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한청년단"
검색결과 총 10건
일제강점기 때, 대한청년단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던지고, 흥사단에서 활동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박규명 (朴奎明)
일제강점기 때, 대한청년단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던지고, 흥사단에서 활동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청년단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명권 (金明權)
일제강점기 때, 대한청년단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범석은 일제강점기 북로군정서 교관,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1900년 서울 출생으로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김규식 등과 고려혁명을 창설해 기병대장을 맡았고, 1945년 광복군 참모장이 되었다. 1948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서 제명당한 후 참의원에 당선되었고, 1967년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유해는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이범석 (李範奭)
이범석은 일제강점기 북로군정서 교관,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1900년 서울 출생으로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김규식 등과 고려혁명을 창설해 기병대장을 맡았고, 1945년 광복군 참모장이 되었다. 1948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서 제명당한 후 참의원에 당선되었고, 1967년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유해는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청년단, 병인의용대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장진원 (張鎭元)
일제강점기 때, 대한청년단, 병인의용대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60년 10월 결성된 민단 산하 청년단체.
재일한국청년동맹 (在日韓國靑年同盟)
1960년 10월 결성된 민단 산하 청년단체.
1·4후퇴 시기 국민방위군의 간부들이 방위군 예산을 부정 착복한 결과 철수 도중에 많은 병력들을 병사시킨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國民防衛軍 事件)
1·4후퇴 시기 국민방위군의 간부들이 방위군 예산을 부정 착복한 결과 철수 도중에 많은 병력들을 병사시킨 사건.
제2대 국회의원 · 자유당 문화부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5년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출생했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영주군에 대한청년단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로 자유당에 입당해 문화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63년 1월에는 자유당계 정치인 100여 명과 함께 5·16군사정변 주역들에 대해 민정이양 및 정치적 속박을 배제하는 성명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1987년 11월 신민주공화당 창당 때 경상북도 김천 및 금릉 지역구의 조직책을 지원하기도 했다. 1989년 11월 26일 광명시 자택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김정식 (金正植)
제2대 국회의원 · 자유당 문화부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5년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출생했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영주군에 대한청년단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로 자유당에 입당해 문화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63년 1월에는 자유당계 정치인 100여 명과 함께 5·16군사정변 주역들에 대해 민정이양 및 정치적 속박을 배제하는 성명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1987년 11월 신민주공화당 창당 때 경상북도 김천 및 금릉 지역구의 조직책을 지원하기도 했다. 1989년 11월 26일 광명시 자택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광주변호사회 회장 · 국회의원 · 헌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910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으로,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전라남도 강진 선거구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0년 3·15정부통령 부정선거 무효소송단과 ‘4·19학생사건’ 민주당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62년 8월에는 장면 전 국무총리의 ‘국가보안법 위반 및 측정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 위반’ 혐의 군사재판에서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1962년 9월 5일 서울 성모병원 입원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양병일 (梁炳日)
광주변호사회 회장 · 국회의원 · 헌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910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으로,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전라남도 강진 선거구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0년 3·15정부통령 부정선거 무효소송단과 ‘4·19학생사건’ 민주당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62년 8월에는 장면 전 국무총리의 ‘국가보안법 위반 및 측정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 위반’ 혐의 군사재판에서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1962년 9월 5일 서울 성모병원 입원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윤재욱은 대동청년단 영등포구 단장 겸 상임위원, 제헌국회의원,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의사이다. 1910년 경기도 안성군 출생이며, 피어선 고등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었다. 해방 후 영등포청년회를 조직해 좌익청년 및 노동자와 맞섰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반민족행위자 처단을 유보하자는 이승만 대통령에 반대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이후 공화당과 자유당에서 활동했다. 1972년 유신 지지 성명서 발표에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동참했다. 1996년 사망했다.
윤재욱 (尹在旭)
윤재욱은 대동청년단 영등포구 단장 겸 상임위원, 제헌국회의원,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의사이다. 1910년 경기도 안성군 출생이며, 피어선 고등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었다. 해방 후 영등포청년회를 조직해 좌익청년 및 노동자와 맞섰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반민족행위자 처단을 유보하자는 이승만 대통령에 반대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이후 공화당과 자유당에서 활동했다. 1972년 유신 지지 성명서 발표에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동참했다. 1996년 사망했다.
진승국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여러 학교의 교원과 각종 청년단체를 거쳐 자유당에서 활동한 정치인이다. 1914년 함경남도 단천군에서 태어났으며, 릿쿄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경성외국어학원, 숙명여자전문학교 등에서 교원을 지냈다. 해방 직후에는 우익 청년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이승만 정권기에 여당인 자유당에서 정치활동을 하였다. 자유당 내 비족청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1958년 국회의원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자유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정계 활동이 없다가 1963년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진승국 (陳承國)
진승국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여러 학교의 교원과 각종 청년단체를 거쳐 자유당에서 활동한 정치인이다. 1914년 함경남도 단천군에서 태어났으며, 릿쿄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경성외국어학원, 숙명여자전문학교 등에서 교원을 지냈다. 해방 직후에는 우익 청년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이승만 정권기에 여당인 자유당에서 정치활동을 하였다. 자유당 내 비족청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1958년 국회의원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자유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정계 활동이 없다가 1963년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