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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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년(선덕여왕 11) 대야성(大耶城: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을 둘러싸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전투.
대야성전투 (大耶城戰鬪)
642년(선덕여왕 11) 대야성(大耶城: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을 둘러싸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전투.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선덕여왕 (善德女王)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비담의 난은 신라 선덕여왕 재위 마지막 해에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다. 비담은 645년(선덕여왕 14)에 귀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에 올라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이다. 1년 가량 뒤에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여왕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선덕여왕을 옹위하던 김유신·김춘추 편의 군사와 대치하였으나 결국 패하였다. 이로써 선덕여왕에서 진덕여왕으로 이어지는 성골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 세력은 후퇴하고 김유신·김춘추 등 율령국가를 지향하는 세력이 승리해 장차 무열왕계의 전제 왕조가 성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비담의 난 (毗曇의 亂)
비담의 난은 신라 선덕여왕 재위 마지막 해에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다. 비담은 645년(선덕여왕 14)에 귀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에 올라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이다. 1년 가량 뒤에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여왕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선덕여왕을 옹위하던 김유신·김춘추 편의 군사와 대치하였으나 결국 패하였다. 이로써 선덕여왕에서 진덕여왕으로 이어지는 성골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 세력은 후퇴하고 김유신·김춘추 등 율령국가를 지향하는 세력이 승리해 장차 무열왕계의 전제 왕조가 성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진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47~654년이며, 신라시대 3인의 여왕 중 한 사람으로, 선덕여왕의 유언에 따라 즉위했다. 즉위하면서 비담의 난을 진압했고,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김유신을 중심으로 방어하는 한편,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내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신라 문제에 소극적이던 당나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허락받고 긴밀한 외교관계를 구축했다. 의관을 중국식으로 바꿨고 연호도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는 등 한화정책을 폈으며, 집사부 설치, 행정관부의 체계화로 중앙집권적 귀족관료체계를 완성했다.
진덕여왕 (眞德女王)
진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47~654년이며, 신라시대 3인의 여왕 중 한 사람으로, 선덕여왕의 유언에 따라 즉위했다. 즉위하면서 비담의 난을 진압했고,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김유신을 중심으로 방어하는 한편,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내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신라 문제에 소극적이던 당나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허락받고 긴밀한 외교관계를 구축했다. 의관을 중국식으로 바꿨고 연호도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는 등 한화정책을 폈으며, 집사부 설치, 행정관부의 체계화로 중앙집권적 귀족관료체계를 완성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왕조에서 70세 이상의 연로한 대신들에게 내린 하사품.
궤장 (几杖)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왕조에서 70세 이상의 연로한 대신들에게 내린 하사품.
신라 중고기의 화랑도.
용화향도 (龍華香徒)
신라 중고기의 화랑도.
상대등은 신라시대의 최고 관직이다. 상신(上臣)이라고도 한다. 531년에 법흥왕이 처음 설치하였다. 대등(大等)으로 구성된 귀족회의의 주재자로서 신라 귀족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진골 중에서도 이찬(伊飡)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가 임명되었으며 병마사(兵馬事)를 제외한 국사(國事)를 전담하였다. 국왕 중심의 집권체제가 성립되면서 귀족세력을 관료화하여 일원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하는 행정개편의 일환으로 설치된 측면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종신직(終身職)이었으나 국왕이 교체될 때 상대등도 교체되었다. 『삼국사기』에는 43명의 상대등에 대한 기록이 있다.
상대등 (上大等)
상대등은 신라시대의 최고 관직이다. 상신(上臣)이라고도 한다. 531년에 법흥왕이 처음 설치하였다. 대등(大等)으로 구성된 귀족회의의 주재자로서 신라 귀족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진골 중에서도 이찬(伊飡)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가 임명되었으며 병마사(兵馬事)를 제외한 국사(國事)를 전담하였다. 국왕 중심의 집권체제가 성립되면서 귀족세력을 관료화하여 일원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하는 행정개편의 일환으로 설치된 측면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종신직(終身職)이었으나 국왕이 교체될 때 상대등도 교체되었다. 『삼국사기』에는 43명의 상대등에 대한 기록이 있다.
신라시대 화랑도(花郞徒) 중에서 국왕이 특별히 임명한 자.
국선 (國仙)
신라시대 화랑도(花郞徒) 중에서 국왕이 특별히 임명한 자.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 제10대 구형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능. 왕릉.
전 구형왕릉 (傳 仇衡王陵)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 제10대 구형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능. 왕릉.
