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동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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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서경에 설치된 원나라 통치기관.
동녕부 (東寧府)
고려시대에 서경에 설치된 원나라 통치기관.
고려후기 낭장, 대성,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반란자.
김백안 (金伯顔)
고려후기 낭장, 대성,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반란자.
감창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에 두었던 5품 내지 6품 관직이다. 양계 지역에 파견되어 창고와 조세의 관리와 감독, 지방관의 포폄(褒貶), 지방 권세가의 비행 적발 등을 담당하였다. 1064년(문종 18)에 왕명에 따라 동북 양계의 감창사(監倉使)가 모두 제고사(祭告使)를 겸하였으며, 1173년(명종 3)에는 북방의 5도 즉, 북계(北界)의 운중도(雲中道)와 흥화도(興化道), 동계(東界)의 명주도(溟州道)·삭방도(朔方道) · 연해도(沿海道)의 감창사로 하여금 권농사(勸農使)를 겸하게 하였다가 뒤에 권농사를 별도로 설치하였다.
감창사 (監倉使)
감창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에 두었던 5품 내지 6품 관직이다. 양계 지역에 파견되어 창고와 조세의 관리와 감독, 지방관의 포폄(褒貶), 지방 권세가의 비행 적발 등을 담당하였다. 1064년(문종 18)에 왕명에 따라 동북 양계의 감창사(監倉使)가 모두 제고사(祭告使)를 겸하였으며, 1173년(명종 3)에는 북방의 5도 즉, 북계(北界)의 운중도(雲中道)와 흥화도(興化道), 동계(東界)의 명주도(溟州道)·삭방도(朔方道) · 연해도(沿海道)의 감창사로 하여금 권농사(勸農使)를 겸하게 하였다가 뒤에 권농사를 별도로 설치하였다.
고려 후기에, 권신이었던 기철(奇轍)의 아들로 태어나 원나라 평장 등을 역임한 관리.
기새인티무르 (奇賽因Timur)
고려 후기에, 권신이었던 기철(奇轍)의 아들로 태어나 원나라 평장 등을 역임한 관리.
고려후기 극성방어사, 밀직부사, 서북면부원수 등을 역임한 무신.
양백안 (楊伯顔)
고려후기 극성방어사, 밀직부사, 서북면부원수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후기 서북면부원수, 찬성사, 제조정방 등을 역임한 무신.
양백연 (楊伯淵)
고려후기 서북면부원수, 찬성사, 제조정방 등을 역임한 무신.
서경은 고려시대 옛 도읍지 평양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이다. 태조 때 황폐해진 평양을 복구하고 서경을 설치하였다. 근본의 땅으로 인식되면서 개경과 함께 양경(兩京)을 구성하였다. 역대 국왕이 자주 순행(巡幸)하였으며, 이곳에서 정사를 볼 수 있도록 분사(分司)가 설치되었다. 인종 때 서경의 반란이 진압된 후 그 위상이 하락하여 지방 도시로 정착하였다.
서경 (西京)
서경은 고려시대 옛 도읍지 평양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이다. 태조 때 황폐해진 평양을 복구하고 서경을 설치하였다. 근본의 땅으로 인식되면서 개경과 함께 양경(兩京)을 구성하였다. 역대 국왕이 자주 순행(巡幸)하였으며, 이곳에서 정사를 볼 수 있도록 분사(分司)가 설치되었다. 인종 때 서경의 반란이 진압된 후 그 위상이 하락하여 지방 도시로 정착하였다.
1228년(고종 15) 무신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서경인들이 모반한 사건.
서경인의 모반 (西京人의 謀叛)
1228년(고종 15) 무신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서경인들이 모반한 사건.
