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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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의 난은 1135년(인종 13), 묘청 등이 서경(西京: 지금의 평양)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승려 묘청을 비롯하여 문신 정지상(鄭知常), 일자(日者)인 백수한(白壽翰) 등 서경인들을 주축으로 하는 일군의 세력이 당시 이자겸(李資謙)의 난으로 야기된 정치적 혼란을 틈타 지리 도참설을 근거로 삼아 개경에서 서경으로의 천도를 주장하고 칭제건원(稱帝建元), 금국정벌(金國征伐)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개경 조정의 반대에 부딪치자 서경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묘청 등의 반란은 김부식이 이끄는 개경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묘청의 난 (妙淸의 亂)
묘청의 난은 1135년(인종 13), 묘청 등이 서경(西京: 지금의 평양)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승려 묘청을 비롯하여 문신 정지상(鄭知常), 일자(日者)인 백수한(白壽翰) 등 서경인들을 주축으로 하는 일군의 세력이 당시 이자겸(李資謙)의 난으로 야기된 정치적 혼란을 틈타 지리 도참설을 근거로 삼아 개경에서 서경으로의 천도를 주장하고 칭제건원(稱帝建元), 금국정벌(金國征伐)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개경 조정의 반대에 부딪치자 서경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묘청 등의 반란은 김부식이 이끄는 개경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김부식은 고려전기 직한림, 추밀원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075년(문종 29)에 태어나 1151년(의종 5)에 사망했다. 신라 무열왕의 후손으로, 송의 서긍조차도 박학다식하여 글을 잘 짓고 고금을 잘 알아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평할 정도였다. 묘청의 난 때 원수로 임명되어 직접 중군을 거느리고 삼군을 지휘 통솔하여 난을 진압했다. 본인이 주도한 윤언이·한유충 등의 지방좌천 인사가 번복되자 정치보복을 염려하여 세 번 사직상소를 올리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인종의 명에 따라 50권의 『삼국사기』를 편찬하여 바쳤다.
김부식 (金富軾)
김부식은 고려전기 직한림, 추밀원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075년(문종 29)에 태어나 1151년(의종 5)에 사망했다. 신라 무열왕의 후손으로, 송의 서긍조차도 박학다식하여 글을 잘 짓고 고금을 잘 알아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평할 정도였다. 묘청의 난 때 원수로 임명되어 직접 중군을 거느리고 삼군을 지휘 통솔하여 난을 진압했다. 본인이 주도한 윤언이·한유충 등의 지방좌천 인사가 번복되자 정치보복을 염려하여 세 번 사직상소를 올리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인종의 명에 따라 50권의 『삼국사기』를 편찬하여 바쳤다.
고려 전기에, 좌정언, 좌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정지상 (鄭知常)
고려 전기에, 좌정언, 좌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대화궁은 평안남도 대동군 부산면에 있는 고려 제17대 인종 당시 서경 임원역에 건설된 별궁이다. 음양설과 풍수지리설에서는 기운이 좋은 땅을 대화세, 대명지라고 한다. 궁의 이름도 대화궁, 대화궐이라 하였는데, 임원역에 세워져서 임원궁이란 별칭도 있었다. 대궐 안에는 정전인 건룡전과 팔성당이 있었다. 인종이 한때 이곳에 몸소 실행하여 잔치를 열고 서경으로의 천도를 준비하기도 하였으나, 묘청의 난이 일어나 서경 세력의 근거지가 되었다.
대화궁 (大花宮)
대화궁은 평안남도 대동군 부산면에 있는 고려 제17대 인종 당시 서경 임원역에 건설된 별궁이다. 음양설과 풍수지리설에서는 기운이 좋은 땅을 대화세, 대명지라고 한다. 궁의 이름도 대화궁, 대화궐이라 하였는데, 임원역에 세워져서 임원궁이란 별칭도 있었다. 대궐 안에는 정전인 건룡전과 팔성당이 있었다. 인종이 한때 이곳에 몸소 실행하여 잔치를 열고 서경으로의 천도를 준비하기도 하였으나, 묘청의 난이 일어나 서경 세력의 근거지가 되었다.
묘청은 고려전기 정지상, 백수한 등의 지지로 서경천도론을 제기한 승려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35년(인종 13)에 사망했다. 풍수지리와 도참사상을 익힌 후 이를 바탕으로 상경은 이미 기운이 쇠했고 서경에는 왕기가 있으니 그곳으로 천도하자고 주장했다. 이자겸의 난으로 왕궁이 불타고 민심이 동요하던 상황에서 인종의 호응을 얻어 천도 준비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문신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실제 천도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조광·유참 등과 함께 국호를 대위라 하고 연호를 천개라 하여 난을 일으켰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다.
묘청 (妙淸)
묘청은 고려전기 정지상, 백수한 등의 지지로 서경천도론을 제기한 승려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35년(인종 13)에 사망했다. 풍수지리와 도참사상을 익힌 후 이를 바탕으로 상경은 이미 기운이 쇠했고 서경에는 왕기가 있으니 그곳으로 천도하자고 주장했다. 이자겸의 난으로 왕궁이 불타고 민심이 동요하던 상황에서 인종의 호응을 얻어 천도 준비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문신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실제 천도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조광·유참 등과 함께 국호를 대위라 하고 연호를 천개라 하여 난을 일으켰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다.
