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부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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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한족회 중앙위원을 역임하며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박건 (朴健)
일제강점기 때, 한족회 중앙위원을 역임하며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망명하여 부민단, 한족회 등에서 동포의 생활 안정과 독립정신 함양에 기여한 독립운동가.
방기전 (方基典)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망명하여 부민단, 한족회 등에서 동포의 생활 안정과 독립정신 함양에 기여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105인 사건으로 복역하였으며,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하여 한족회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의 만주대학살에 의해 살해된 독립운동가.
김세탁 (金世鐸)
일제강점기 때, 105인 사건으로 복역하였으며,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하여 한족회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의 만주대학살에 의해 살해된 독립운동가.
신흥학우단은 1913년 5월 만주에서 신흥강습소와 연계되어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만주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서 창단되어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 본부를 두었다. 처음에는 강토를 회복한다는 ’다물단(多勿團)‘으로 하였다가, 신흥학우단[혹은 신흥교우단(新興校友團)]으로 불렸다. 신흥강습소 교직원과 학생을 중심으로 결성한 이 단체는 1910년대 만주 지역 항일 독립운동의 핵심 조직이었다.
신흥학우단 (新興學友團)
신흥학우단은 1913년 5월 만주에서 신흥강습소와 연계되어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만주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서 창단되어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 본부를 두었다. 처음에는 강토를 회복한다는 ’다물단(多勿團)‘으로 하였다가, 신흥학우단[혹은 신흥교우단(新興校友團)]으로 불렸다. 신흥강습소 교직원과 학생을 중심으로 결성한 이 단체는 1910년대 만주 지역 항일 독립운동의 핵심 조직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교장, 임시정부 군무차장 등으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부의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정치인·독립운동가.
윤기섭 (尹琦燮)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교장, 임시정부 군무차장 등으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부의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정치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학교를 설립하고 부민단, 한족회 등을 설립하여 교육활동을 전개하였고, 서로군정서, 한국독립당 등을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한 교육자·독립운동가.
여준 (呂準)
일제강점기 때, 학교를 설립하고 부민단, 한족회 등을 설립하여 교육활동을 전개하였고, 서로군정서, 한국독립당 등을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한 교육자·독립운동가.
한족회는 1919년 서간도(西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서간도의 자치기관인 부민단(扶民團)이 제1차 세계대전 종결과 3 · 1운동으로 변화된 시대 상황에 따라 교육회(敎育會), 자신계(自新契)와 통합하여 확대, 개편하였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기반으로 독립군단을 편성하고 군비 확충과 군사 훈련에 힘썼다.
한족회 (韓族會)
한족회는 1919년 서간도(西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서간도의 자치기관인 부민단(扶民團)이 제1차 세계대전 종결과 3 · 1운동으로 변화된 시대 상황에 따라 교육회(敎育會), 자신계(自新契)와 통합하여 확대, 개편하였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기반으로 독립군단을 편성하고 군비 확충과 군사 훈련에 힘썼다.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부민단 초대 단장을 역임하였으며,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허겸 (許蒹)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부민단 초대 단장을 역임하였으며,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