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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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시대의 지방관직.
가라달 (可邏達)
고구려시대의 지방관직.
남변제일(南邊第一)은 통일신라시대의 관등 혹은 관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관등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며, 일반적인 호칭으로 보기도 한다. 관등으로 보는 견해 중에는 구체적으로 사찬(沙湌)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한다.
남변제일 (南邊弟一)
남변제일(南邊第一)은 통일신라시대의 관등 혹은 관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관등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며, 일반적인 호칭으로 보기도 한다. 관등으로 보는 견해 중에는 구체적으로 사찬(沙湌)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한다.
고려시대의 산직(散職).
동정직 (同正職)
고려시대의 산직(散職).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는 조선시대 서반 4품에 해당한 군사 지휘관의 관직이다. 조선 초기에는 변진의 군사 책임자로 첨절제사보다 품계가 낮은 인물을 보내면서 동첨절세사라고 호칭하였으며, 세종 대에는 4품을 동첨절제사로 호칭하였고, 진관 체제에서는 종4품의 서반직 품계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정착되어 조선 말까지 운영되었다.
동첨절제사 (同僉節制使)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는 조선시대 서반 4품에 해당한 군사 지휘관의 관직이다. 조선 초기에는 변진의 군사 책임자로 첨절제사보다 품계가 낮은 인물을 보내면서 동첨절세사라고 호칭하였으며, 세종 대에는 4품을 동첨절제사로 호칭하였고, 진관 체제에서는 종4품의 서반직 품계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정착되어 조선 말까지 운영되었다.
감동관은 조선시대 국가의 토목 공사나 서적 간행 등 특별한 사업을 감독 관리하기 위해 임시로 임명된 관직이다. 감동은 공사를 감독하고 채근한다는 의미로, 공사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서 대신과 당상관, 참상관, 잡직 등 다양한 부류가 감동관으로 임명되었다. 국가의 온갖 공사에 임명되는 임시 관직으로 사안에 따라 주어진 임무가 달랐으며, 사업의 결과에 따라 가자나 승서, 상물의 하사 등 포상을 받기도 하고, 문책을 당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크고 작은 각종 사업에 책임을 맡는 감동관을 임명하여 부실한 공사를 방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감동관 (監董官)
감동관은 조선시대 국가의 토목 공사나 서적 간행 등 특별한 사업을 감독 관리하기 위해 임시로 임명된 관직이다. 감동은 공사를 감독하고 채근한다는 의미로, 공사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서 대신과 당상관, 참상관, 잡직 등 다양한 부류가 감동관으로 임명되었다. 국가의 온갖 공사에 임명되는 임시 관직으로 사안에 따라 주어진 임무가 달랐으며, 사업의 결과에 따라 가자나 승서, 상물의 하사 등 포상을 받기도 하고, 문책을 당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크고 작은 각종 사업에 책임을 맡는 감동관을 임명하여 부실한 공사를 방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대박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전문기술관직이다. 대백사(大伯士)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장인들을 거느리고 해당 작업의 책임을 맡은 우두머리로, 삼국시대부터 일컬어졌다. 박사 또는 백사의 칭호를 가진 자는 4두품부터 6두품에 해당하는 관등을 가지고 있었다. 8세기 중엽에 대박사·차박사로 분화되었는데 해당 공사의 책임자와 이를 보조하는 장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종래 관등을 가진 장인에 국한되었던 박사의 명칭이 9세기 초엽 일반 승장에게까지 부여되기 시작했다. 박사의 명칭이 대장의 의미를 지닌 공사의 책임자를 일컫는 명칭으로 전환·확산된 것이다.
대박사 (大博士)
대박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전문기술관직이다. 대백사(大伯士)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장인들을 거느리고 해당 작업의 책임을 맡은 우두머리로, 삼국시대부터 일컬어졌다. 박사 또는 백사의 칭호를 가진 자는 4두품부터 6두품에 해당하는 관등을 가지고 있었다. 8세기 중엽에 대박사·차박사로 분화되었는데 해당 공사의 책임자와 이를 보조하는 장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종래 관등을 가진 장인에 국한되었던 박사의 명칭이 9세기 초엽 일반 승장에게까지 부여되기 시작했다. 박사의 명칭이 대장의 의미를 지닌 공사의 책임자를 일컫는 명칭으로 전환·확산된 것이다.
조선 초기 궁궐·관청 등의 건축공사 때 임시로 차출되어 감독의 책임을 맡은 관직.
감역관 (監役官)
조선 초기 궁궐·관청 등의 건축공사 때 임시로 차출되어 감독의 책임을 맡은 관직.
대사는 통일신라시대, 685년(신문왕 5)에 제정된 5등관제에서 3등관에 해당하는 중간 관직이다. 대체로 실무직 중에서는 최고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 정원이 많지 않은 편이다. 관청에 따라 대사직의 숫자가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2명 정도가 일반적이다. 또 임명할 수 있는 관등 역시 관청별로 예외가 있지만, 대체로 사지에서 나마까지이다.
대사 (大舍)
대사는 통일신라시대, 685년(신문왕 5)에 제정된 5등관제에서 3등관에 해당하는 중간 관직이다. 대체로 실무직 중에서는 최고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 정원이 많지 않은 편이다. 관청에 따라 대사직의 숫자가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2명 정도가 일반적이다. 또 임명할 수 있는 관등 역시 관청별로 예외가 있지만, 대체로 사지에서 나마까지이다.