총관은 고려 후기 몽골(원)이 쌍성총관부 등에 설치한 관직이다. 몽골(원)이 행성의 하부 조직인 총관부 등에 설치한 관직이다. 로의 규모에 따라 정3품 또는 종3품이며, 몽골(원)이 고려의 양계 지역을 확보하고 동녕부, 쌍성총관부를 설치하면서 그 총관부에도 설치되었다. 총관은 이들 총관부의 장관직에 해당한다.
총관 (摠管)
총관은 고려 후기 몽골(원)이 쌍성총관부 등에 설치한 관직이다. 몽골(원)이 행성의 하부 조직인 총관부 등에 설치한 관직이다. 로의 규모에 따라 정3품 또는 종3품이며, 몽골(원)이 고려의 양계 지역을 확보하고 동녕부, 쌍성총관부를 설치하면서 그 총관부에도 설치되었다. 총관은 이들 총관부의 장관직에 해당한다.
최탄은 1269년(원종 10) 북계(北界)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몽골로 투항하여 동녕부(東寧府) 설치의 빌미를 주었던 반역자이다. 최탄, 한신(韓愼) 등이 저항을 일으킨 시기는 임연(林衍)의 원종 폐립에 따른 몽골의 압력이 가중되어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시점이었다. 최탄 일파의 투몽(投蒙)은 지배층의 수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민의 투몽과는 구별되지만, 이들이 혼란스러운 고려 사회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했다는 점은 무신정권의 붕괴와 저항 세력의 동향에도 영향을 끼쳤다.
최탄 (崔坦)
최탄은 1269년(원종 10) 북계(北界)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몽골로 투항하여 동녕부(東寧府) 설치의 빌미를 주었던 반역자이다. 최탄, 한신(韓愼) 등이 저항을 일으킨 시기는 임연(林衍)의 원종 폐립에 따른 몽골의 압력이 가중되어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시점이었다. 최탄 일파의 투몽(投蒙)은 지배층의 수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민의 투몽과는 구별되지만, 이들이 혼란스러운 고려 사회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했다는 점은 무신정권의 붕괴와 저항 세력의 동향에도 영향을 끼쳤다.
참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제국의 역참 제도로 고려와 몽골의 수도를 잇는 역로망이다. 몽골과의 화친 조건으로 요구받았다. 1259~1263년 사이에 개경에서 의주에 이르는 약 40개 소의 역을 두어 설치되었다. 이후 부담이 커지자 20개 소로 축소되었다.
참치 (站赤)
참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제국의 역참 제도로 고려와 몽골의 수도를 잇는 역로망이다. 몽골과의 화친 조건으로 요구받았다. 1259~1263년 사이에 개경에서 의주에 이르는 약 40개 소의 역을 두어 설치되었다. 이후 부담이 커지자 20개 소로 축소되었다.
현효철은 고려 후기 임연 처단을 기치로 저항을 일으켰던 연주(延州) 지방민이다. 그의 신분은 분명하지 않지만 재지 세력의 일원으로 추정되고, 명종 대 조위총 세력에 끝까지 맞섰던 현덕수 일족으로 파악된다. 그는 북계민 저항의 주동자였던 서북면병마사영 기관(記官) 최탄(崔坦)을 보좌하면서 서북계 여러 지역의 관리를 살해하고 몽골로 투항하였다. 이런 공로로 현호철은 몽골 조정으로부터 은패를 받았고, 이후 동녕부의 천호에 임명되었다.
현효철 (玄孝哲)
현효철은 고려 후기 임연 처단을 기치로 저항을 일으켰던 연주(延州) 지방민이다. 그의 신분은 분명하지 않지만 재지 세력의 일원으로 추정되고, 명종 대 조위총 세력에 끝까지 맞섰던 현덕수 일족으로 파악된다. 그는 북계민 저항의 주동자였던 서북면병마사영 기관(記官) 최탄(崔坦)을 보좌하면서 서북계 여러 지역의 관리를 살해하고 몽골로 투항하였다. 이런 공로로 현호철은 몽골 조정으로부터 은패를 받았고, 이후 동녕부의 천호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