 교화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문은 전하지 않고 3개 조만이 『한서』 지리지에 전한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며,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하며,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데려다 노비로 삼고 속죄하고자 하는 자는 1인당 50만 전(錢)을 내야 한다는 법이다. 이외에 간음을 금지하는 법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팔조법금 (八條法禁)
팔조법금은 고조선시대의 법률이다. ‘팔조금법’·‘금법팔조’라고도 한다.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전에는 기자가 조선에 와서 8조의 교법(敎法)을 만들어 인민을 교화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문은 전하지 않고 3개 조만이 『한서』 지리지에 전한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며,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하며,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데려다 노비로 삼고 속죄하고자 하는 자는 1인당 50만 전(錢)을 내야 한다는 법이다. 이외에 간음을 금지하는 법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훈고학은 고대 문헌 언어를 해석하는 방법과 규율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훈’은 자구나 언어가 가리키는 의의를 설명하는 것이고, ‘고’는 옛말을 가르치고 설명한다는 뜻이다. 고금의 다른 말을 소통시켜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곧 공간과 시간의 제한 없이 언어로 언어를 해석하는 것이 훈고이며, 또는 그 방법을 논하고 의미 체계를 밝혀 언어 문자의 계통과 근원을 밝히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어의학, 어음학, 어법학, 수사학, 문자학, 사전학 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훈고학 (訓誥學)
훈고학은 고대 문헌 언어를 해석하는 방법과 규율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훈’은 자구나 언어가 가리키는 의의를 설명하는 것이고, ‘고’는 옛말을 가르치고 설명한다는 뜻이다. 고금의 다른 말을 소통시켜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곧 공간과 시간의 제한 없이 언어로 언어를 해석하는 것이 훈고이며, 또는 그 방법을 논하고 의미 체계를 밝혀 언어 문자의 계통과 근원을 밝히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어의학, 어음학, 어법학, 수사학, 문자학, 사전학 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