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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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부는 고려 후기 무신 정변을 일으킨 주동 인물이며 무신정권 초기의 정국을 주도했던 무신이다. 1170년(의종 24) 대장군으로서 견룡 행수 산원인 이고, 이의방과 함께 무신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옹립하여 새로운 왕으로 세웠으며 다수의 문신을 살해하였다. 무신정권을 반대하는 김보당의 난,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고 이고, 이의방을 차례로 제거함으로써 권력을 집중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1179년(명종 9) 경대승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정중부 (鄭仲夫)
정중부는 고려 후기 무신 정변을 일으킨 주동 인물이며 무신정권 초기의 정국을 주도했던 무신이다. 1170년(의종 24) 대장군으로서 견룡 행수 산원인 이고, 이의방과 함께 무신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옹립하여 새로운 왕으로 세웠으며 다수의 문신을 살해하였다. 무신정권을 반대하는 김보당의 난,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고 이고, 이의방을 차례로 제거함으로써 권력을 집중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1179년(명종 9) 경대승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김보당의 난은 1173년(명종 3) 8월에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김보당은 무신 정변 이후, 공부시랑과 간의대부 등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따라서 그의 반란은 무신 정변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문신 계열이 그를 중심으로 하여, 이의방 등의 일방적인 정국 주도에 반발해 일으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반란을 통해 거제에 부처 되었던 전 왕인 의종을 경주로 피신시켜 구지배 체제로의 복구를 시도했지만, 문신의 대대적인 살육과 의종 시해로 끝을 맺었다.
김보당의 난 (金甫當의 亂)
김보당의 난은 1173년(명종 3) 8월에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김보당은 무신 정변 이후, 공부시랑과 간의대부 등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따라서 그의 반란은 무신 정변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문신 계열이 그를 중심으로 하여, 이의방 등의 일방적인 정국 주도에 반발해 일으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반란을 통해 거제에 부처 되었던 전 왕인 의종을 경주로 피신시켜 구지배 체제로의 복구를 시도했지만, 문신의 대대적인 살육과 의종 시해로 끝을 맺었다.
고려후기 낭장, 장군 겸 예부시랑 등을 역임한 무신.
김부 (金富)
고려후기 낭장, 장군 겸 예부시랑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후기 산원, 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박존위 (朴存威)
고려후기 산원, 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 후기에, 우간의대부, 좌간의대부, 판대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신윤 (金莘尹)
고려 후기에, 우간의대부, 좌간의대부, 판대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국자대사성, 추밀원 부사, 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평 (金平)
고려 후기에, 국자대사성, 추밀원 부사, 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녹사, 남로병마사 등을 역임한 관리.
장순석 (張純錫)
고려후기 녹사, 남로병마사 등을 역임한 관리.
고려 후기에, 흥교도관역사, 합문지후 등을 역임한 문신.
김영고 (金永固)
고려 후기에, 흥교도관역사, 합문지후 등을 역임한 문신.
의종은 고려 전기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146~1170년이며 인종의 맏아들이다. 1170년 서경에서 신령을 반포하여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왕조를 중흥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유교적 정치이념보다는 불교·음양설·선풍 등을 중요시하여 문신세력들의 심한 제약 속에 구체적인 성과를 낳지 못했다. 왕권과 문신세력의 대립·갈등은 정치·사회적 혼란을 초래했고 종국에는 무신정변을 발생시켰다. 1170년 정중부 등의 정변으로 폐위되어 거제현에 유배되었다. 1173년(명종 3)에 김보당의 거병이 실패하자 이의민에 의해 살해되었다.
의종 (毅宗)
의종은 고려 전기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146~1170년이며 인종의 맏아들이다. 1170년 서경에서 신령을 반포하여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왕조를 중흥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유교적 정치이념보다는 불교·음양설·선풍 등을 중요시하여 문신세력들의 심한 제약 속에 구체적인 성과를 낳지 못했다. 왕권과 문신세력의 대립·갈등은 정치·사회적 혼란을 초래했고 종국에는 무신정변을 발생시켰다. 1170년 정중부 등의 정변으로 폐위되어 거제현에 유배되었다. 1173년(명종 3)에 김보당의 거병이 실패하자 이의민에 의해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