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무왕"
검색결과 총 19건
미륵사는 삼국시대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이 당시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에 창건한 사찰이다. 미륵의 삼회설법을 상징하는 3개의 석탑이 세워진 절로 유명하다. 금당도 3개인 3탑 3금당 양식이다. 무왕과 선화공주가 세운 절로 알려져 왔으나 미륵사 서탑에서 나온 기록에는 무왕과 사택왕후가 지은 것으로 나와있다.
익산 미륵사 (益山 彌勒寺)
미륵사는 삼국시대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이 당시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에 창건한 사찰이다. 미륵의 삼회설법을 상징하는 3개의 석탑이 세워진 절로 유명하다. 금당도 3개인 3탑 3금당 양식이다. 무왕과 선화공주가 세운 절로 알려져 왔으나 미륵사 서탑에서 나온 기록에는 무왕과 사택왕후가 지은 것으로 나와있다.
돈화 진릉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능이다. 진릉은 발해 제3대 문왕의 딸인 정혜공주가 사망한 뒤 “진릉의 서원에 매장하였다”고 기록한 묘지에 처음 등장한다. 진릉의 주인공이 어느 왕인지, 구체적으로 어느 무덤인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몇 가지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주인공에 대해서는 정혜공주의 할아버지인 무왕, 아버지인 문왕, 생모인 문왕의 왕비라는 견해가 있다. 무덤의 위치에 대해서는 육정산고분군에서 Ⅰ구역에 위치한 IM6, Ⅱ구역에 있는 제206호 무덤 등의 견해가 나왔다.
돈화 진릉 (敦化 珍陵)
돈화 진릉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능이다. 진릉은 발해 제3대 문왕의 딸인 정혜공주가 사망한 뒤 “진릉의 서원에 매장하였다”고 기록한 묘지에 처음 등장한다. 진릉의 주인공이 어느 왕인지, 구체적으로 어느 무덤인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몇 가지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주인공에 대해서는 정혜공주의 할아버지인 무왕, 아버지인 문왕, 생모인 문왕의 왕비라는 견해가 있다. 무덤의 위치에 대해서는 육정산고분군에서 Ⅰ구역에 위치한 IM6, Ⅱ구역에 있는 제206호 무덤 등의 견해가 나왔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일원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와 통일신라 시기에 축성된 성곽. 산성·왕궁터.
모질메산성 (모질메山城)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일원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와 통일신라 시기에 축성된 성곽. 산성·왕궁터.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
익산 대관사 (益山 大官寺)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
사자암은 백제 때 세워진 사찰이다. 당시 이름은 사자사였으며, 용화산 중턱에 위치하였다. 사자사의 지명 법사는 백제의 서동을 도와 황금을 신라에 실어 보냈고, 나중에 무왕이 미륵사를 세울 때 연못을 메꿔주었다. 미륵사는 미륵하생, 용화사는 미륵상생 신앙과 관련이 있다.
미륵산 사자암 (彌勒山 獅子庵)
사자암은 백제 때 세워진 사찰이다. 당시 이름은 사자사였으며, 용화산 중턱에 위치하였다. 사자사의 지명 법사는 백제의 서동을 도와 황금을 신라에 실어 보냈고, 나중에 무왕이 미륵사를 세울 때 연못을 메꿔주었다. 미륵사는 미륵하생, 용화사는 미륵상생 신앙과 관련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포리에 있는 포구.
대왕포 (大王浦)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포리에 있는 포구.
부여 궁남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백제 시대의 연못이다. 『삼국사기』에 의해 백제 무왕 35년(634)에 궁궐 남쪽에 만든 것이라 하여 궁남지라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무왕의 어머니가 궁남지의 용과 정을 통하여 무왕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궁남지는 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훼손되어 연못 주변은 농지로 이용되었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우물과 몇 개의 주춧돌이 남아 있다. 궁남지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궁궐 연못이다. 조성 기록이 명확하고 백제의 조경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부여 궁남지 (扶餘 宮南池)
부여 궁남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백제 시대의 연못이다. 『삼국사기』에 의해 백제 무왕 35년(634)에 궁궐 남쪽에 만든 것이라 하여 궁남지라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무왕의 어머니가 궁남지의 용과 정을 통하여 무왕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궁남지는 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훼손되어 연못 주변은 농지로 이용되었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우물과 몇 개의 주춧돌이 남아 있다. 궁남지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궁궐 연못이다. 조성 기록이 명확하고 백제의 조경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왕흥사(王興寺)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이다. 2007년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의 명문을 통해 왕흥사가 577년 위덕왕 때 창건됐다는 것이 밝혀졌다. 왕흥사는 백제 사비기의 전형적인 가람 구조를 가진 사찰이며, 백제 정치사와 불교 문화 연구를 위한 중요한 유적이다.