낭(郞)은 통일신라시대에 집사성(執事省) 및 숭문대(崇文臺), 한림대(翰林臺), 서서원(瑞書院)에 있었던 관직이다. 집사성(執事省)의 가장 말단직인 사(史)를 경덕왕 대에 중국식으로 바꾼 직명이었고, 문한 관청의 경우 장관직이었다.
낭 (郎)
낭(郞)은 통일신라시대에 집사성(執事省) 및 숭문대(崇文臺), 한림대(翰林臺), 서서원(瑞書院)에 있었던 관직이다. 집사성(執事省)의 가장 말단직인 사(史)를 경덕왕 대에 중국식으로 바꾼 직명이었고, 문한 관청의 경우 장관직이었다.
고려시대 외국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임시관직.
관반사 (館伴使)
고려시대 외국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임시관직.
조선 전기 궁중에서 학문연마를 하도록 젊은 문신들에게 준 관직.
겸예문 (兼藝文)
조선 전기 궁중에서 학문연마를 하도록 젊은 문신들에게 준 관직.
고려·조선시대 궁내의 여성들과 문무관처 등에게 내린 관직.
내직 (內職)
고려·조선시대 궁내의 여성들과 문무관처 등에게 내린 관직.
통일신라시대의 관직.
노당 (弩幢)
통일신라시대의 관직.
신라 하대의 중앙 승관직.
대통 (大統)
신라 하대의 중앙 승관직.
고려 후기 원나라에 의하여 설치되었던 정동행성(征東行省)의 관직.
도사 (都事)
고려 후기 원나라에 의하여 설치되었던 정동행성(征東行省)의 관직.
고려시대의 외관직.
도순문사 (都巡問使)
고려시대의 외관직.
고려시대의 임시관직.
도순위사 (都巡慰使)
고려시대의 임시관직.
도원수는 고려 말 조선시대에 외적 방어, 국외 원정, 내란 등에서 유장을 임명하여 군대를 통솔하던 임시 관직이다. 2품 이상의 문신을 임명하여 파견하였으며, 명칭은 서북면도원수, 평안도도원수, 서정도원수, 북정도원수, 사도도원수, 경상도도원수, 팔도도원수, 한남도원수, 서로도원수, 제도도원수 등으로 관할 영역과 역할에 따라 다양했다. 무신을 부원수로 임명한 것과는 달리 유장을 도원수로 임명한 것은 문치주의 사회였던 조선 왕조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도원수 (都元帥)
도원수는 고려 말 조선시대에 외적 방어, 국외 원정, 내란 등에서 유장을 임명하여 군대를 통솔하던 임시 관직이다. 2품 이상의 문신을 임명하여 파견하였으며, 명칭은 서북면도원수, 평안도도원수, 서정도원수, 북정도원수, 사도도원수, 경상도도원수, 팔도도원수, 한남도원수, 서로도원수, 제도도원수 등으로 관할 영역과 역할에 따라 다양했다. 무신을 부원수로 임명한 것과는 달리 유장을 도원수로 임명한 것은 문치주의 사회였던 조선 왕조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부직장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중앙관청의 행정실무를 담당하던 정8품의 참하 관직이다. 1308년에 충선왕(忠宣王)이 즉위하면서 실시한 관제개혁 때 처음 등장한 이후 조선 고종 때까지 존속하였다. 중앙관청에 배치되어 문서 정리 등의 행정실무를 담당하였다. 1466년(세조 12), 관제개혁 이후 유일하게 상서원에만 배정되었다.
부직장 (副直長)
부직장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중앙관청의 행정실무를 담당하던 정8품의 참하 관직이다. 1308년에 충선왕(忠宣王)이 즉위하면서 실시한 관제개혁 때 처음 등장한 이후 조선 고종 때까지 존속하였다. 중앙관청에 배치되어 문서 정리 등의 행정실무를 담당하였다. 1466년(세조 12), 관제개혁 이후 유일하게 상서원에만 배정되었다.
순찰사는 조선시대 지방에 파견되어 군사 업무 등을 처리하던 종2품의 임시 관직이다. 조선 후기에는 각 도의 관찰사도 순찰사직을 겸하였다. 고려 후기부터 파견되었으며, 처음에는 주로 국방·군사의 업무를 담당하다가 점차 다른 업무도 담당하기 시작했으며, 성종조 이후에는 주로 종2품으로 외방에 파견된 봉명 사신을 일컬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평상시에는 관찰사가 순찰사직을 겸직하였으며, 감영을 순영이라고도 불렀다.
순찰사 (巡察使)
순찰사는 조선시대 지방에 파견되어 군사 업무 등을 처리하던 종2품의 임시 관직이다. 조선 후기에는 각 도의 관찰사도 순찰사직을 겸하였다. 고려 후기부터 파견되었으며, 처음에는 주로 국방·군사의 업무를 담당하다가 점차 다른 업무도 담당하기 시작했으며, 성종조 이후에는 주로 종2품으로 외방에 파견된 봉명 사신을 일컬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평상시에는 관찰사가 순찰사직을 겸직하였으며, 감영을 순영이라고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