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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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계서당 종택(奉化 溪西堂 宗宅)은 조선 중기의 문신 성이성이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에 경영하던 초당을 후손들이 중건한 종택이다. 1613년(광해군 5)에 성이성이 지은 방 1칸 규모의 계서초당(溪西草堂)을 후손들이 증축하여 기와집으로 바꾸었고, 이후 건물을 하나씩 지어 종택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ㅁ자형의 주택이 되었다. 이로 인해, 안채와 사랑채 등 주요 건물들의 건립 연대가 다르고 증축 · 개축의 흔적이 있다.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 위치한 ㅁ자형 뜰집의 유형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다.
봉화 계서당 종택 (奉化 溪西堂 宗宅)
봉화 계서당 종택(奉化 溪西堂 宗宅)은 조선 중기의 문신 성이성이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에 경영하던 초당을 후손들이 중건한 종택이다. 1613년(광해군 5)에 성이성이 지은 방 1칸 규모의 계서초당(溪西草堂)을 후손들이 증축하여 기와집으로 바꾸었고, 이후 건물을 하나씩 지어 종택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ㅁ자형의 주택이 되었다. 이로 인해, 안채와 사랑채 등 주요 건물들의 건립 연대가 다르고 증축 · 개축의 흔적이 있다.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 위치한 ㅁ자형 뜰집의 유형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다.
학초정 및 정침은 1656년(효종 7)에 삼수당 조규가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에 지은 정자와 집이다. 원래 정자 이름은 삼수당이었으나, 소유자가 바뀌면서 학초정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지역 경관의 일부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학초정 대청 창호의 중간 설주 등 조선 중기의 고식 기법이 남아 있고, 정침은 ㅁ자집 정면이 좌우로 돌출한 유형 중 규모가 큰 사례로 가치가 있다.
학초정 및 정침 (鶴樵亭 및 正寢)
학초정 및 정침은 1656년(효종 7)에 삼수당 조규가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에 지은 정자와 집이다. 원래 정자 이름은 삼수당이었으나, 소유자가 바뀌면서 학초정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지역 경관의 일부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학초정 대청 창호의 중간 설주 등 조선 중기의 고식 기법이 남아 있고, 정침은 ㅁ자집 정면이 좌우로 돌출한 유형 중 규모가 큰 사례로 가치가 있다.
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은 1797년(정조 1)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에 건립된 주택이다. 하회마을의 충효당과 함께 하회마을의 남촌 지역을 대표하는 살림집으로 1797년 유기영의 조부인 유치목이 건립한 주택이다. 유치목이 건립할 당시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정침, 별당, 사당, 새사랑채, 대문간채, 헛간채, 방앗간채, 장고방, 화장실 2동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었는데, 1953년 소실되어 사당과 별당과 대문간채만 있던 것을 2011년 정침과 방앗간채만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 (安東 河回마을 念行堂 古宅)
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은 1797년(정조 1)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에 건립된 주택이다. 하회마을의 충효당과 함께 하회마을의 남촌 지역을 대표하는 살림집으로 1797년 유기영의 조부인 유치목이 건립한 주택이다. 유치목이 건립할 당시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정침, 별당, 사당, 새사랑채, 대문간채, 헛간채, 방앗간채, 장고방, 화장실 2동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었는데, 1953년 소실되어 사당과 별당과 대문간채만 있던 것을 2011년 정침과 방앗간채만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금촌 두암고택은 조선시대의 문신 두암(斗巖) 김우익(金友益)이 건립한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에 있는 주택이다. 분가 당시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ㅁ자형의 몸채와, 후손들이 지은 함집당(咸集堂)이라는 이름의 별채, 김우익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구성된다. 봉화읍에서 예천군 방향으로 흘러가는 내성천 변에 위치한 우금 마을 중심부의 낮은 산기슭에 남향으로 자리 잡았다. 전면에서 볼 때, 양쪽으로 돌출된 부분이 있어 凸자형의 배치가 되었다. 폐쇄적인 안마당을 둔 경상북도 지역 뜰집의 전형적인 구성을 살펴볼 수 있다.
