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관직"
검색결과 총 41건
사심관은 고려시대 지방에 연고가 있는 고관에게 자기의 고장을 다스리도록 임명한 특수관직이다. 935년(태조 18)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가 항복해 오자 그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고, 또 공신들을 각각 출신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해 부호장 이하의 향직을 다스리게 한 데서 비롯하였다. 아직 지방관 파견이 여의치 않던 때여서 사심관은 기인제도와 함께 지방 세력에 대한 중앙통제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중앙의 행정력이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면서 사심관이 민호와 노비를 가로채 사욕을 채우는 등 폐단이 심하여 1318년(충숙왕 5)에 폐지되었다.
사심관 (事審官)
사심관은 고려시대 지방에 연고가 있는 고관에게 자기의 고장을 다스리도록 임명한 특수관직이다. 935년(태조 18)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가 항복해 오자 그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고, 또 공신들을 각각 출신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해 부호장 이하의 향직을 다스리게 한 데서 비롯하였다. 아직 지방관 파견이 여의치 않던 때여서 사심관은 기인제도와 함께 지방 세력에 대한 중앙통제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중앙의 행정력이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면서 사심관이 민호와 노비를 가로채 사욕을 채우는 등 폐단이 심하여 1318년(충숙왕 5)에 폐지되었다.
교위는 고려·조선 초기의 무반 관직이다. 일명 오위(伍尉) 또는 위(尉)라고도 하며, 50명으로 편성된 오(伍)라는 단위 부대의 지휘관이다. 경군(京軍)인 이군 육위(二軍六衛)의 각 영(領)과 동북 양계(兩界)에 설치된 주진군(州鎭軍)에 배속되어 있었다. 교위는 자신들의 협의 기관인 교위방(校尉房)을 갖고 있었다. 교위는 전시과 규정에 따라 15결의 전지(田地)와 8결의 시지(柴地)를 받았으며, 23석 5두의 녹봉도 지급 받았다. 교위는 정9품의 무반 관직이지만 문반의 권무관이 관인으로 인정받는 것과 달리 이에 포함되지 못하였다.
교위 (校尉)
교위는 고려·조선 초기의 무반 관직이다. 일명 오위(伍尉) 또는 위(尉)라고도 하며, 50명으로 편성된 오(伍)라는 단위 부대의 지휘관이다. 경군(京軍)인 이군 육위(二軍六衛)의 각 영(領)과 동북 양계(兩界)에 설치된 주진군(州鎭軍)에 배속되어 있었다. 교위는 자신들의 협의 기관인 교위방(校尉房)을 갖고 있었다. 교위는 전시과 규정에 따라 15결의 전지(田地)와 8결의 시지(柴地)를 받았으며, 23석 5두의 녹봉도 지급 받았다. 교위는 정9품의 무반 관직이지만 문반의 권무관이 관인으로 인정받는 것과 달리 이에 포함되지 못하였다.
