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

  • 생활
  • 유적
  • 조선 후기
  • 국가문화유산
1797년(정조 1),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에 건립된 주택.
이칭
  • 이칭남촌댁(南村宅)
  • 약칭염행당 고택,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
유적/건물
  • 건립 시기1797년(정조 1)
  • 건물 층수단층
  • 규모2필지/2,341㎡
  •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2년
  • 정연상 (안동대학교 교수)
  • 최종수정 2025년 04월 2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은 1797년(정조 1)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에 건립된 주택이다. 하회마을의 충효당과 함께 하회마을의 남촌 지역을 대표하는 살림집으로 1797년 유기영의 조부인 유치목이 건립한 주택이다. 유치목이 건립할 당시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정침, 별당, 사당, 새사랑채, 대문간채, 헛간채, 방앗간채, 장고방, 화장실 2동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었는데, 1953년 소실되어 사당과 별당과 대문간채만 있던 것을 2011년 정침과 방앗간채만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의

1797년(정조 1),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에 건립된 주택.

건립 경위

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安東 河回마을 念行堂 古宅)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 마을에 있는 고택으로, 하회 마을은 풍산류씨(豐山柳氏)의 씨족 마을로 화천을 중심으로 빼어난 자연 경관과 민속 문화가 보전 전승되고 있는 반촌(班村)이다. 이 고택은 근처에 있는 안동 하회 충효당(忠孝堂)과 함께 하회 남촌(南村)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남촌댁(南村宅)으로도 불리었다. 이 고택은 1797년(정조 1) 유기영(柳驥榮, 1825~1880)의 조부인 대사간(大司諫) 유치목(柳致睦)이 건립하였으며, 조선 후기 형조좌랑(刑曹佐郎)을 지낸 유기영의 살림집으로 염행당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고택은 안동 하회마을의 남촌 지역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출입할 때는 마을 중심의 안길에서 남측으로 난 안길의 서측에 위치하여 남향한 대문간채를 이용한다.

변천

이 고택은 유치목이 건립할 당시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정침(正寢), 별당(別堂), 사당(祠堂), 정자(亭子), 대문채, 방앗간채 등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었는데, 1953년 화재로 정침과 정자가 소실되어 별당채를 주생활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정자는 인근에 있던 정자인 백률원(百栗圓)을 옮겨 세워 중창(重創)하였지만, 정침 터는 2011년 중건(重建)하기 전까지 빈터로 남겨져 있었다. 이 집은 1979년 1월 26일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별당과 대문채는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1979년 보수를 하였고, 1984년에는 사당을 보수하였다. 이후 별당채 협문(夾門)과 주변 담장을 보수하였다. 백률원은 2011년 정침을 중건하면서 원래 위치로 이건하였다.

형태와 특징

염행당은 사면이 토석(土石)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남측과 동측은 마을 안길을 따라 대문간채와 담장이 조성되어 있고, 서측과 북측은 이웃과의 경계에 담장이 조성되어 있다. 이외에 고택은 내부의 별당 영역과 사당 영역에 별도 담장을 쌓아 영역을 분리하였다. 현재 고택은 2011년 중건한 정침을 중심으로 정면에 대문채가 있고, 안채 동측에 사당과 별당채가 있으며, 중문간(中門間) 서측에 방앗간채가 있다. 별당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ㅡ자형으로 사당 동측에서 동향을 하고 있으며, 별도의 영역을 형성하여 후원의 중심 공간이 되었다. 평면은 남측부터 1칸 부엌, 2칸 온돌방, 1칸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 부엌 없이 커다란 대청이 있는 접객 전용 공간이었으나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개조하였다. 부엌은 아궁이 상부에 누마루였던 구조를 하부에 벽체를 시설하여 누마루를 안방 다락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부엌 외벽은 기와 편으로 문자와 그림을 넣어 장식하였다. 별당의 앞마당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담장 앞에 화장실이 있다. 별당채의 목가구는 자연석 주초(柱礎)에 사각기둥을 세웠는데, 정면의 양 모서리 기둥만 원기둥이다. 기둥 상부는 보아지를 끼운 후에 , 장여, 굴도리를 납도리 방식으로 결구하였다. 가구(架構)는 3량(三樑)이고, 지붕은 한식 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안채의 동측 후면에 있는데, 토석 담장을 사면에 둘러 별도 영역을 확보하였으며, 정면에만 별도 담장을 이중으로 축조하여 외부와 공간을 분리하였다. 이 담장은 하부에 토석 담장으로 축조하고, 상부에 와편(瓦片)으로 문양을 넣어 장식하였다. 내부의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내부에 좌상(左上)을 원칙으로 유기영(柳驥榮), 유영우(柳永佑), 유시일(柳時一), 유경하(柳景夏) 네 분의 신위(神位)가 모셔져 있다. 사당 동쪽 둘레담의 남쪽 벽에는 충효당 사랑채에 걸린 현판 글씨와 같은 전서체의 ‘忠孝’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기둥 상부는 보아지를 끼운 후에 보, 장여, 도리가 납도리 방식으로 결구되어 있다. 가구는 3량이고, 지붕은 한식 기와를 올린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대문간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으로 남향을 하고 있는데, 가운데 1칸이 솟을대문 형식이고 양쪽의 6칸은 모두 고방(庫房)이다. 대문간은 막돌 위에 사각기둥을 세운 후, 기둥 상부를 납도리로 하여 납도리 방식으로 결구하였다. 지붕은 한식 기와를 올린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2011년 중건한 정침은 ㅁ자형으로 정면의 사랑채 동측 사랑방과 사랑대청이 동측과 남측으로 돌출한 구조인데, 정면으로 반 칸, 측면 3칸이 돌출하였다. 사랑방 서측에는 사랑방 부엌, 중문간, 고방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안채는 서측부터 동측으로 부엌, 안방, 대청, 상방(上房)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정면으로 툇마루를 놓았다. 안채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부엌과 상방 정면으로 좌우익(左右翼) 실을 배열하여 사랑채와 연결하였다. 안채와 사랑채는 사각형의 주추에 사각기둥을 세워 상부 하중을 받치도록 하였으며, 기둥 상부는 직절(直切)형 익공재(翼工材)를 이용한 초익공(初翼工) 방식으로 결구하였고, 가구는 오량(五樑)이다. 지붕은 한식 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현재 백율원은 이건 이후 마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백율원의 자리에는 원래 새사랑채가 있었다. 사랑채와 대문간채 중간에는 내외담이 있었으며, 내외담 동측 마당에는 헛간채가 있었다. 그리고 안채의 뒤뜰에 장고방과 장독대가 있었다.