우금촌 두암고택 (友琴村 斗巖古宅)
우금촌 두암고택은 조선시대의 문신 두암(斗巖) 김우익(金友益)이 건립한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에 있는 주택이다. 분가 당시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ㅁ자형의 몸채와, 후손들이 지은 함집당(咸集堂)이라는 이름의 별채, 김우익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구성된다. 봉화읍에서 예천군 방향으로 흘러가는 내성천 변에 위치한 우금 마을 중심부의 낮은 산기슭에 남향으로 자리 잡았다. 전면에서 볼 때, 양쪽으로 돌출된 부분이 있어 凸자형의 배치가 되었다. 폐쇄적인 안마당을 둔 경상북도 지역 뜰집의 전형적인 구성을 살펴볼 수 있다.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花岐里 仁同長氏 宗宅)은 16세기 중반 장언상이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에 지은 인동장씨 가문의 종택이다. 보물로 지정된 선조 장말손의 영정과 인동장씨 가문 관련 각종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사랑채와 정침은 외관상 하나의 구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별개의 목 구조인 점이 특이하다.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 (花岐里 仁同長氏 宗宅)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花岐里 仁同長氏 宗宅)은 16세기 중반 장언상이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에 지은 인동장씨 가문의 종택이다. 보물로 지정된 선조 장말손의 영정과 인동장씨 가문 관련 각종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사랑채와 정침은 외관상 하나의 구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별개의 목 구조인 점이 특이하다.
예천 남악 종택은 17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 불구당 김왕의 생가인, 예천 구계리의 ㅁ자형 가옥이다. 후대에 남악 김복일의 후손이 이 집을 매입하여 의성김씨 남악파의 종택으로서 문중과 지역의 문화적 구심점이 되었다. 남악 종택은 국사봉 산기슭에서 학가산을 바라보며 동향하여 갈마음수 형국에 입지해 있다. 측면으로 돌출한 누각 형태 사랑채의 건축 기법이 뛰어나며, 전면에 덧붙은 초가지붕의 문간채로 인하여 외관이 독특하고 내외에 다양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어 조선 중 · 후기 경상북도 권역 ㅁ자집 중 주목할 만한 사례이다.
예천 남악 종택 (醴泉 南嶽 宗宅)
예천 남악 종택은 17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 불구당 김왕의 생가인, 예천 구계리의 ㅁ자형 가옥이다. 후대에 남악 김복일의 후손이 이 집을 매입하여 의성김씨 남악파의 종택으로서 문중과 지역의 문화적 구심점이 되었다. 남악 종택은 국사봉 산기슭에서 학가산을 바라보며 동향하여 갈마음수 형국에 입지해 있다. 측면으로 돌출한 누각 형태 사랑채의 건축 기법이 뛰어나며, 전면에 덧붙은 초가지붕의 문간채로 인하여 외관이 독특하고 내외에 다양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어 조선 중 · 후기 경상북도 권역 ㅁ자집 중 주목할 만한 사례이다.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盈德 務安朴氏 武毅公派 宗宅)은 조선 중기의 무신 박의장의 후손들이 17세기에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서 축산면 도곡리로 이전하며 건립한 주택이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손녀사위이기도 한 박의장의 넷째아들 도와(陶窩) 박선(朴璿)이 큰형 박유(朴瑜)를 위해 1644년(인조 22)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영덕 지역에서 뜰집 유형의 확산이 가장 활발했던 17세기 중반에 지어진 ㅁ자형 주택이다. 같은 마을에 도곡 충효당이 있다.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 (盈德 務安朴氏 武毅公派 宗宅)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盈德 務安朴氏 武毅公派 宗宅)은 조선 중기의 무신 박의장의 후손들이 17세기에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서 축산면 도곡리로 이전하며 건립한 주택이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손녀사위이기도 한 박의장의 넷째아들 도와(陶窩) 박선(朴璿)이 큰형 박유(朴瑜)를 위해 1644년(인조 22)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영덕 지역에서 뜰집 유형의 확산이 가장 활발했던 17세기 중반에 지어진 ㅁ자형 주택이다. 같은 마을에 도곡 충효당이 있다.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은 조선 후기에 건립되어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남아 있는 영양남씨 관련 주택이다. 괴시파 종택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된 정침이 ㅁ자형 뜰집으로 괴시 마을의 중심에 위치하여 서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이외에 사당과 화장실 각 1동이 있다. ㅁ자형 뜰집의 정침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사랑채 책방이 남측으로 실을 확장하여 돌출한 실의 구성을 하고 있다.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 (英陽南氏 槐市派 宗宅)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은 조선 후기에 건립되어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남아 있는 영양남씨 관련 주택이다. 괴시파 종택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된 정침이 ㅁ자형 뜰집으로 괴시 마을의 중심에 위치하여 서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이외에 사당과 화장실 각 1동이 있다. ㅁ자형 뜰집의 정침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사랑채 책방이 남측으로 실을 확장하여 돌출한 실의 구성을 하고 있다.