향직은 고려시대 문산계(文散階)·무산계(武散階)와 함께 사용된 품계이다. 9품 16계로 이루어졌는데 향리를 비롯한 무관(無官)의 노인, 무산계를 가진 자, 군인, 서리, 여진 추장, 일부 문무반 등에게 작(爵)과 같은 의미로 주어졌다. 중앙관인에 대응하여 향리에게 주어지는 품계로 구체적인 관직을 의미하는 실직체제가 아니라 계층적 품계로 추정된다. 문산계제의 성립 이후에는 향계(鄕階) 즉 지방의 위계제로 변화하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고려 고유의 사회질서를 체계화한 신분질서로 지방 세력의 존재 실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
향직 (鄕職)
향직은 고려시대 문산계(文散階)·무산계(武散階)와 함께 사용된 품계이다. 9품 16계로 이루어졌는데 향리를 비롯한 무관(無官)의 노인, 무산계를 가진 자, 군인, 서리, 여진 추장, 일부 문무반 등에게 작(爵)과 같은 의미로 주어졌다. 중앙관인에 대응하여 향리에게 주어지는 품계로 구체적인 관직을 의미하는 실직체제가 아니라 계층적 품계로 추정된다. 문산계제의 성립 이후에는 향계(鄕階) 즉 지방의 위계제로 변화하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고려 고유의 사회질서를 체계화한 신분질서로 지방 세력의 존재 실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
이속은 고려·조선 시대 품관(品官) 이외의 하급 관리직이다. 중앙과 지방의 모든 관아에서 기록·문서·전곡(錢穀)을 관장하던 말단 행정에 종사하였다. 세습하는 신분계층으로 직역을 부담하여 통치체제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제도적으로 품관에 진출할 수 있어서 서리직은 품관에 오르거나 과거에 응시하기도 했다. 고려후기에는 하급품관의 관인을 충당하는 방도로 이속직을 활용하였다. 조선 초에는 품관직으로 진출을 봉쇄하여 아전이라는 중인층 관직으로 정착되었다. 중앙에는 경아전으로 녹사·서리 등이 있었고, 지방에는 외아전으로 향리라고 불렀다.
이속 (吏屬)
이속은 고려·조선 시대 품관(品官) 이외의 하급 관리직이다. 중앙과 지방의 모든 관아에서 기록·문서·전곡(錢穀)을 관장하던 말단 행정에 종사하였다. 세습하는 신분계층으로 직역을 부담하여 통치체제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제도적으로 품관에 진출할 수 있어서 서리직은 품관에 오르거나 과거에 응시하기도 했다. 고려후기에는 하급품관의 관인을 충당하는 방도로 이속직을 활용하였다. 조선 초에는 품관직으로 진출을 봉쇄하여 아전이라는 중인층 관직으로 정착되었다. 중앙에는 경아전으로 녹사·서리 등이 있었고, 지방에는 외아전으로 향리라고 불렀다.
고려시대의 산직(散職).
동정직 (同正職)
고려시대의 산직(散職).
시중은 고려시대 종1품 수상직으로 중서문하성의 최고 관직이다. 도첨의시중, 첨의중찬, 도첨의중찬, 도첨의정승, 문하시중, 정승이라고도 하였다. 신라에서 집사성의 중시를 시중으로 고쳐 불렀고, 태봉에서도 광평성의 장관을 시중이라고 불렀다. 고려 성종 때에 내사문하성과 동시에 설치되었다. 종친에게 수여되는 종1품의 명예직이나 치사직, 증직과는 유일한 실직이었다. 원나라의 압박으로 첨의중찬으로 격하되었는데 1356년에 문하시중으로 복구되었다. 조선시대에 문하부가 의정부에 병합되면서 좌·우시중으로 되었다가 좌·우의정으로 이어졌다.
시중 (侍中)
시중은 고려시대 종1품 수상직으로 중서문하성의 최고 관직이다. 도첨의시중, 첨의중찬, 도첨의중찬, 도첨의정승, 문하시중, 정승이라고도 하였다. 신라에서 집사성의 중시를 시중으로 고쳐 불렀고, 태봉에서도 광평성의 장관을 시중이라고 불렀다. 고려 성종 때에 내사문하성과 동시에 설치되었다. 종친에게 수여되는 종1품의 명예직이나 치사직, 증직과는 유일한 실직이었다. 원나라의 압박으로 첨의중찬으로 격하되었는데 1356년에 문하시중으로 복구되었다. 조선시대에 문하부가 의정부에 병합되면서 좌·우시중으로 되었다가 좌·우의정으로 이어졌다.
