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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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유신 묘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통일신라의 장수 김유신의 무덤이다. 이 무덤의 봉분은 지름 30미터에 이르며 주위에 둘레돌을 배치하였다. 버팀돌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은 갑옷을 입은 다른 왕릉과 달리 모두 평복에 무기를 들고 오른쪽을 보고 있다. 묘역에서도 곱돌로 만든 십이지신상인 토끼상과 말상이 발견되었는데, 십이지신상을 무덤 주위에 따로 묻어 버팀돌과 함께 이중배치한 점이 주목된다. 흥덕왕 때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높여 부르면서 둘레돌과 십이지신상을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학계 일각에서는 신무왕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경주 김유신 묘 (慶州 金庾信 墓)
경주 김유신 묘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통일신라의 장수 김유신의 무덤이다. 이 무덤의 봉분은 지름 30미터에 이르며 주위에 둘레돌을 배치하였다. 버팀돌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은 갑옷을 입은 다른 왕릉과 달리 모두 평복에 무기를 들고 오른쪽을 보고 있다. 묘역에서도 곱돌로 만든 십이지신상인 토끼상과 말상이 발견되었는데, 십이지신상을 무덤 주위에 따로 묻어 버팀돌과 함께 이중배치한 점이 주목된다. 흥덕왕 때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높여 부르면서 둘레돌과 십이지신상을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학계 일각에서는 신무왕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대각간(大角干)은 신라시대에 관리들에게 수여된 관등의 하나로, 제1등 각간의 상위에 비상설로 설치된 관등이다. 신라 17관등제에서 제1등에 해당하는 각간(또는 이벌찬)의 상위에 비상설로 설치되었다. 진흥왕 대 영역 확장 과정에서 군공을 세운 최고위 귀족을 격려하기 위하여 처음 설치한 이후 신라 말까지 공을 세운 귀족들을 대상으로 수여하였다.
대각간 (大角干)
대각간(大角干)은 신라시대에 관리들에게 수여된 관등의 하나로, 제1등 각간의 상위에 비상설로 설치된 관등이다. 신라 17관등제에서 제1등에 해당하는 각간(또는 이벌찬)의 상위에 비상설로 설치되었다. 진흥왕 대 영역 확장 과정에서 군공을 세운 최고위 귀족을 격려하기 위하여 처음 설치한 이후 신라 말까지 공을 세운 귀족들을 대상으로 수여하였다.
「각간선생실기」는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조를 바탕으로 하면서, 여러 설화와 구전되던 전설들을 더하고 『삼국지연의』를 모방하여 소설식으로 번안한 작품이다. 조선 후기 장편 연의소설 창작의 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각간선생실기 (角干先生實記)
「각간선생실기」는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조를 바탕으로 하면서, 여러 설화와 구전되던 전설들을 더하고 『삼국지연의』를 모방하여 소설식으로 번안한 작품이다. 조선 후기 장편 연의소설 창작의 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김서현은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관 및 장군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신라에 투항한 금관국왕의 후손으로서 신라 왕실 인물인 숙흘종의 딸 만명과 혼인하여 김유신을 낳았다. 김서현의 딸 문희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혼인하여 문명왕후가 되었다.
김서현 (金舒玄)
김서현은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관 및 장군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신라에 투항한 금관국왕의 후손으로서 신라 왕실 인물인 숙흘종의 딸 만명과 혼인하여 김유신을 낳았다. 김서현의 딸 문희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혼인하여 문명왕후가 되었다.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옛 지명.
동잠 (桐岺)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옛 지명.
삼국시대 나당연합군의 사비성 함락 당시의 장수. 문장가.
김양도 (金良圖)
삼국시대 나당연합군의 사비성 함락 당시의 장수. 문장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왕조에서 70세 이상의 연로한 대신들에게 내린 하사품.
궤장 (几杖)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왕조에서 70세 이상의 연로한 대신들에게 내린 하사품.
642년(선덕여왕 11) 대야성(大耶城: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을 둘러싸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전투.
대야성전투 (大耶城戰鬪)
642년(선덕여왕 11) 대야성(大耶城: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을 둘러싸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전투.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황금서당 보기감을 역임한 장수.
김영윤 (金令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황금서당 보기감을 역임한 장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발해 침공 당시의 장수.
김윤문 (金允文)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발해 침공 당시의 장수.
김윤중은 신라 중대에 중시(中侍)와 장군으로 활동한 김유신의 적손(嫡孫)이다. 윤충(允忠)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성덕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소원한 신하라는 이유로 질투하는 종실척리(宗室戚里)들이 있었다. 당나라에 의해 지목되어 발해 공격에 참여하였다.
김윤중 (金允中)
김윤중은 신라 중대에 중시(中侍)와 장군으로 활동한 김유신의 적손(嫡孫)이다. 윤충(允忠)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성덕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소원한 신하라는 이유로 질투하는 종실척리(宗室戚里)들이 있었다. 당나라에 의해 지목되어 발해 공격에 참여하였다.
삼국시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왕비.
문명왕후 (文明王后)
삼국시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왕비.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
경주 천관사지 (慶州 天官寺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김유신의 처로서 영묘사에서 수도한 비구니.
법정 (法淨)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김유신의 처로서 영묘사에서 수도한 비구니.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도당산(都堂山)에 있는 조선시대 신라 장수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길상사 (吉祥祠)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도당산(都堂山)에 있는 조선시대 신라 장수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삼국시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일곱째 아들인 왕자.
김개원 (金愷元)
삼국시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일곱째 아들인 왕자.
삼국시대 때, 고구려 옹산성 침공에 가담한 신라의 장수.
고순 (高純)
삼국시대 때, 고구려 옹산성 침공에 가담한 신라의 장수.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斷石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염원을 신명하게 기도하던 사찰.
단석산 신선사 (斷石山 神仙寺)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斷石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염원을 신명하게 기도하던 사찰.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선덕여왕 (善德女王)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비담의 난은 신라 선덕여왕 재위 마지막 해에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다. 비담은 645년(선덕여왕 14)에 귀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에 올라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이다. 1년 가량 뒤에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여왕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선덕여왕을 옹위하던 김유신·김춘추 편의 군사와 대치하였으나 결국 패하였다. 이로써 선덕여왕에서 진덕여왕으로 이어지는 성골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 세력은 후퇴하고 김유신·김춘추 등 율령국가를 지향하는 세력이 승리해 장차 무열왕계의 전제 왕조가 성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비담의 난 (毗曇의 亂)
비담의 난은 신라 선덕여왕 재위 마지막 해에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다. 비담은 645년(선덕여왕 14)에 귀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에 올라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이다. 1년 가량 뒤에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여왕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선덕여왕을 옹위하던 김유신·김춘추 편의 군사와 대치하였으나 결국 패하였다. 이로써 선덕여왕에서 진덕여왕으로 이어지는 성골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 세력은 후퇴하고 김유신·김춘추 등 율령국가를 지향하는 세력이 승리해 장차 무열왕계의 전제 왕조가 성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