경주 김유신 묘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통일신라의 장수 김유신의 무덤이다. 이 무덤의 봉분은 지름 30미터에 이르며 주위에 둘레돌을 배치하였다. 버팀돌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은 갑옷을 입은 다른 왕릉과 달리 모두 평복에 무기를 들고 오른쪽을 보고 있다. 묘역에서도 곱돌로 만든 십이지신상인 토끼상과 말상이 발견되었는데, 십이지신상을 무덤 주위에 따로 묻어 버팀돌과 함께 이중배치한 점이 주목된다. 흥덕왕 때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높여 부르면서 둘레돌과 십이지신상을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학계 일각에서는 신무왕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경주 김유신 묘 (慶州 金庾信 墓)
경주 김유신 묘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통일신라의 장수 김유신의 무덤이다. 이 무덤의 봉분은 지름 30미터에 이르며 주위에 둘레돌을 배치하였다. 버팀돌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은 갑옷을 입은 다른 왕릉과 달리 모두 평복에 무기를 들고 오른쪽을 보고 있다. 묘역에서도 곱돌로 만든 십이지신상인 토끼상과 말상이 발견되었는데, 십이지신상을 무덤 주위에 따로 묻어 버팀돌과 함께 이중배치한 점이 주목된다. 흥덕왕 때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높여 부르면서 둘레돌과 십이지신상을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학계 일각에서는 신무왕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수묘인은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왕이나 귀족의 능묘를 지키고 제사 등의 행사에 동원되었던 연호(烟戶)이다. 수묘호(守墓戶)이나 수릉인(守陵人)이라고도 한다. 죽은 뒤에도 죽기 전과 같은 생활을 한다고 믿는 계세사상(繼世思想)과 조상의 영혼이 후손들을 돌보아 준다는 조상숭배사상의 영향으로 왕이나 귀족들은 무덤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광개토왕릉비문」에는 수묘인 연호(烟戶)의 편성과 수묘제(守墓制)의 정비 등에 대한 기록이 전하고 있다. 신라와 백제에서도 수묘인 제도가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묘인 (守墓人)
수묘인은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왕이나 귀족의 능묘를 지키고 제사 등의 행사에 동원되었던 연호(烟戶)이다. 수묘호(守墓戶)이나 수릉인(守陵人)이라고도 한다. 죽은 뒤에도 죽기 전과 같은 생활을 한다고 믿는 계세사상(繼世思想)과 조상의 영혼이 후손들을 돌보아 준다는 조상숭배사상의 영향으로 왕이나 귀족들은 무덤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광개토왕릉비문」에는 수묘인 연호(烟戶)의 편성과 수묘제(守墓制)의 정비 등에 대한 기록이 전하고 있다. 신라와 백제에서도 수묘인 제도가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 신라의 향가 「원사(怨詞)」를 지은 기녀.
천관 (天官)
삼국시대 신라의 향가 「원사(怨詞)」를 지은 기녀.
서울·중부지방의 굿에서 말명신을 모시는굿거리.
말명굿
서울·중부지방의 굿에서 말명신을 모시는굿거리.
김서현은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관 및 장군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신라에 투항한 금관국왕의 후손으로서 신라 왕실 인물인 숙흘종의 딸 만명과 혼인하여 김유신을 낳았다. 김서현의 딸 문희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혼인하여 문명왕후가 되었다.
김서현 (金舒玄)
김서현은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관 및 장군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신라에 투항한 금관국왕의 후손으로서 신라 왕실 인물인 숙흘종의 딸 만명과 혼인하여 김유신을 낳았다. 김서현의 딸 문희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혼인하여 문명왕후가 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봉서산(鳳棲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문두루비법의 중심도량이 되었던 사찰.
봉서산 원원사 (鳳棲山 遠願寺)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봉서산(鳳棲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문두루비법의 중심도량이 되었던 사찰.
삼국시대 김유신탄생설화에 나오는 무속인. 점술가.
추남 (楸南)
삼국시대 김유신탄생설화에 나오는 무속인. 점술가.
충청북도 중부에 위치한 군.
진천군 (鎭川郡)
충청북도 중부에 위치한 군.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南山)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유신이 기녀 천관의 집에 세운 사찰.
남산 천관사 (南山 天官寺)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南山)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유신이 기녀 천관의 집에 세운 사찰.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봉서산 원원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2기의 석조 불탑.
경주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 (慶州 遠願寺址 東·西 三層石塔)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봉서산 원원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2기의 석조 불탑.
삼국시대 신라의 좌장군, 대당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
품일 (品日)
삼국시대 신라의 좌장군, 대당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