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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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상서육부(尙書六部) 가운데 하나로, 문관(文官)의 인사와 훈봉 등의 사무를 관장하던 중앙관청.
이부 (吏部)
고려시대 상서육부(尙書六部) 가운데 하나로, 문관(文官)의 인사와 훈봉 등의 사무를 관장하던 중앙관청.
고려시대 정2품 상계 문관의 품계.
금자광록대부 (金紫光祿大夫)
고려시대 정2품 상계 문관의 품계.
해방 이후 상공부차관, 보건사회부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진의종 (陳懿鍾)
해방 이후 상공부차관, 보건사회부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고려시대 때 문관의 공복(公服)에 패용하여 등위(等威)를 가리던 물고기모양의 장식물.
어대 (魚袋)
고려시대 때 문관의 공복(公服)에 패용하여 등위(等威)를 가리던 물고기모양의 장식물.
해방 이후 내무부차관, 농림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정운갑 (鄭雲甲)
해방 이후 내무부차관, 농림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조선후기 전주영장, 경상우수사, 부산첨사 등을 역임한 무신.
문희성 (文希聖)
조선후기 전주영장, 경상우수사, 부산첨사 등을 역임한 무신.
김다수는 삼국시대 7세기 중반 중국 당나라와 왜(倭)에 사신으로 파견된 신라 관리이다. 644년 당에 파견되어 신라와 당의 군사동맹에 대한 교섭을 하였고, 649년에는 왜에 파견되어 신라와 왜의 연계 강화를 위한 외교 교섭을 담당하였다.
김다수 (金多遂)
김다수는 삼국시대 7세기 중반 중국 당나라와 왜(倭)에 사신으로 파견된 신라 관리이다. 644년 당에 파견되어 신라와 당의 군사동맹에 대한 교섭을 하였고, 649년에는 왜에 파견되어 신라와 왜의 연계 강화를 위한 외교 교섭을 담당하였다.
고려시대 문관의 위계제도.
문림랑 (文林郎)
고려시대 문관의 위계제도.
조선 후기에, 제주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문희현 (文希賢)
조선 후기에, 제주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시대 종2품 문관의 품계.
금자흥록대부 (金紫興祿大夫)
고려시대 종2품 문관의 품계.
대한제국 말기 판임문관(判任文官)의 임용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관청.
문관전고소 (文官銓考所)
대한제국 말기 판임문관(判任文官)의 임용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관청.
고려시대 문관의 위계제도.
금자숭록대부 (金紫崇祿大夫)
고려시대 문관의 위계제도.
고려시대 정9품 하위 문관의 품계.
등사랑 (登仕郎)
고려시대 정9품 하위 문관의 품계.
국회 내무위원회 전문의원, 국무원 사무처 인사과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정치인.
안용대 (安龍大)
국회 내무위원회 전문의원, 국무원 사무처 인사과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정치인.
고려시대 문관의 위계제도.
급사랑 (給事郎)
고려시대 문관의 위계제도.
견장은 근대 이후에 서양식 제복 어깨에 달아 계급을 표시하고 상황에 맞는 옷차림을 구성하는 복식 부속품이다. 1895년(고종 32)에 처음으로 서양식 군복이 도입되었을 때 견장도 규정되었으며 그 후 경찰복, 문관 제복 등 서양식 제복 제도에 수반되었다. 견장은 국가를 상징하는 문양이 들어가고 탈부착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에도 군복과 경찰복 등 제복 제도에 포함되어 있다.
견장 (肩章)
견장은 근대 이후에 서양식 제복 어깨에 달아 계급을 표시하고 상황에 맞는 옷차림을 구성하는 복식 부속품이다. 1895년(고종 32)에 처음으로 서양식 군복이 도입되었을 때 견장도 규정되었으며 그 후 경찰복, 문관 제복 등 서양식 제복 제도에 수반되었다. 견장은 국가를 상징하는 문양이 들어가고 탈부착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에도 군복과 경찰복 등 제복 제도에 포함되어 있다.
문관복장규칙(文官服裝規則)은 1900년(광무 4) 4월 17일에 칙령 제14호로 규정된 문관의 서구식 복장에 관한 최초의 제도이다. 복식의 종류, 착용 신분, 착용 상황, 복식 종류별 구성요소를 규정하였다. 같은 날에 제정된 칙령 제15호 「문관대례복제식(文官大禮服製式)」에서 대례복의 형태를 상세히 규정하였고, 칙령 15호와 함께 공포되었어야 할 「문관대례복도식(文官大禮服圖式)」은 1901년(광무 5) 9월 3일 『관보』에 게재되었다. 이 제도는 1910년 8월 29일 일제의 한국 병탄으로 더 이상 시행되지 않았다.
