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북계"
검색결과 총 11건
병마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 지역에 파견되어 군사와 민사행정을 총괄하던 지방 장관이다. 989년(성종 8)에 설치되었다. 양계에는 각각 안북대도호부와 안변도호부를 두었고, 그 밑에 방어주와 진이 설치되었다. 주에는 방어사가, 진에는 진장이 파견되었고, 병마사는 주진제로 편성된 양계를 일원적으로 통할하였다. 병마사기구에는 3품으로 병마사와 지병마사, 4품관인 병마부사, 5품 내지 6품인 병마판관, 그리고 병마녹사가 설치되었다. 몽골 침입과 그 지배로 양계는 점차 일반 행정구역인 주현으로 개편되고 장관이 도관찰출척사로 바뀌었다.
병마사 (兵馬使)
병마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 지역에 파견되어 군사와 민사행정을 총괄하던 지방 장관이다. 989년(성종 8)에 설치되었다. 양계에는 각각 안북대도호부와 안변도호부를 두었고, 그 밑에 방어주와 진이 설치되었다. 주에는 방어사가, 진에는 진장이 파견되었고, 병마사는 주진제로 편성된 양계를 일원적으로 통할하였다. 병마사기구에는 3품으로 병마사와 지병마사, 4품관인 병마부사, 5품 내지 6품인 병마판관, 그리고 병마녹사가 설치되었다. 몽골 침입과 그 지배로 양계는 점차 일반 행정구역인 주현으로 개편되고 장관이 도관찰출척사로 바뀌었다.
고려후기 수졸, 낭장 등을 역임한 무신.
다지 (多智)
고려후기 수졸, 낭장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전기 공관어사 지도성사, 시중, 태사개국광익공 등을 역임한 문신.
박양유 (朴良柔)
고려전기 공관어사 지도성사, 시중, 태사개국광익공 등을 역임한 문신.
구성(九城)은 1107년(예종 2) 12월에서 1109년(예종 4) 7월 사이에 윤관이 별무반을 동원하여 고려 동북쪽의 변경 지역을 개척하기 위해 축성한 성곽이다. 1108년(예종 3) 3월 경진일 무렵에 구축된 9성은 영주, 웅주, 복주, 길주, 함주, 공험진, 의주, 통태진, 평융진이다. 1109년 7월 신유일부터 순차적으로 철수한 9성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의주, 공험진, 평융진이 빠져 있고 숭녕진, 진양진, 선화진이 추가되어 있다.
구성 (九城)
구성(九城)은 1107년(예종 2) 12월에서 1109년(예종 4) 7월 사이에 윤관이 별무반을 동원하여 고려 동북쪽의 변경 지역을 개척하기 위해 축성한 성곽이다. 1108년(예종 3) 3월 경진일 무렵에 구축된 9성은 영주, 웅주, 복주, 길주, 함주, 공험진, 의주, 통태진, 평융진이다. 1109년 7월 신유일부터 순차적으로 철수한 9성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의주, 공험진, 평융진이 빠져 있고 숭녕진, 진양진, 선화진이 추가되어 있다.
안융진(安戎鎭)은 고려 전기 973년(광종 24)에 북계 지역에 설치한 진(鎭)이다. 이후 1033년(덕종 2)과 1137년(인종 15)에 다시 축성되었다. 안융진성은 평안남도 문덕군 신리에 위치한 토성(土城)이다. 안융진은 993년(성종 12) 거란의 제1차 침입 시기에 주요 전장이 되었다. 안융진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거란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었다. 이후 서희(徐熙)는 소손녕(蕭遜寧)과 강화 회담을 진행하여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안융진 (安戎鎭)
안융진(安戎鎭)은 고려 전기 973년(광종 24)에 북계 지역에 설치한 진(鎭)이다. 이후 1033년(덕종 2)과 1137년(인종 15)에 다시 축성되었다. 안융진성은 평안남도 문덕군 신리에 위치한 토성(土城)이다. 안융진은 993년(성종 12) 거란의 제1차 침입 시기에 주요 전장이 되었다. 안융진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거란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었다. 이후 서희(徐熙)는 소손녕(蕭遜寧)과 강화 회담을 진행하여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평안북도 정주 지역의 옛 지명.
수주 (隨州)
평안북도 정주 지역의 옛 지명.
