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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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위항시인 김진수의 시 334수를 수록하여 1856년에 간행한 시집.
벽로집 (碧蘆集)
조선후기 위항시인 김진수의 시 334수를 수록하여 1856년에 간행한 시집.
「김경여전(金慶餘傳)」은 김진수가 지은 김경여의 전기이다. 김진수는 김경여의 아들이다. 김경여는 인조 재위 기간에 여러 벼슬을 거쳤는데, 특히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독전어사(督戰御史)로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피란한 바 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청과의 화친을 비판하며 벼슬을 그만두고 회덕(懷德)에 은거해 생활하였다. 출처와 의리에 분명했던 인물로 평가받았으며, 사후에는 정절서원(靖節書院)에 배향되었다. 「김경여전」은 이러한 아버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아들 김진수가 남긴 전기이다.
김경여전 (金慶餘傳)
「김경여전(金慶餘傳)」은 김진수가 지은 김경여의 전기이다. 김진수는 김경여의 아들이다. 김경여는 인조 재위 기간에 여러 벼슬을 거쳤는데, 특히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독전어사(督戰御史)로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피란한 바 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청과의 화친을 비판하며 벼슬을 그만두고 회덕(懷德)에 은거해 생활하였다. 출처와 의리에 분명했던 인물로 평가받았으며, 사후에는 정절서원(靖節書院)에 배향되었다. 「김경여전」은 이러한 아버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아들 김진수가 남긴 전기이다.
해방기념사진전은 1946년 3·1절을 기념하여 『자유신문』이 주최하고 조선사진건설위원회가 후원하여 5월 6일 동방무역주식회사의 전시장에서 개최된 사진전이다. 형식상으로는 『자유신문』 주최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1945년 8월 박필호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해방 직후 최초의 사진 단체인 '조선사진건설위원회'가 주도한 전시였다. 건국의 내용과 조선적 정서를 담은 사진을 공모해서 심사를 거친 사진 작품을 전시하였다.
해방기념사진전 (解放紀念寫眞展)
해방기념사진전은 1946년 3·1절을 기념하여 『자유신문』이 주최하고 조선사진건설위원회가 후원하여 5월 6일 동방무역주식회사의 전시장에서 개최된 사진전이다. 형식상으로는 『자유신문』 주최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1945년 8월 박필호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해방 직후 최초의 사진 단체인 '조선사진건설위원회'가 주도한 전시였다. 건국의 내용과 조선적 정서를 담은 사진을 공모해서 심사를 거친 사진 작품을 전시하였다.
허바허바사장은 1946년 1월 김진수와 김주성이 지금의 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공동으로 창업한 사진관이다. 촬영부터 현상과 인화 그리고 앨범 제작에 이르기까지 사진의 전 영역을 포괄하여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영업 방침을 천명했다. 한편 1947년 서울에 창립한 좌익 계열의 사진단체인 조선사진동맹의 본부 사무실로 사용하며, 동시에 조직의 활동 자금을 마련할 목적도 있었다. 사진관의 사진사와 영업장소는 몇 차례 바뀌었지만 현재도 영업을 하고 있으며,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허바허바사장 (―寫場)
허바허바사장은 1946년 1월 김진수와 김주성이 지금의 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공동으로 창업한 사진관이다. 촬영부터 현상과 인화 그리고 앨범 제작에 이르기까지 사진의 전 영역을 포괄하여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영업 방침을 천명했다. 한편 1947년 서울에 창립한 좌익 계열의 사진단체인 조선사진동맹의 본부 사무실로 사용하며, 동시에 조직의 활동 자금을 마련할 목적도 있었다. 사진관의 사진사와 영업장소는 몇 차례 바뀌었지만 현재도 영업을 하고 있으며,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제1회 임석제 예술사진개인전'은 1948년, 해방 후 국내에서 열린 첫 사진 개인전이자, 처음으로 사회주의리얼리즘이라는 사진 형식을 선보인 사진전이다. 부두 노동자, 소작농 등 노동자와 농민을 주로 촬영했으며, 그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과 확연히 구분되는 사진을 처음 시도했다는 점에서 선구적 전시로 평가받는다.
제1회임석제예술사진개인전 (林奭濟第1回藝術寫眞個人展)
'제1회 임석제 예술사진개인전'은 1948년, 해방 후 국내에서 열린 첫 사진 개인전이자, 처음으로 사회주의리얼리즘이라는 사진 형식을 선보인 사진전이다. 부두 노동자, 소작농 등 노동자와 농민을 주로 촬영했으며, 그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과 확연히 구분되는 사진을 처음 시도했다는 점에서 선구적 전시로 평가받는다.
오리엔탈사진학교는 1929년 일본 도쿄 신주쿠에 설립되었던, 한국 사진의 주요 인물 현일영·유영국·김진수 등이 수학한 사진 교육기관이다. 일본 최초의 사진 사업체였던 오리엔탈사진공업소가 일본 사진계의 수준 향상과 자사의 제품 홍보 및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현일영과 임정식, 유영국, 김진수, 김주성 등 다수의 한국인 학생들이 수학하였다.
오리엔탈사진학교 (오리엔탈寫眞學校)
오리엔탈사진학교는 1929년 일본 도쿄 신주쿠에 설립되었던, 한국 사진의 주요 인물 현일영·유영국·김진수 등이 수학한 사진 교육기관이다. 일본 최초의 사진 사업체였던 오리엔탈사진공업소가 일본 사진계의 수준 향상과 자사의 제품 홍보 및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현일영과 임정식, 유영국, 김진수, 김주성 등 다수의 한국인 학생들이 수학하였다.
조광사진구락부는 1948년 좌익 성향의 사진가 단체인 조선사진동맹의 산하 조직으로 설립된 단체이다. 조광사진구락부의 구성원들은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현실 도피적이고 혁명의식과 배치되는 낭만적이며 목가적인 주제를 다르는 사진 및 살롱사진 스타일의 예술 행위를 비판하면서 민중들의 생활상과 노동현장, 사회의 주변인인 하층민의 실상 등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재를 사진 재현의 대상으로 삼았다.
조광사진구락부 (朝光寫眞俱樂部)
조광사진구락부는 1948년 좌익 성향의 사진가 단체인 조선사진동맹의 산하 조직으로 설립된 단체이다. 조광사진구락부의 구성원들은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현실 도피적이고 혁명의식과 배치되는 낭만적이며 목가적인 주제를 다르는 사진 및 살롱사진 스타일의 예술 행위를 비판하면서 민중들의 생활상과 노동현장, 사회의 주변인인 하층민의 실상 등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재를 사진 재현의 대상으로 삼았다.
조선사진건설위원회는 1945년 8월 박필호가 중심이 되어 신문화건설운동에 가담하고 한국사진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목적으로 결성한 사진 단체이다. 해방 직후 최초로 조직된 사진 단체로서 일반적인 사진 활동뿐만 아니라 교육, 영업, 화학, 기술 등 사진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활동 목표를 갖고 활동을 했다.
조선사진건설위원회 (朝鮮寫眞建設委員會)
조선사진건설위원회는 1945년 8월 박필호가 중심이 되어 신문화건설운동에 가담하고 한국사진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목적으로 결성한 사진 단체이다. 해방 직후 최초로 조직된 사진 단체로서 일반적인 사진 활동뿐만 아니라 교육, 영업, 화학, 기술 등 사진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활동 목표를 갖고 활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