연안이씨 별좌공종택(延安李氏 別坐公宗宅)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송곡리에 있는 연안이씨 별좌공 관련 주택이다. 연안이씨 선대의 옛 터전에, 조선 후기의 사고 이덕창이 건립한 종택이다. 종택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하나로 연결된 ㅁ자형 뜰집 구조의 정침으로 정면 좌우측으로 실이 돌출한 확장형인데, 우측보다 좌측 사랑채 공간을 넓게 구획하고, 차별화된 내부 평면을 하고 있다. 종택은 창건 이후 1987년 5월 연안이씨 별좌공종택으로, 2017년 시도지정민속문화재(현, 시도지정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연안이씨 별좌공종택 (延安李氏 別坐公宗宅)
연안이씨 별좌공종택(延安李氏 別坐公宗宅)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송곡리에 있는 연안이씨 별좌공 관련 주택이다. 연안이씨 선대의 옛 터전에, 조선 후기의 사고 이덕창이 건립한 종택이다. 종택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하나로 연결된 ㅁ자형 뜰집 구조의 정침으로 정면 좌우측으로 실이 돌출한 확장형인데, 우측보다 좌측 사랑채 공간을 넓게 구획하고, 차별화된 내부 평면을 하고 있다. 종택은 창건 이후 1987년 5월 연안이씨 별좌공종택으로, 2017년 시도지정민속문화재(현, 시도지정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종릉재사는 1606년에 조선시대 문신 류영순이 선조인 조선 개국원종공신 류빈의 묘소를 수호하고자 지은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에 있는 재사이다. 유릉산 기슭 경사지에 건물들이 튼ㅁ자로 안마당 주위에 모여 있고 그중 왼쪽의 추원재를 큰 누마루가 있는 다락집으로 꾸몄다. ㅁ자집 또는 튼ㅁ자집으로 꾸미고 큰 누마루를 설치한 경상북도 재사 건축의 사례 중 하나로 가치가 있다. 전체적으로는 소박하지만 강하게 모접기한 팔각기둥, 마루의 큰 재목 사용 등 세부 특징은 류영순이 경상도관찰사로서 관 소속 대목들을 동원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종릉재사 (鍾陵齋舍)
종릉재사는 1606년에 조선시대 문신 류영순이 선조인 조선 개국원종공신 류빈의 묘소를 수호하고자 지은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에 있는 재사이다. 유릉산 기슭 경사지에 건물들이 튼ㅁ자로 안마당 주위에 모여 있고 그중 왼쪽의 추원재를 큰 누마루가 있는 다락집으로 꾸몄다. ㅁ자집 또는 튼ㅁ자집으로 꾸미고 큰 누마루를 설치한 경상북도 재사 건축의 사례 중 하나로 가치가 있다. 전체적으로는 소박하지만 강하게 모접기한 팔각기둥, 마루의 큰 재목 사용 등 세부 특징은 류영순이 경상도관찰사로서 관 소속 대목들을 동원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은 기묘사화 때 안동 풍산현으로 낙향한 예안이씨 7세손 이영이 1525년(중종 20)경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 주택이다. 이영은 조선 전기의 문신 이필간(李弼幹)의 첫째 아들로, 1507년(중종 2)에 생원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사랑채와 안채가 좌우 익사로 연결되어 완전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나, 정면에서 볼 때, 우측으로 1.5칸 정도가 돌출되어 있다. 가운데 설주가 있는 영쌍창과 같이 건립 당시 모습으로 추정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집은 예안이씨 충효당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 (禮安李氏 司直公派 舊宅)
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은 기묘사화 때 안동 풍산현으로 낙향한 예안이씨 7세손 이영이 1525년(중종 20)경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 주택이다. 이영은 조선 전기의 문신 이필간(李弼幹)의 첫째 아들로, 1507년(중종 2)에 생원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사랑채와 안채가 좌우 익사로 연결되어 완전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나, 정면에서 볼 때, 우측으로 1.5칸 정도가 돌출되어 있다. 가운데 설주가 있는 영쌍창과 같이 건립 당시 모습으로 추정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집은 예안이씨 충효당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주곡동 옥천종택은 17세기 말에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의 주실마을에 건립된 옥천 조덕린의 옛 가옥이다. 경상북도 주거 건축의 역사적 유산이며, 조덕린과 그 후손들이 주실마을 내에서 분가하고 조덕린이 향불천위로 옹립되면서 성립된 소종가로 씨족마을 건축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소박한 안사랑과 별도로 큰사랑 역할을 하는 초당이 건립되었고 정침의 안방이 오른쪽에 배치되고 안방 뒤에 별도의 마루방이 설치된 것 등은 다른 경북 ㅁ자집에서 흔치 않은 점이다.