최승로는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문하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927년(태조 10)에 태어나 989년(성종 8)에 사망했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할 때 아버지와 함께 송도로 왔다. 유학파는 아니지만 유학에 뛰어나 문장과 학문 관련 관직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종·경종 재위기에는 큰 활약상이 보이지 않으나 성종 때 중요 관직을 맡았다. 성종이 경관 5품 이상에게 봉사를 올리게 하자 28조의 시무책을 올려 성종의 공감을 샀다. 유교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치세 방향을 제시하여 새로운 국가체제 정비에 기여한 인물이다.
최승로 (崔承老)
최승로는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문하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927년(태조 10)에 태어나 989년(성종 8)에 사망했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할 때 아버지와 함께 송도로 왔다. 유학파는 아니지만 유학에 뛰어나 문장과 학문 관련 관직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종·경종 재위기에는 큰 활약상이 보이지 않으나 성종 때 중요 관직을 맡았다. 성종이 경관 5품 이상에게 봉사를 올리게 하자 28조의 시무책을 올려 성종의 공감을 샀다. 유교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치세 방향을 제시하여 새로운 국가체제 정비에 기여한 인물이다.
최탄은 1269년(원종 10) 북계(北界)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몽골로 투항하여 동녕부(東寧府) 설치의 빌미를 주었던 반역자이다. 최탄, 한신(韓愼) 등이 저항을 일으킨 시기는 임연(林衍)의 원종 폐립에 따른 몽골의 압력이 가중되어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시점이었다. 최탄 일파의 투몽(投蒙)은 지배층의 수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민의 투몽과는 구별되지만, 이들이 혼란스러운 고려 사회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했다는 점은 무신정권의 붕괴와 저항 세력의 동향에도 영향을 끼쳤다.
최탄 (崔坦)
최탄은 1269년(원종 10) 북계(北界)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몽골로 투항하여 동녕부(東寧府) 설치의 빌미를 주었던 반역자이다. 최탄, 한신(韓愼) 등이 저항을 일으킨 시기는 임연(林衍)의 원종 폐립에 따른 몽골의 압력이 가중되어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시점이었다. 최탄 일파의 투몽(投蒙)은 지배층의 수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민의 투몽과는 구별되지만, 이들이 혼란스러운 고려 사회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했다는 점은 무신정권의 붕괴와 저항 세력의 동향에도 영향을 끼쳤다.
고려후기 거란유종의 침입 당시의 관리. 무신.
이광유 (李光裕)
고려후기 거란유종의 침입 당시의 관리. 무신.
주진군은 고려 전기 북방 국경지대인 북계와 동계의 주·진(州鎭)에 설치된 지방군이다. 고려의 국경지역는 일반 행정구역과는 달리 방어주(防禦州)·진(鎭)을 설치하고 방어사(防禦使)와 진장(鎭長)을 임명하였다. 주현군과 비교해 병종이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고, 병력수도 훨씬 많다. 주·진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은 주진군 조직에 편제되어 평상시에는 교대로 동원되다가 유사시에는 모든 병력이 동원되었다. 남도로부터 번상한 방수군은 중앙에서 파견된 방수장군의 지휘하에 국경 방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몽고군의 침략으로 주·진이 함락되면서 붕괴되었다.
주진군 (州鎭軍)
주진군은 고려 전기 북방 국경지대인 북계와 동계의 주·진(州鎭)에 설치된 지방군이다. 고려의 국경지역는 일반 행정구역과는 달리 방어주(防禦州)·진(鎭)을 설치하고 방어사(防禦使)와 진장(鎭長)을 임명하였다. 주현군과 비교해 병종이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고, 병력수도 훨씬 많다. 주·진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은 주진군 조직에 편제되어 평상시에는 교대로 동원되다가 유사시에는 모든 병력이 동원되었다. 남도로부터 번상한 방수군은 중앙에서 파견된 방수장군의 지휘하에 국경 방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몽고군의 침략으로 주·진이 함락되면서 붕괴되었다.
고려시대 양계(兩界: 北界·東界)에 설치된 방어진(防禦鎭: 防禦州)의 장관.
방어진사 (防禦鎭使)
고려시대 양계(兩界: 北界·東界)에 설치된 방어진(防禦鎭: 防禦州)의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