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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의 돌실나이는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 죽산리의 삼베짜기 기능과 장인이다. 돌실나이라는 명칭은 곡성군 석곡의 원래 이름인 ‘돌실’과 베를 짜는 일을 의미하는 ‘낳이’에서 유래하였다. 1970년에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국가무형유산 ‘삼베짜기’의 세부 기 · 예능으로 통합되었다.
곡성의 돌실나이 (谷城의 돌실나이)
곡성의 돌실나이는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 죽산리의 삼베짜기 기능과 장인이다. 돌실나이라는 명칭은 곡성군 석곡의 원래 이름인 ‘돌실’과 베를 짜는 일을 의미하는 ‘낳이’에서 유래하였다. 1970년에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국가무형유산 ‘삼베짜기’의 세부 기 · 예능으로 통합되었다.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읍내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곡성중앙초등학교 (谷城中央初等學校)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읍내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곡성향교는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전라남도 곡성군에 세워진 향교이다. 정유재란의 피해 여파로 곡성현이 남원부에 합속된 기간 향교 기능이 정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전쟁 때 향교가 소실된 적이 있다. 사마재와 양사재가 건립되었고, 수령·향유에 의해 교육 진흥을 위한 섬학전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곡성향교 (谷城鄕校)
곡성향교는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전라남도 곡성군에 세워진 향교이다. 정유재란의 피해 여파로 곡성현이 남원부에 합속된 기간 향교 기능이 정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전쟁 때 향교가 소실된 적이 있다. 사마재와 양사재가 건립되었고, 수령·향유에 의해 교육 진흥을 위한 섬학전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충청남도 보은군 부근으로 비정되는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였던 성곽. 산성.
와산성 (蛙山城)
충청남도 보은군 부근으로 비정되는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였던 성곽. 산성.
염제신(廉悌臣)은 고려 후기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 영삼사사(領三司事),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와 원을 오가며 관직 생활을 했던 관료이다. 1302년(충렬왕 30) 출생하여 원(元) 평장사(平章事)인 고모부 말길(末吉)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충숙왕 대에 정동행성 관원으로서 고려에 와서 충숙왕의 신임을 받았고, 공민왕 대에는 고우성(高郵城) 공격을 위한 고려군을 이끌었으며, 공민왕 5년 개혁 당시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원의 공격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1382년(우왕 8)에 사망하였다.
염제신 (廉悌臣)
염제신(廉悌臣)은 고려 후기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 영삼사사(領三司事),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와 원을 오가며 관직 생활을 했던 관료이다. 1302년(충렬왕 30) 출생하여 원(元) 평장사(平章事)인 고모부 말길(末吉)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충숙왕 대에 정동행성 관원으로서 고려에 와서 충숙왕의 신임을 받았고, 공민왕 대에는 고우성(高郵城) 공격을 위한 고려군을 이끌었으며, 공민왕 5년 개혁 당시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원의 공격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1382년(우왕 8)에 사망하였다.
『수리정온』은 1723년 청나라 수학자 매곡성이 서양수학을 해석하여 편찬한 수학서이다. 강희제의 명에 따라 천문학, 수학, 음악 등 여러 분야를 100권으로 집대성한 『율력연원』에 포함되어 있다. 상편 5권, 하편 40권, 표 8권으로 동양 수학사에서 가장 방대한 수학서이다. 『기하원본』 등 서양수학을 도입하였으나 해석기하학과 미적분학을 들여오지 못하였다. 『수리정온』의 저자들은 송·원대의 수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방정식의 구성, 해법 등이 오히려 퇴보하였다. 조선은 송·원대의 수학을 계속 사용하며 『수리정온』의 단점을 인지하면서 방대한 자료를 활용하였다.
수리정온 (數理精蘊)
『수리정온』은 1723년 청나라 수학자 매곡성이 서양수학을 해석하여 편찬한 수학서이다. 강희제의 명에 따라 천문학, 수학, 음악 등 여러 분야를 100권으로 집대성한 『율력연원』에 포함되어 있다. 상편 5권, 하편 40권, 표 8권으로 동양 수학사에서 가장 방대한 수학서이다. 『기하원본』 등 서양수학을 도입하였으나 해석기하학과 미적분학을 들여오지 못하였다. 『수리정온』의 저자들은 송·원대의 수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방정식의 구성, 해법 등이 오히려 퇴보하였다. 조선은 송·원대의 수학을 계속 사용하며 『수리정온』의 단점을 인지하면서 방대한 자료를 활용하였다.
신태윤은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곡성군의 3 · 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9일 곡성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곡성군 청년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계획 · 준비하였고, 3월 29일 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일제 관헌에 체포되어 2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5년 『삼일신고강의』를 발간하였고, 해방 후 곡성군 건국준비위원장과 조선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신태윤 (申泰允)
신태윤은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곡성군의 3 · 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9일 곡성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곡성군 청년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계획 · 준비하였고, 3월 29일 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일제 관헌에 체포되어 2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5년 『삼일신고강의』를 발간하였고, 해방 후 곡성군 건국준비위원장과 조선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