경관직은 조선시대 중앙에 있는 각 관서의 관직이다. 조선 초기에 경관직과 외관직이 서로 상응하여 각각의 제도로 성립되면서 법전에 수록되었다. 조선시대의 경관직은 동반직과 서반직이 있었으며, 『경국대전』의 경관직은 동반 741, 서반 3,324로 합계 4,065 직과(職窠)가 수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는 일부 경관직이 새로 설치되거나 소멸되었고, 외관직이 경관직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경관직 (京官職)
경관직은 조선시대 중앙에 있는 각 관서의 관직이다. 조선 초기에 경관직과 외관직이 서로 상응하여 각각의 제도로 성립되면서 법전에 수록되었다. 조선시대의 경관직은 동반직과 서반직이 있었으며, 『경국대전』의 경관직은 동반 741, 서반 3,324로 합계 4,065 직과(職窠)가 수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는 일부 경관직이 새로 설치되거나 소멸되었고, 외관직이 경관직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순찰사는 조선시대 지방에 파견되어 군사 업무 등을 처리하던 종2품의 임시 관직이다. 조선 후기에는 각 도의 관찰사도 순찰사직을 겸하였다. 고려 후기부터 파견되었으며, 처음에는 주로 국방·군사의 업무를 담당하다가 점차 다른 업무도 담당하기 시작했으며, 성종조 이후에는 주로 종2품으로 외방에 파견된 봉명 사신을 일컬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평상시에는 관찰사가 순찰사직을 겸직하였으며, 감영을 순영이라고도 불렀다.
순찰사 (巡察使)
순찰사는 조선시대 지방에 파견되어 군사 업무 등을 처리하던 종2품의 임시 관직이다. 조선 후기에는 각 도의 관찰사도 순찰사직을 겸하였다. 고려 후기부터 파견되었으며, 처음에는 주로 국방·군사의 업무를 담당하다가 점차 다른 업무도 담당하기 시작했으며, 성종조 이후에는 주로 종2품으로 외방에 파견된 봉명 사신을 일컬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평상시에는 관찰사가 순찰사직을 겸직하였으며, 감영을 순영이라고도 불렀다.
조선 말기의 최고위관직으로, 국정을 총괄하는 내각의 수반.
총리대신 (總理大臣)
조선 말기의 최고위관직으로, 국정을 총괄하는 내각의 수반.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는 조선시대 서반 4품에 해당한 군사 지휘관의 관직이다. 조선 초기에는 변진의 군사 책임자로 첨절제사보다 품계가 낮은 인물을 보내면서 동첨절세사라고 호칭하였으며, 세종 대에는 4품을 동첨절제사로 호칭하였고, 진관 체제에서는 종4품의 서반직 품계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정착되어 조선 말까지 운영되었다.
동첨절제사 (同僉節制使)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는 조선시대 서반 4품에 해당한 군사 지휘관의 관직이다. 조선 초기에는 변진의 군사 책임자로 첨절제사보다 품계가 낮은 인물을 보내면서 동첨절세사라고 호칭하였으며, 세종 대에는 4품을 동첨절제사로 호칭하였고, 진관 체제에서는 종4품의 서반직 품계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정착되어 조선 말까지 운영되었다.
고구려시대의 지방관직.
가라달 (可邏達)
고구려시대의 지방관직.
고려시대의 외관직.
도순문사 (都巡問使)
고려시대의 외관직.
판사는 고려시대 각 관부의 최고 관직이다. 품계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중추원·삼사를 비롯해 시(寺)·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관부에 설치되었다. 1116년에 국자감의 판사가 대사성으로 개칭되었고, 1275년에는 한림원이 문한서로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 1298년에 관제개혁이 실시되면서 대부분의 관부에서 폐지되고, 도첨의사사·삼사·합문·사천대·태사국에만 존속하였다. 1308년에 실시된 관제개혁으로 도첨의사사·밀직사·삼사를 제외한 나머지 관부의 판사는 모두 혁파되었다. 1310년에 종부시의 판사가 부활되는 등 각 관부의 판사가 다시 설치되거나 신설되었다.
