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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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은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일원에 위치한 포곡식 산성이다. 통일신라시대 전후부터 운영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여러 차례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충청 병영의 진수 산성으로 경영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재 성의 전체 둘레는 약 4.2km이며, 시설물로 동문·서문·남문 3개소 및 문루를 비롯하여 암문 2개소, 치성 3개소 등이 남아 있다.
상당산성 (上黨山城)
상당산성은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일원에 위치한 포곡식 산성이다. 통일신라시대 전후부터 운영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여러 차례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충청 병영의 진수 산성으로 경영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재 성의 전체 둘레는 약 4.2km이며, 시설물로 동문·서문·남문 3개소 및 문루를 비롯하여 암문 2개소, 치성 3개소 등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주재하던 병영(兵營).
수영 (水營)
조선시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주재하던 병영(兵營).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은 울산광역시 중구에 축조된 조선시대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영성이다. 1415년(조선 태종 15) 경주에서 현재의 병영성 내로 경상좌도병마절제사영이 이설되었다. 1417년(태종 17)에 석축성으로 축조된 후, 1426년(세종 8) 경상우병영성과 일시 합치되었다. 1437년(세종 19) 다시 좌도병마절제사영이 되었으며, 1584년(선조 17)에 다시 병영이 설치되었다. 잔존 성 둘레는 2,120m이다. 사적 제320호이다.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蔚山 慶尙左道兵營城)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은 울산광역시 중구에 축조된 조선시대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영성이다. 1415년(조선 태종 15) 경주에서 현재의 병영성 내로 경상좌도병마절제사영이 이설되었다. 1417년(태종 17)에 석축성으로 축조된 후, 1426년(세종 8) 경상우병영성과 일시 합치되었다. 1437년(세종 19) 다시 좌도병마절제사영이 되었으며, 1584년(선조 17)에 다시 병영이 설치되었다. 잔존 성 둘레는 2,120m이다. 사적 제320호이다.
고창모양성제는 전북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 일대에서 지역의 문화유산인 모양성을 기반으로 개최하는 마을축제이다. 모양성에는 여자들이 돌을 이고 성을 밟으면 무병장수하고 극락에 간다고 전해지는 성밟기 풍속이 있다. 이 풍속이 모양성제로 계승되었다. 1974년 ‘군민의 날’ 행사로 시작하여 2005년부터는 축제의 명칭을 '고창모양성제'로 바꾸었다. 모양성 보존회 주관으로 매년 음력 9월 9일을 전후로 5일간 행해진다. 전국 유일의 답성돌이와 전통혼례식, 수령부임행차 재현, 성쌓기 재현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지역의 문화유산과 역사 및 민속자료를 축제로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고창모양성제 (高敞牟陽城祭)
고창모양성제는 전북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 일대에서 지역의 문화유산인 모양성을 기반으로 개최하는 마을축제이다. 모양성에는 여자들이 돌을 이고 성을 밟으면 무병장수하고 극락에 간다고 전해지는 성밟기 풍속이 있다. 이 풍속이 모양성제로 계승되었다. 1974년 ‘군민의 날’ 행사로 시작하여 2005년부터는 축제의 명칭을 '고창모양성제'로 바꾸었다. 모양성 보존회 주관으로 매년 음력 9월 9일을 전후로 5일간 행해진다. 전국 유일의 답성돌이와 전통혼례식, 수령부임행차 재현, 성쌓기 재현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지역의 문화유산과 역사 및 민속자료를 축제로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시대에 병마절도사가 주둔한 병영을 중심으로 형성된 취락. 병영촌.
병영취락 (兵營聚落)
조선시대에 병마절도사가 주둔한 병영을 중심으로 형성된 취락. 병영촌.
조선 후기 각도의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가 소재하던 진(鎭).
주진 (主鎭)
조선 후기 각도의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가 소재하던 진(鎭).
조선시대 함경도 경성(鏡城)에 설치되었던 병마절도사의 진영(陣營).
북병영 (北兵營)
조선시대 함경도 경성(鏡城)에 설치되었던 병마절도사의 진영(陣營).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병영초등학교 (兵營初等學校)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호남병영영지』는 1869년(추정) 호남병영의 연혁과 규모 등을 기록한 지리서이다. 1책(12장)으로 된 필사본이며, 크기는 세로 37.6㎝ 가로 30.2㎝이다. 표제는『강영영지』이고, 내제는「호남병영영지」이다. 호남병영이 강진에 있었기 때문에 맨 첫 장에 채색된 강영지도를 첨부하였고, 뒤이어 전라도 병마절도사영의 제반사항이 16개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16개 항목은 병영‚ 성지‚ 고적, 봉대, 관직‚ 공해‚ 창고‚ 방물‚ 물산, 진공‚ 환곡, 발참, 군병, 군향‚ 봉름, 인품 등이다. 호남병영의 연혁과 규모 등을 파악하고, 호남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호남병영영지 (湖南兵營營誌)
『호남병영영지』는 1869년(추정) 호남병영의 연혁과 규모 등을 기록한 지리서이다. 1책(12장)으로 된 필사본이며, 크기는 세로 37.6㎝ 가로 30.2㎝이다. 표제는『강영영지』이고, 내제는「호남병영영지」이다. 호남병영이 강진에 있었기 때문에 맨 첫 장에 채색된 강영지도를 첨부하였고, 뒤이어 전라도 병마절도사영의 제반사항이 16개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16개 항목은 병영‚ 성지‚ 고적, 봉대, 관직‚ 공해‚ 창고‚ 방물‚ 물산, 진공‚ 환곡, 발참, 군병, 군향‚ 봉름, 인품 등이다. 호남병영의 연혁과 규모 등을 파악하고, 호남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성남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병영초등학교 (兵營初等學校)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성남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1883년~1907년 의정부에서 편찬한 함경도에 관하여 기록한 지리서. 영지.
