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당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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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조의(朝議)를 행할 때 당상(堂上)의 교의(交椅)에 앉을 수 없는 관원 또는 그 관계(官階).
당하관 (堂下官)
조선시대 조의(朝議)를 행할 때 당상(堂上)의 교의(交椅)에 앉을 수 없는 관원 또는 그 관계(官階).
대감은 조선시대 정2품 이상의 관계를 가진 현직자(現職者)나 산직자(散職者)를 공경하여 부르던 칭호이다. 호칭으로 사용된 연원은 정확하지 않다. 조선시대에 명나라에서 사신으로 파견한 환관(宦官)에 대한 호칭으로 처음 사용하였다. 세종 말부터 조선의 고위 관직자에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고위 관료는 대체로 당상관으로 불리는 사람들인데 그 가운데에서도 정2품관 이상을 대감이라고 불렀다. 종2품에서 정3품에 이르는 당상관은 영감(令監)이라고 불렀다. 점차 전·현직을 막론하고 고위 관직자에 대한 존칭으로 통용되었다.
대감 (大監)
대감은 조선시대 정2품 이상의 관계를 가진 현직자(現職者)나 산직자(散職者)를 공경하여 부르던 칭호이다. 호칭으로 사용된 연원은 정확하지 않다. 조선시대에 명나라에서 사신으로 파견한 환관(宦官)에 대한 호칭으로 처음 사용하였다. 세종 말부터 조선의 고위 관직자에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고위 관료는 대체로 당상관으로 불리는 사람들인데 그 가운데에서도 정2품관 이상을 대감이라고 불렀다. 종2품에서 정3품에 이르는 당상관은 영감(令監)이라고 불렀다. 점차 전·현직을 막론하고 고위 관직자에 대한 존칭으로 통용되었다.
관압사는 조선시대, 명나라에 4년에 1번씩 말을 조공할 때 파견되던 사행(使行)이다. 관압사는 세종 대 이래 정조사(正朝使)와 동행하였고, 1531년(중종 26) 정조사가 동지사(冬至使)로 대체되면서, 동지사와 함께 파견되었다. 관압사는 정3품 당상(堂上) 문무 관료 중에서 선정되었고, 당상관인 역관(譯官) 중에서 선정되기도 하였다. 관압사는 명나라와의 관계 속에 형성되었으며, 명 시기에만 존속하였고, 청나라와 관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파견되지 않았다.
관압사 (管押使)
관압사는 조선시대, 명나라에 4년에 1번씩 말을 조공할 때 파견되던 사행(使行)이다. 관압사는 세종 대 이래 정조사(正朝使)와 동행하였고, 1531년(중종 26) 정조사가 동지사(冬至使)로 대체되면서, 동지사와 함께 파견되었다. 관압사는 정3품 당상(堂上) 문무 관료 중에서 선정되었고, 당상관인 역관(譯官) 중에서 선정되기도 하였다. 관압사는 명나라와의 관계 속에 형성되었으며, 명 시기에만 존속하였고, 청나라와 관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파견되지 않았다.
대차지는 조선후기에 왕실의 조달이나 제사를 담당한 각궁(各宮)에서 직제상 최상위에 있었던 직책이다. 대차지의 직책에는 내시, 즉 환관이 임명되었다. 대차지는 각궁 내부에 직제상 존재한 당상관이 아니었으며, 당상인 환관에 의해 각궁이 관할되고 있었을 뿐이다.
대차지 (大次知)
대차지는 조선후기에 왕실의 조달이나 제사를 담당한 각궁(各宮)에서 직제상 최상위에 있었던 직책이다. 대차지의 직책에는 내시, 즉 환관이 임명되었다. 대차지는 각궁 내부에 직제상 존재한 당상관이 아니었으며, 당상인 환관에 의해 각궁이 관할되고 있었을 뿐이다.