판사 (判事)
판사는 고려시대 각 관부의 최고 관직이다. 품계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중추원·삼사를 비롯해 시(寺)·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관부에 설치되었다. 1116년에 국자감의 판사가 대사성으로 개칭되었고, 1275년에는 한림원이 문한서로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 1298년에 관제개혁이 실시되면서 대부분의 관부에서 폐지되고, 도첨의사사·삼사·합문·사천대·태사국에만 존속하였다. 1308년에 실시된 관제개혁으로 도첨의사사·밀직사·삼사를 제외한 나머지 관부의 판사는 모두 혁파되었다. 1310년에 종부시의 판사가 부활되는 등 각 관부의 판사가 다시 설치되거나 신설되었다.
도원수는 고려 말 조선시대에 외적 방어, 국외 원정, 내란 등에서 유장을 임명하여 군대를 통솔하던 임시 관직이다. 2품 이상의 문신을 임명하여 파견하였으며, 명칭은 서북면도원수, 평안도도원수, 서정도원수, 북정도원수, 사도도원수, 경상도도원수, 팔도도원수, 한남도원수, 서로도원수, 제도도원수 등으로 관할 영역과 역할에 따라 다양했다. 무신을 부원수로 임명한 것과는 달리 유장을 도원수로 임명한 것은 문치주의 사회였던 조선 왕조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도원수 (都元帥)
도원수는 고려 말 조선시대에 외적 방어, 국외 원정, 내란 등에서 유장을 임명하여 군대를 통솔하던 임시 관직이다. 2품 이상의 문신을 임명하여 파견하였으며, 명칭은 서북면도원수, 평안도도원수, 서정도원수, 북정도원수, 사도도원수, 경상도도원수, 팔도도원수, 한남도원수, 서로도원수, 제도도원수 등으로 관할 영역과 역할에 따라 다양했다. 무신을 부원수로 임명한 것과는 달리 유장을 도원수로 임명한 것은 문치주의 사회였던 조선 왕조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사평(司評)은 조선시대, 장예원에 소속된 정6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형조도관이 변정원으로 바뀌면서 형조도관의 좌랑이 변정원 사평으로 바뀌었고, 다음 해 변정원이 장예원으로 바뀌면서 장예원에 속한 관직이 되었다. 노비 관련 송사를 판결하는 결송관인 사평은 1764년(영조 40)에 장예원이 보민사로 바뀌면서 혁파되었다.
사평 (司評)
사평(司評)은 조선시대, 장예원에 소속된 정6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형조도관이 변정원으로 바뀌면서 형조도관의 좌랑이 변정원 사평으로 바뀌었고, 다음 해 변정원이 장예원으로 바뀌면서 장예원에 속한 관직이 되었다. 노비 관련 송사를 판결하는 결송관인 사평은 1764년(영조 40)에 장예원이 보민사로 바뀌면서 혁파되었다.
사지(司紙)는 조선 전기에 조지서에 설치된 종6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조지소(造紙所)를 조지서(造紙署)로 개칭하면서 녹관으로 처음 설치하였으며, 1583년(선조 16)에 혁파되었다. 16세기에는 한때 사림 인물을 등용하는 관직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사지 (司紙)
사지(司紙)는 조선 전기에 조지서에 설치된 종6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조지소(造紙所)를 조지서(造紙署)로 개칭하면서 녹관으로 처음 설치하였으며, 1583년(선조 16)에 혁파되었다. 16세기에는 한때 사림 인물을 등용하는 관직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감동관은 조선시대 국가의 토목 공사나 서적 간행 등 특별한 사업을 감독 관리하기 위해 임시로 임명된 관직이다. 감동은 공사를 감독하고 채근한다는 의미로, 공사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서 대신과 당상관, 참상관, 잡직 등 다양한 부류가 감동관으로 임명되었다. 국가의 온갖 공사에 임명되는 임시 관직으로 사안에 따라 주어진 임무가 달랐으며, 사업의 결과에 따라 가자나 승서, 상물의 하사 등 포상을 받기도 하고, 문책을 당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크고 작은 각종 사업에 책임을 맡는 감동관을 임명하여 부실한 공사를 방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감동관 (監董官)