고려 전기에, 예부시랑, 한림학사, 추밀원지주사 등을 역임한 문신.
정습명 (鄭襲明)
고려 전기에, 예부시랑, 한림학사, 추밀원지주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광주목사, 정당문학, 판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윤언이 (尹彦頤)
고려 전기에, 광주목사, 정당문학, 판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경천도론은 고려 시기 서경(지금의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한 논의이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평양을 서경이라고 칭하고 백성들을 이주시켰다. 서경 세력을 기반으로 왕위에 오른 정종이 서경천도를 시도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인종대에 요나라가 멸망하고 금나라가 성장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묘청과 정지상 등이 도참설에 기반하여 서경천도를 주도하였다. 고려 주변의 국제정세와 왕권의 위상을 둘러싼 국내정세 등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전개되었다. 서경천도는 평양이 고려의 확실한 영역이자 북방의 주요 거점으로서 개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경천도론 (西京遷都論)
서경천도론은 고려 시기 서경(지금의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한 논의이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평양을 서경이라고 칭하고 백성들을 이주시켰다. 서경 세력을 기반으로 왕위에 오른 정종이 서경천도를 시도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인종대에 요나라가 멸망하고 금나라가 성장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묘청과 정지상 등이 도참설에 기반하여 서경천도를 주도하였다. 고려 주변의 국제정세와 왕권의 위상을 둘러싼 국내정세 등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전개되었다. 서경천도는 평양이 고려의 확실한 영역이자 북방의 주요 거점으로서 개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문공인은 고려 전기 호부원외랑, 추밀원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이자겸에 반대하고 묘청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입장이었으나, 묘청의 난이 일어난 이후에는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1116년(예종 11) 송나라 사행에서 귀국하면서 대성아악(大晟雅樂)을 고려에 전하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문공인 (文公仁)
문공인은 고려 전기 호부원외랑, 추밀원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이자겸에 반대하고 묘청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입장이었으나, 묘청의 난이 일어난 이후에는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1116년(예종 11) 송나라 사행에서 귀국하면서 대성아악(大晟雅樂)을 고려에 전하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고려전기 제17대 인종 때 묘청이 세운 연호.
천개 (天開)
고려전기 제17대 인종 때 묘청이 세운 연호.
고려 전기에, 한림학사승지, 좌군수, 지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부의 (金富儀)
고려 전기에, 한림학사승지, 좌군수, 지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대위(大爲)는 1135년(인종 13)에 묘청(妙淸)이 반란을 일으킨 뒤 서경에 도읍하고 세운 나라의 국호이다. 고려의 금에 대한 사대정책을 반대하던 묘청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 뒤 선언한 국호이다. 연호는 ‘천개(天開)’라고 하였다. 금에 맞서는 자주독립국으로서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대위국 (大爲國)
대위(大爲)는 1135년(인종 13)에 묘청(妙淸)이 반란을 일으킨 뒤 서경에 도읍하고 세운 나라의 국호이다. 고려의 금에 대한 사대정책을 반대하던 묘청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 뒤 선언한 국호이다. 연호는 ‘천개(天開)’라고 하였다. 금에 맞서는 자주독립국으로서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고려시대 1135년(인종 13)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 묘청(妙淸)이 그의 군대에 붙인 명칭.
천견충의군 (天遣忠義軍)
고려시대 1135년(인종 13)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 묘청(妙淸)이 그의 군대에 붙인 명칭.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관리.
임원후 (任元厚)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관리.
고려전기 묘청의 난 과 관련된 관리. 역신.
김신 (金信)
고려전기 묘청의 난 과 관련된 관리. 역신.
고려 중기에 김부식(金富軾)이 지은 한시.
결기궁 (結綺宮)
고려 중기에 김부식(金富軾)이 지은 한시.
고려전기 분사시랑으로 묘청, 유참 등과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조광 (趙匡)
고려전기 분사시랑으로 묘청, 유참 등과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김안은 고려 전기 묘청, 정지상 일파로 활약한 문신이다. 인종대에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 유배를 갔다. 이자겸이 실각하자 1126년 소환되어 활동하다가 정지상, 백수한과 함께 인종에게 서경 천도를 권유하였다. 김안은 묘청의 난 당시에 살해되었다.
김안 (金安)
김안은 고려 전기 묘청, 정지상 일파로 활약한 문신이다. 인종대에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 유배를 갔다. 이자겸이 실각하자 1126년 소환되어 활동하다가 정지상, 백수한과 함께 인종에게 서경 천도를 권유하였다. 김안은 묘청의 난 당시에 살해되었다.
고려 전기에, 이부낭중 겸 태자세마, 시위위경, 형부상서 겸 선경부첨사 등을 역임한 관리.
이식 (李軾)
고려 전기에, 이부낭중 겸 태자세마, 시위위경, 형부상서 겸 선경부첨사 등을 역임한 관리.
고려 전기 묘청의 난 때, 전중시어사로서 반란군에게 왕의 조서를 전하다 살해된 문신.
김부 (金阜)
고려 전기 묘청의 난 때, 전중시어사로서 반란군에게 왕의 조서를 전하다 살해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