부여 왕흥사 (扶餘 王興寺)
왕흥사(王興寺)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이다. 2007년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의 명문을 통해 왕흥사가 577년 위덕왕 때 창건됐다는 것이 밝혀졌다. 왕흥사는 백제 사비기의 전형적인 가람 구조를 가진 사찰이며, 백제 정치사와 불교 문화 연구를 위한 중요한 유적이다.
발해시대의 연호.
인안 (仁安)
발해시대의 연호.
삼국시대 백제의 용화산 사자사에서 수행한 승려.
지명 (知命)
삼국시대 백제의 용화산 사자사에서 수행한 승려.
익산쌍릉(益山雙陵)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사비기의 왕릉이다. 2기의 굴식돌방무덤으로 봉분의 규모와 축조 방식, 돌방의 구조와 규모, 껴묻거리, 금송을 사용한 나무널, 사람 뼈에 대한 분석 결과, 거대한 무덤길 등을 통해 볼 때 백제 사비기의 무왕과 그 비의 무덤으로 여겨지고 있다.
익산 쌍릉 (益山 雙陵)
익산쌍릉(益山雙陵)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사비기의 왕릉이다. 2기의 굴식돌방무덤으로 봉분의 규모와 축조 방식, 돌방의 구조와 규모, 껴묻거리, 금송을 사용한 나무널, 사람 뼈에 대한 분석 결과, 거대한 무덤길 등을 통해 볼 때 백제 사비기의 무왕과 그 비의 무덤으로 여겨지고 있다.
삼국시대 신라의 가잠성 현령을 역임한 관리. 지방관.
찬덕 (讚德)
삼국시대 신라의 가잠성 현령을 역임한 관리. 지방관.
삼국시대 백제의 좌평으로 미륵사 창건을 후원한 관리. 대신.
사택적덕 (沙宅積德)
삼국시대 백제의 좌평으로 미륵사 창건을 후원한 관리. 대신.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무왕의 왕비.
사택왕후 (沙宅王后)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무왕의 왕비.
602년 8월 신라가 남원 운봉 아막성(阿莫城)에서 백제군과 치른 전투.
아막성전투 (阿莫城戰鬪)
602년 8월 신라가 남원 운봉 아막성(阿莫城)에서 백제군과 치른 전투.
홍범구주는 중국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기자에게 받았다고 전해지는 9가지 범주의 대법을 가리키는 유교 용어이다. 홍범은 대법을 말하고, 구주는 9개의 조항을 말하는 것으로, 즉 ‘9개 조항의 큰 법’이라는 뜻이다. 은나라와 주나라의 교체 시기에 은나라 기자가 주나라 무왕에게 주었다고 하나 그 근원은 우왕에게까지 닿는다. 우왕이 홍수를 다스릴 때 하늘로부터 받은 낙서를 보고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주나라 무왕이 기자에게 선정의 방안을 물었을 때 기자는 이 홍범구주를 가지고 교시하였다고 한다.
홍범구주 (洪範九疇)
홍범구주는 중국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기자에게 받았다고 전해지는 9가지 범주의 대법을 가리키는 유교 용어이다. 홍범은 대법을 말하고, 구주는 9개의 조항을 말하는 것으로, 즉 ‘9개 조항의 큰 법’이라는 뜻이다. 은나라와 주나라의 교체 시기에 은나라 기자가 주나라 무왕에게 주었다고 하나 그 근원은 우왕에게까지 닿는다. 우왕이 홍수를 다스릴 때 하늘로부터 받은 낙서를 보고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주나라 무왕이 기자에게 선정의 방안을 물었을 때 기자는 이 홍범구주를 가지고 교시하였다고 한다.
삼국시대 신라의 파진찬으로 아막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장군.
이리벌 (伊梨伐)
삼국시대 신라의 파진찬으로 아막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장군.
삼국시대 신라의 급찬으로 아막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장군.
비리야 (比梨耶)
삼국시대 신라의 급찬으로 아막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장군.
「백제용신설화」는 백제와 후백제의 왕계를 물의 용과 관련지어 이야기하는 설화이다. 『삼국유사』의 「무왕」조와 「조룡대 설화」, 「견훤 설화」 등에서 용신이 등장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무왕의 탄생에서는 용신의 현현, 백제의 멸망에서는 용신의 최후, 그리고 견훤의 실패와 좌절에는 용신의 후예로서 부정되는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용신을 중심으로 하는 정신적 유대감과 지속 의지 및 복원에 대한 소망이 반영되어 있다고 해석된다.
백제용신설화 (百濟龍神說話)
「백제용신설화」는 백제와 후백제의 왕계를 물의 용과 관련지어 이야기하는 설화이다. 『삼국유사』의 「무왕」조와 「조룡대 설화」, 「견훤 설화」 등에서 용신이 등장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무왕의 탄생에서는 용신의 현현, 백제의 멸망에서는 용신의 최후, 그리고 견훤의 실패와 좌절에는 용신의 후예로서 부정되는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용신을 중심으로 하는 정신적 유대감과 지속 의지 및 복원에 대한 소망이 반영되어 있다고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