수찬관은 조선시대에 춘추관 소속의 정3품 관직의 겸관이다. 조선시대에 춘추관 직제는 주요 관직을 중심으로 한 겸임사관제로 운영되었다. 『경국대전』에 수찬관은 정3품 당상관이 맡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보통 승정원의 여섯 승지와 홍문관의 부제학이 담당하였다. 다만 승지는 실록 부록의 편찬관 명단에는 빠져 있는데, 평상시 기사 사관만을 담당하고 실록 편찬 작업에는 빠졌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수찬관 (修撰官)
수찬관은 조선시대에 춘추관 소속의 정3품 관직의 겸관이다. 조선시대에 춘추관 직제는 주요 관직을 중심으로 한 겸임사관제로 운영되었다. 『경국대전』에 수찬관은 정3품 당상관이 맡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보통 승정원의 여섯 승지와 홍문관의 부제학이 담당하였다. 다만 승지는 실록 부록의 편찬관 명단에는 빠져 있는데, 평상시 기사 사관만을 담당하고 실록 편찬 작업에는 빠졌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부제조는 조선시대에 당상관 실직이 설치되지 않은 관서의 업무를 감독하기 위하여 다른 관서의 관원이 겸하던 정3품 당상관 겸임 관직이다. 정1품은 도제조(都提調), 2품 이상은 제조(提調), 통정대부는 부제조(副提調)라고 일컬었다. 부제조는 도제조나 제조가 설치된 관서에서는 상위 제조를 보좌하면서 업무를 수행하였고, 부제조만 설치된 관서에서는 총괄적인 책임까지 맡았다. 부제주, 부좨주라고도 하였다.
부제조 (副提調)
부제조는 조선시대에 당상관 실직이 설치되지 않은 관서의 업무를 감독하기 위하여 다른 관서의 관원이 겸하던 정3품 당상관 겸임 관직이다. 정1품은 도제조(都提調), 2품 이상은 제조(提調), 통정대부는 부제조(副提調)라고 일컬었다. 부제조는 도제조나 제조가 설치된 관서에서는 상위 제조를 보좌하면서 업무를 수행하였고, 부제조만 설치된 관서에서는 총괄적인 책임까지 맡았다. 부제주, 부좨주라고도 하였다.
안무사는 조선시대에 백성의 사정을 살펴서 위로하기 위해 특별히 파견하였던 당상관 외방 사신이다. 조선 초기에는 제사(諸使)의 하나로 3품 품계의 안무사를 파견하였으며, 임진왜란과 무신란이 발생했을 때에는 백성들을 위무하고, 의병을 불러 모으기 위해 재상급 관료를 파견하였다. 고종대에는 함경도와 평안도에 사안이 발생했을 때 안무사를 파견하여 지역민을 어루만져 달래고 해당 지역 통치 업무도 수행하였다.
안무사 (安撫使)
안무사는 조선시대에 백성의 사정을 살펴서 위로하기 위해 특별히 파견하였던 당상관 외방 사신이다. 조선 초기에는 제사(諸使)의 하나로 3품 품계의 안무사를 파견하였으며, 임진왜란과 무신란이 발생했을 때에는 백성들을 위무하고, 의병을 불러 모으기 위해 재상급 관료를 파견하였다. 고종대에는 함경도와 평안도에 사안이 발생했을 때 안무사를 파견하여 지역민을 어루만져 달래고 해당 지역 통치 업무도 수행하였다.
조선시대 무신 정3품 당상관의 품계명.
절충장군 (折衝將軍)
조선시대 무신 정3품 당상관의 품계명.
찰리사는 조선시대 3품 당상관이 왕명을 받들고 외방에 파견된 사신의 명칭이다. 고려 말 조선 초기에는 국왕의 명을 받들어 외방에 파견된 다양한 사신의 명칭 가운데 하나였으나, 관계 중심의 관료제가 운영되면서 성종 대 이후에는 3품 당상관 외방 사신을 일컫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의 찰리사는 원칙적으로 3품 재상이 군무를 맡아 외방에 나가는 사신을 일컫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찰리사 (察理使)
찰리사는 조선시대 3품 당상관이 왕명을 받들고 외방에 파견된 사신의 명칭이다. 고려 말 조선 초기에는 국왕의 명을 받들어 외방에 파견된 다양한 사신의 명칭 가운데 하나였으나, 관계 중심의 관료제가 운영되면서 성종 대 이후에는 3품 당상관 외방 사신을 일컫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의 찰리사는 원칙적으로 3품 재상이 군무를 맡아 외방에 나가는 사신을 일컫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문신 정3품 상계(上階)의 품계명.
통정대부 (通政大夫)
조선시대 문신 정3품 상계(上階)의 품계명.
조선시대 문신 정3품 하계(下階)의 품계명.
통훈대부 (通訓大夫)
조선시대 문신 정3품 하계(下階)의 품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