의의 및 평가

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은 하회마을 남촌 지역을 대표하는 가옥 중 하나로, 화재로 인해 정침 및 기타 건물이 소실되어 본래의 모습을 잃은 후, 정침을 중건하여 건립 당시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하였지만, 원래 건물과 중건한 건물 등은 경상북도 지역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반가 연구 자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염행당은 기존 하회마을의 고택처럼 사랑채가 돌출한 ㅁ자형 정침이지만 새사랑채와 대문채, 헛간채뿐만 아니라, 별도의 담장을 구획한 별당과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주거사(住居史) 및 주생활 문화 연구를 위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문화재청, 『세계문화유산 등재보고서』(2009)

  • - 이상해, 『전통 역사마을 하회』(문화재청, 2010)

  • - 문화재청, 『중요민속문화재지정조사 보고서』(2015)

  • 인터넷 자료

  •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http://www.grandculture.net)

  • -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주석

  • 주1

    :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짓다. 우리말샘

  • 주2

    : 절이나 왕궁 따위를 보수하거나 고쳐 짓다. 우리말샘

  • 주3

    :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 우리말샘

  • 주4

    : 기둥 밑에 괴는 돌 따위의 물건. ⇒규범 표기는 ‘주추’이다. 우리말샘

  • 주5

    : 가장 중요한 곳에 버티어 세우는 기둥. 우리말샘

  • 주6

    : 둥글게 만든 도리. 우리말샘

  • 주7

    : 부연을 달지 않고 처마 서까래만으로 된 처마. 우리말샘

  • 주8

    : 깨어진 기와 조각. 우리말샘

  • 주9

    :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의지할 자리. 죽은 사람의 사진이나 지방(紙榜) 따위를 이른다. 우리말샘

  • 주11

    : 일정한 형태로 얼개를 만듦. 또는 그렇게 만든 물건. 우리말샘

  • 주12

    : ‘광’의 원말. 우리말샘

  • 주13

    : 모가 나게 만든 도리. 우리말샘

  • 주14

    : 한 집에서 주인이 거처하는 방. 우리말샘

  • 주15

    : 촛가지 하나로 꾸민 공포. 우리말샘

  • 주16

    : 건축물 따위를 옮겨 짓거나 세움. 우리말샘

  • 주17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전통 민속 마을. 2010년에 한국의 역사 마을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중요 민속자료 제122호. 우리말샘

  • 주18

    : 옛날에 지은, 오래된 집. 우리말샘

  • 주19

    : 조선 시대에 둔, 사간원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삼품으로, 임금에게 정사의 잘못을 간(諫)하는 일을 맡았다. 세조 12년(1466)에 사간대부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 주20

    : 안쪽으로 난 길. 흔히 동네 안쪽으로 이어져 동네 안의 구역을 연결하는 길을 이른다. 우리말샘

  • 주21

    : 제사를 지내는 몸채의 방. 우리말샘

  • 주22

    : 몸채의 곁이나 뒤에 따로 지은 집이나 방. 우리말샘

  • 주23

    :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 놓은 집. 우리말샘

  • 주24

    : 경치가 좋은 곳에 놀거나 쉬기 위하여 지은 집. 벽이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다. 우리말샘

  • 주25

    : 삼문(三門) 가운데 좌우에 달린 작은 문. 동협문, 서협문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 주26

    : 한옥에서, 몸채의 방과 방 사이에 있는 큰 마루. 우리말샘

  • 주27

    : 모가 나게 만든 도리. 우리말샘

  • 주28

    : 낱낱의 재료를 조립하여 만든 구조물. 우리말샘

  • 주29

    : 전자(篆字) 모양으로 쓰는 서체. 우리말샘

  • 주30

    : 기둥 밑에 괴는 돌 따위의 물건.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