감동관은 조선시대 국가의 토목 공사나 서적 간행 등 특별한 사업을 감독 관리하기 위해 임시로 임명된 관직이다. 감동은 공사를 감독하고 채근한다는 의미로, 공사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서 대신과 당상관, 참상관, 잡직 등 다양한 부류가 감동관으로 임명되었다. 국가의 온갖 공사에 임명되는 임시 관직으로 사안에 따라 주어진 임무가 달랐으며, 사업의 결과에 따라 가자나 승서, 상물의 하사 등 포상을 받기도 하고, 문책을 당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크고 작은 각종 사업에 책임을 맡는 감동관을 임명하여 부실한 공사를 방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부사는 고려시대의 관직이다. 사(使)의 부직(副職)이다. 중앙직과 외직 등 여러 관서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품계와 정원, 연혁 등은 일정하지 않고 관서에 따라 다르다. 문종 때 관제에 의하면 도병마사·식목도감 등 합좌기관과 중추원·삼사 등 중앙관서에 두었다. 또한 영송도감·도재고 같은 임시관서에도 부사를 두었다. 외직으로는 도호부·목(牧)·방어진·주·군 등에 설치되어 있었다. 도병마사에는 정4품 이상의 경·감·시랑 등 6인이 겸하였고 식목도감에는 정3품 이상이 겸임하였다. 1298년부터는 경상도·전라도·충청도에 안렴사의 부직으로서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부사 (副使)
부사는 고려시대의 관직이다. 사(使)의 부직(副職)이다. 중앙직과 외직 등 여러 관서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품계와 정원, 연혁 등은 일정하지 않고 관서에 따라 다르다. 문종 때 관제에 의하면 도병마사·식목도감 등 합좌기관과 중추원·삼사 등 중앙관서에 두었다. 또한 영송도감·도재고 같은 임시관서에도 부사를 두었다. 외직으로는 도호부·목(牧)·방어진·주·군 등에 설치되어 있었다. 도병마사에는 정4품 이상의 경·감·시랑 등 6인이 겸하였고 식목도감에는 정3품 이상이 겸임하였다. 1298년부터는 경상도·전라도·충청도에 안렴사의 부직으로서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사(使)는 고려시대의 관직이다. 목종 때 처음으로 합문(閤門)에 두면서 중대성, 금오대에 설치되었다가 곧 혁파되었다. 이후 식목도감·사면도감 등의 중앙과 대도호부·목(牧)·대도독부 등 지방에 고루 설치되었다. 판사(判事) 아래에 있기도 했으나, 하급 관청일수록 최고 관직에 해당하는 예가 많았다. 품계와 정원은 관청에 따라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창·고 등 관청의 장관을 일컫다가 1466년 관제가 정비될 때 수(守) 또는 영(令)으로 개칭되었다. 다만 외관직으로서 대도호부·도호부·목의 정3품·종3품의 관직을 가리키게 되었다.
사 (使)
사(使)는 고려시대의 관직이다. 목종 때 처음으로 합문(閤門)에 두면서 중대성, 금오대에 설치되었다가 곧 혁파되었다. 이후 식목도감·사면도감 등의 중앙과 대도호부·목(牧)·대도독부 등 지방에 고루 설치되었다. 판사(判事) 아래에 있기도 했으나, 하급 관청일수록 최고 관직에 해당하는 예가 많았다. 품계와 정원은 관청에 따라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창·고 등 관청의 장관을 일컫다가 1466년 관제가 정비될 때 수(守) 또는 영(令)으로 개칭되었다. 다만 외관직으로서 대도호부·도호부·목의 정3품·종3품의 관직을 가리키게 되었다.
고려·조선시대 궁내의 여성들과 문무관처 등에게 내린 관직.
내직 (內職)
고려·조선시대 궁내의 여성들과 문무관처 등에게 내린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