주곡동 옥천종택 (注谷洞 玉川宗宅)
주곡동 옥천종택은 17세기 말에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의 주실마을에 건립된 옥천 조덕린의 옛 가옥이다. 경상북도 주거 건축의 역사적 유산이며, 조덕린과 그 후손들이 주실마을 내에서 분가하고 조덕린이 향불천위로 옹립되면서 성립된 소종가로 씨족마을 건축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소박한 안사랑과 별도로 큰사랑 역할을 하는 초당이 건립되었고 정침의 안방이 오른쪽에 배치되고 안방 뒤에 별도의 마루방이 설치된 것 등은 다른 경북 ㅁ자집에서 흔치 않은 점이다.
연곡고택은 1795년(정조 19)에 연곡(延谷) 권성익(權聖翊)이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제곡마을에 건립한 주택이다. 이 고택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뜰집 구조의 정침과 사당,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연결된 ㅁ자형 뜰집을 기본으로 정면 좌우측으로 실이 돌출한 확장형이다. 정침 지붕은 맞배지붕을 기본으로 구성하고 안채 배면 모서리에 추녀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의 서산각지붕으로 구성된 경상북도 고택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연곡고택 (延谷古宅)
연곡고택은 1795년(정조 19)에 연곡(延谷) 권성익(權聖翊)이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제곡마을에 건립한 주택이다. 이 고택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뜰집 구조의 정침과 사당,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연결된 ㅁ자형 뜰집을 기본으로 정면 좌우측으로 실이 돌출한 확장형이다. 정침 지붕은 맞배지붕을 기본으로 구성하고 안채 배면 모서리에 추녀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의 서산각지붕으로 구성된 경상북도 고택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지례동 양동댁은 1663년(현종 4) 조선시대 문신 지촌 김방걸의 중형인 순포 김방형이 안동 지례리에 지은 가옥이다. 후대에 유학자인 지곡 김정한과 수산 김병종이 살았고 임하댐으로 인한 수몰을 피하여 1988년 이건하였다. 정침과 사랑채는 중간 규모의 경상북도 ㅁ자집의 구성을 잘 보여주면서 안대청 우측의 고방과 상방 구성, 중문간 좌측의 마루방과 고방 구성 방식 등이 특징적이다. 온돌방을 둔 사당 또한 독특하다.
지례동 양동댁 (知禮洞 良洞宅)
지례동 양동댁은 1663년(현종 4) 조선시대 문신 지촌 김방걸의 중형인 순포 김방형이 안동 지례리에 지은 가옥이다. 후대에 유학자인 지곡 김정한과 수산 김병종이 살았고 임하댐으로 인한 수몰을 피하여 1988년 이건하였다. 정침과 사랑채는 중간 규모의 경상북도 ㅁ자집의 구성을 잘 보여주면서 안대청 우측의 고방과 상방 구성, 중문간 좌측의 마루방과 고방 구성 방식 등이 특징적이다. 온돌방을 둔 사당 또한 독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