관북영지 (關北營誌)
1883년~1907년 의정부에서 편찬한 함경도에 관하여 기록한 지리서. 영지.
1895년에 전라도 병마절도사영,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영에서 편찬한 호남 지방의 영지(營誌)이다. 표제는 「영지 부사례(營誌附事例)」, 내제는 「전라병영영지」, 「전라좌수영영지급사례」, 「우수영영지」, 「우수영사례」이다. 좌수영에 관한 영지로는 1847년(헌종 13)에 편찬된 『호좌수영지(湖左水營誌)』가 있고, 우수영에 관한 것으로는 1851년(철종 2)에 편찬된 『호우수영지(湖右水營誌)』가 있다. 고종대 정부에서 파악하고자 했던 지방관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호남영지 (湖南營誌)
1895년에 전라도 병마절도사영,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영에서 편찬한 호남 지방의 영지(營誌)이다. 표제는 「영지 부사례(營誌附事例)」, 내제는 「전라병영영지」, 「전라좌수영영지급사례」, 「우수영영지」, 「우수영사례」이다. 좌수영에 관한 영지로는 1847년(헌종 13)에 편찬된 『호좌수영지(湖左水營誌)』가 있고, 우수영에 관한 것으로는 1851년(철종 2)에 편찬된 『호우수영지(湖右水營誌)』가 있다. 고종대 정부에서 파악하고자 했던 지방관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안정사는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벽발산(碧鉢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법화종에 속하는 사찰로, 만력(萬曆) 8년(1580)의 명(銘)이 새겨진 동종과 숙종 28년(1702)에 조성한 33척(약 10m)의 영산회 괘불도가 201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병영 사찰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왕실과 국가를 위한 수륙재를 봉행하였고 1500년대의 의례집을 수차례 발간하여 소장하고 있다.
벽발산 안정사 (碧鉢山 安靜寺)
안정사는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벽발산(碧鉢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법화종에 속하는 사찰로, 만력(萬曆) 8년(1580)의 명(銘)이 새겨진 동종과 숙종 28년(1702)에 조성한 33척(약 10m)의 영산회 괘불도가 201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병영 사찰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왕실과 국가를 위한 수륙재를 봉행하였고 1500년대의 의례집을 수차례 발간하여 소장하고 있다.
『사병만화』는 1950년 육군본부에서 발행한 만화 기관지이다. 당시 신예 만화가 김성환, 정준용, 이상호, 고상영, 정한기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1950년 12월 30일자에 김성환의 「고바우」가 최초로 실렸다는 기록이 있다. 국방부에서 발행한 『만화승리』와 함께 대표적인 병영만화로 꼽힌다.
사병만화 (士兵漫畵)
『사병만화』는 1950년 육군본부에서 발행한 만화 기관지이다. 당시 신예 만화가 김성환, 정준용, 이상호, 고상영, 정한기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1950년 12월 30일자에 김성환의 「고바우」가 최초로 실렸다는 기록이 있다. 국방부에서 발행한 『만화승리』와 함께 대표적인 병영만화로 꼽힌다.
『만화승리』는 1950년 경 국방부 정훈국에서 『승리일보』의 부록으로 발행한 주간 만화신문이다. 주로 만화가 김성환이 편집과 제작 전반을 담당했다. 김성환를 비롯해 고상영, 정준용, 김윤항, 전성보, 유준상, 이상호 등이 참여했다. 연재만화로 김성환의 「김멍텅구리씨」, 고상영의 「모돌이」가 실려 있으며, 각종 소식과 주변의 정세를 다양한 컷 형식의 만화로 다뤘다. 십만 부 이상 인쇄되어 국군 전체에 배포되었다.
만화승리 (漫畵勝利)
『만화승리』는 1950년 경 국방부 정훈국에서 『승리일보』의 부록으로 발행한 주간 만화신문이다. 주로 만화가 김성환이 편집과 제작 전반을 담당했다. 김성환를 비롯해 고상영, 정준용, 김윤항, 전성보, 유준상, 이상호 등이 참여했다. 연재만화로 김성환의 「김멍텅구리씨」, 고상영의 「모돌이」가 실려 있으며, 각종 소식과 주변의 정세를 다양한 컷 형식의 만화로 다뤘다. 십만 부 이상 인쇄되어 국군 전체에 배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