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조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당상관 실직이 설치되지 않은 관서의 업무를 감독하기 위하여 다른 관서의 관원이 겸하던 정3품 당상관 겸임 관직.
이칭
속칭
부제주, 부좨주
제도/관직
설치 시기
조선 초기
내용 요약

부제조는 조선시대에 당상관 실직이 설치되지 않은 관서의 업무를 감독하기 위하여 다른 관서의 관원이 겸하던 정3품 당상관 겸임 관직이다. 정1품은 도제조(都提調), 2품 이상은 제조(提調), 통정대부는 부제조(副提調)라고 일컬었다. 부제조는 도제조나 제조가 설치된 관서에서는 상위 제조를 보좌하면서 업무를 수행하였고, 부제조만 설치된 관서에서는 총괄적인 책임까지 맡았다. 부제주, 부좨주라고도 하였다.

정의
조선시대, 당상관 실직이 설치되지 않은 관서의 업무를 감독하기 위하여 다른 관서의 관원이 겸하던 정3품 당상관 겸임 관직.
설치 목적

관서의 실직 관직자 가운데 당상관이 없는 관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관서를 총괄하여 다스리고 낭리(郞吏)를 출척(黜陟)하는 책임자로 제조 직제가 설치되었다. 제조 직제는 중국 송 · 원나라 때 등장한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 원간섭기에 도입되었는데,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를 거치면서 관직자의 품계에 따라 도제조 · 제조 · 부제조 등으로 분화되었다.

임무와 직능

『경국대전』의 규정에 의하면, 제조 직제는 정1품은 도제조(都提調), 2품 이상은 제조(提調), 통정대부는 부제조(副提調)라고 일컬었다. 제조 직제의 도제조 · 제조 · 부제조는 품계에 따른 구분일 뿐, 임무와 직능상의 구별 없이 담당하고 있는 해당 관서의 업무를 총괄하여 다스리고 낭리를 출척하는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부제조는 도제조나 제조가 설치되어 있는 관서에서는 상위 제조를 보좌하면서 업무를 수행하였고, 부제조만 설치되어 있는 관서에서는 총괄적인 책임까지 맡았다.

변천사항

조선 초기의 실록 기사에서는 별와요(別瓦窯) 사역원(司譯院) 등에 부제조가 설치되어 운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1423년(세종 5) 3월에는 각사의 실안제조와 제조를 정하면서, 인수부(仁壽府), 인순부(仁順府), 승문원(承文院), 훈련관(訓鍊觀), 내자시(內資寺), 내섬시(內贍寺), 예빈시(禮賓寺), 사선서(司膳署), 경복궁(景福宮),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 관습도감(慣習都監), 상림원(上林園), 도화원(圖畫院), 복흥고(福興庫) 등에 실안부제조(實案副提調) 등에 각 1명씩을 부제조를 두었다.

이를 대언사의 관원(후대의 승정원 승지)들이 각각 나누어 맡았으며, 소격전(昭格殿)의 실안부제조는 2명으로, 이조참의와 대언사의 지신사(知申事)가 맡았고, 그 외에 사련소(司臠所), 다방좌번(茶房左番), 다방우번(茶房右番) 등에도 부제조를 1명씩 설치하였다.

이후에도 소격전 부제조를 1명으로 줄이고, 악학(樂學)과 관습도감을 하나로 합하여 악학도감(樂學都監)이라 칭하면서 도승지로 부제조를 삼고, 와서의 부제조를 폐지하는 등 여러 차례의 변천을 거치면서 부제조의 설치에 변동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국대전』의 규정에서는 승문원(정원 없음), 사옹원(5명, 1명은 승지), 내의원(1명, 승지), 상의원(1명, 승지), 전옥서(1명, 승지) 등에 부제조가 설치되었다.

조선시대 제조 직제는 실직이 아닌 겸직이고, 도제조 · 제조 · 부제조가 품계에 따른 구분이었으므로 법전의 규정을 지키면서도 시대 상황에 따라 많은 변동이 있었다. 특히 임시관청인 도감이나 흠경각, 교정청, 산실청 등이 설치되는 경우에는 종종 품계에 따른 부제조의 설치가 이루어졌다. 1592년(선조 25)에는 처음으로 비변사에 부제조를 두고 병무(兵務)에 익숙한 자를 뽑았으며, 정조 대에는 교서관이었던 규장각 외각(外閣)에 부제조 2명을 두고, 1명은 규장각 직제학이 겸임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송희, 『조선 초기 당상관 겸직제 연구-동반 경관직 임시직을 중심으로』(한양대학교 출판부, 1998)

인터넷 자료

조선왕조실록사전(http://waks.aks.ac.kr/site/encysill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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