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백양사"
검색결과 총 13건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모악산(母岳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행은존자가 창건한 사찰.
모악산 용천사 (母岳山 龍泉寺)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모악산(母岳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행은존자가 창건한 사찰.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산(錦城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
금성산 다보사 (錦城山 多寶寺)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산(錦城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몽성산(夢聖山)에 있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사찰.
몽성산 용흥사 (夢聖山 龍興寺)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몽성산(夢聖山)에 있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사찰.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에 있는 명승.
장성 백양사 백학봉 (長城 白羊寺 白鶴峰)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에 있는 명승.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추산 용추봉(龍楸峯)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혜총과 혜증이 창건한 사찰.
용추산 용추사 (龍湫山 龍湫寺)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추산 용추봉(龍楸峯)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혜총과 혜증이 창건한 사찰.
김진민은 일제강점기 「유란부」, 「독서락」, 「누실명」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이다. 1912년 정읍 태인에서 태어나 9세부터 부친의 권유로 김돈희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서예를 익혔다. 11세부터 전남 영광의 불갑사의 「불갑사」와 백양사의 「우화루」 등의 현판 글씨를 쓰면서 소녀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다. 12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수차례 특선을 하면서 천재 여류서예가로 주목을 받았다. 불심이 깊어 백양사, 금산사, 내장사 등 사찰 편액에 글씨를 남겼다. 김진민은 행서·해서·예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를 구사하였으며, 강건하고 웅대한 서풍을 구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진민 (金瑱珉)
김진민은 일제강점기 「유란부」, 「독서락」, 「누실명」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이다. 1912년 정읍 태인에서 태어나 9세부터 부친의 권유로 김돈희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서예를 익혔다. 11세부터 전남 영광의 불갑사의 「불갑사」와 백양사의 「우화루」 등의 현판 글씨를 쓰면서 소녀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다. 12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수차례 특선을 하면서 천재 여류서예가로 주목을 받았다. 불심이 깊어 백양사, 금산사, 내장사 등 사찰 편액에 글씨를 남겼다. 김진민은 행서·해서·예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를 구사하였으며, 강건하고 웅대한 서풍을 구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항기 때, 대종장을 역임한 승려.
관영 (瓘英)
개항기 때, 대종장을 역임한 승려.
대한제국기 때, 부안 내소사에 선원을 개설하여 후학을 양성한 승려.
경화 (慶華)
대한제국기 때, 부안 내소사에 선원을 개설하여 후학을 양성한 승려.
조선후기 정토사 심옥의 제자로 화월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인정 (印定)
조선후기 정토사 심옥의 제자로 화월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능가사에 있는 조선후기 승려로 사제간인 추계당과 사영당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불탑. 부도.
고흥 능가사 추계당 및 사영당 부도 (高興 楞伽寺 秋溪堂 및 泗影堂 浮屠)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능가사에 있는 조선후기 승려로 사제간인 추계당과 사영당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불탑. 부도.
조선 후기에, 대흥사 주지로 『양악문집』을 저술한 승려.
계선 (啓璇)
조선 후기에, 대흥사 주지로 『양악문집』을 저술한 승려.
조선후기 구암사 백파에게 불경과 외전을 전수받은 승려.
서관 (瑞寬)
조선후기 구암사 백파에게 불경과 외전을 전수받은 승려.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은 1775년 화승 색민 등이 제작한 불화와 복장 유물이다. 환월당 민숙이 선조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발원하였고, 의겸의 화맥을 잇는 색민과 계헌 등이 제작하였다. 의겸 화풍의 전승과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발원문과 복장 유물이 온전하게 남아있어 18세기 후반 불화 복장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 (長城 白羊寺 阿彌陀如來說法圖 및 腹藏遺物)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은 1775년 화승 색민 등이 제작한 불화와 복장 유물이다. 환월당 민숙이 선조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발원하였고, 의겸의 화맥을 잇는 색민과 계헌 등이 제작하였다. 의겸 화풍의 전승과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발원문과 복장 유물이 온전하게 남아있어 18세기 후반 불화 복장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