문관복장규칙 (文官服裝規則)
문관복장규칙(文官服裝規則)은 1900년(광무 4) 4월 17일에 칙령 제14호로 규정된 문관의 서구식 복장에 관한 최초의 제도이다. 복식의 종류, 착용 신분, 착용 상황, 복식 종류별 구성요소를 규정하였다. 같은 날에 제정된 칙령 제15호 「문관대례복제식(文官大禮服製式)」에서 대례복의 형태를 상세히 규정하였고, 칙령 15호와 함께 공포되었어야 할 「문관대례복도식(文官大禮服圖式)」은 1901년(광무 5) 9월 3일 『관보』에 게재되었다. 이 제도는 1910년 8월 29일 일제의 한국 병탄으로 더 이상 시행되지 않았다.
문관대례복제식은 1900년(광무 4) 4월 17일 칙령 제15호로 규정된 문관의 서구식 대례복(大禮服) 형태에 관한 최초의 제도이다. 대례복을 구성하는 여러 복식의 형태, 소재, 무늬 등에 관해 상세히 규정하였다. 1904년(광무 8), 1905년(광무 9)에 일부 개정되었고, 1906년(광무 10)에 전면 개정된 형태는 일제가 대한제국 병탄 준비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 제도는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멸망함에 따라 더 이상 시행되지 않았다.
문관대례복제식 (文官大禮服制式)
문관대례복제식은 1900년(광무 4) 4월 17일 칙령 제15호로 규정된 문관의 서구식 대례복(大禮服) 형태에 관한 최초의 제도이다. 대례복을 구성하는 여러 복식의 형태, 소재, 무늬 등에 관해 상세히 규정하였다. 1904년(광무 8), 1905년(광무 9)에 일부 개정되었고, 1906년(광무 10)에 전면 개정된 형태는 일제가 대한제국 병탄 준비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 제도는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멸망함에 따라 더 이상 시행되지 않았다.
문관대례복은 1894~1900년에 사용된 전통식 대례복과 1900~1910년에 사용된 서구식 대례복이다. ‘대례복’이라는 용어는 1894년 갑오의제개혁에서 등장하였고, 전통식 관복인 사모, 흉배 부착 흑단령, 품대, 화의 차림이었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대에 서구식 대례복이 제정되었는데, 칙임관과 주임관만 착용할 수 있었다. 대례모(大禮帽), 대례의(大禮衣), 하의(下衣: 조끼), 대례복용 바지[大禮袴], 검(劍)과 검대(劍帶), 백포하금(白布下襟: 깃 안에 대는 흰색의 부착물), 백색 장갑[手套] 등으로 구성된다.
문관대례복 (文官大禮服)
문관대례복은 1894~1900년에 사용된 전통식 대례복과 1900~1910년에 사용된 서구식 대례복이다. ‘대례복’이라는 용어는 1894년 갑오의제개혁에서 등장하였고, 전통식 관복인 사모, 흉배 부착 흑단령, 품대, 화의 차림이었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대에 서구식 대례복이 제정되었는데, 칙임관과 주임관만 착용할 수 있었다. 대례모(大禮帽), 대례의(大禮衣), 하의(下衣: 조끼), 대례복용 바지[大禮袴], 검(劍)과 검대(劍帶), 백포하금(白布下襟: 깃 안에 대는 흰색의 부착물), 백색 장갑[手套] 등으로 구성된다.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은 1906년에 궁내부 소속 관원의 서구식 대례복과 소례복에 관해 규정한 제도이다. 1906년 2월 27일에 제정된 이 「규칙」과 함께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대례복과 소례복 제식」이 공포되어 옷의 상세한 형태가 규정되었고, 이 ‘제식’의 형태대로 그린 ‘도식’이 존재하였다. 국가 사무를 보는 일반 문관과 차별화되는 궁내부만의 복제가 처음 제정되고, 황실 상징 무늬인 이화(李花: 오얏꽃)가 주요 무늬로 사용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 (宮內府 本部 及 禮式院 禮服 規則)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은 1906년에 궁내부 소속 관원의 서구식 대례복과 소례복에 관해 규정한 제도이다. 1906년 2월 27일에 제정된 이 「규칙」과 함께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대례복과 소례복 제식」이 공포되어 옷의 상세한 형태가 규정되었고, 이 ‘제식’의 형태대로 그린 ‘도식’이 존재하였다. 국가 사무를 보는 일반 문관과 차별화되는 궁내부만의 복제가 처음 제정되고, 황실 상징 무늬인 이화(李花: 오얏꽃)가 주요 무늬로 사용되었다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