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동양척식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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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석주는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며 의열 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의열 투쟁을 벌이다가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의열단과 한국노병회에 가입하여 활약하다가, 김창숙이 제공한 자금을 기반으로 경성(지금의 서울특별시)에 들어와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나석주 (羅錫疇)
나석주는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며 의열 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의열 투쟁을 벌이다가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의열단과 한국노병회에 가입하여 활약하다가, 김창숙이 제공한 자금을 기반으로 경성(지금의 서울특별시)에 들어와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경제인, 친일반민족행위자.
한상룡 (韓相龍)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경제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2가에 있는 부산 근현대사 중심의 역사 박물관.
부산근대역사관 (釜山近代歷史館)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2가에 있는 부산 근현대사 중심의 역사 박물관.
부령수력발전소는 함경북도 부령군에 있는 소규모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이다. 두만강 수계에 최초로 건설된 수력발전소로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자금을 투자하여 건설하였다. 1936년 7월 건설 허가를 획득하고 공사를 시작해 1940년 1만 3400㎾급 제1발전소를 필두로 9,400㎾급 제2발전소와 5,200㎾급 제3발전소를 준공하였다. 생산된 전력은 모두 공공용 전원으로 전력 체계에 편입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일부 시설이 파괴되었지만, 자력으로 복구공사를 하여 1956년 제1발전소와 제2발전소를 재가동하였고, 1960년 제4발전소를 건설하였다.
부령수력발전소 (富寧水力發電所)
부령수력발전소는 함경북도 부령군에 있는 소규모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이다. 두만강 수계에 최초로 건설된 수력발전소로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자금을 투자하여 건설하였다. 1936년 7월 건설 허가를 획득하고 공사를 시작해 1940년 1만 3400㎾급 제1발전소를 필두로 9,400㎾급 제2발전소와 5,200㎾급 제3발전소를 준공하였다. 생산된 전력은 모두 공공용 전원으로 전력 체계에 편입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일부 시설이 파괴되었지만, 자력으로 복구공사를 하여 1956년 제1발전소와 제2발전소를 재가동하였고, 1960년 제4발전소를 건설하였다.
백인기는 일제강점기 한성농공은행 이사, 한일은행 전무, 동양척식주식회사 감사로 활동한 기업가. 농업회사 합명회사 화성사를 설립, 경영한 대지주이다. 소유 재산의 대부분은 전주 아전 출신인 부친 백남신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한성공동창고회사와 한성농공은행 이사, 한일은행 전무, 동양척식주식회사 감사로 활동했으며, 농업회사 합명회사화성사(華星社)를 설립한 지주였다. 경기도 도회 의원,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백인기 (白寅基)
백인기는 일제강점기 한성농공은행 이사, 한일은행 전무, 동양척식주식회사 감사로 활동한 기업가. 농업회사 합명회사 화성사를 설립, 경영한 대지주이다. 소유 재산의 대부분은 전주 아전 출신인 부친 백남신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한성공동창고회사와 한성농공은행 이사, 한일은행 전무, 동양척식주식회사 감사로 활동했으며, 농업회사 합명회사화성사(華星社)를 설립한 지주였다. 경기도 도회 의원,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