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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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분야의 기술혁신을 통해 20세기 후반 획기적인 식량증산을 이루어낸 농업정책.
녹색혁명 (綠色革命)
농업 분야의 기술혁신을 통해 20세기 후반 획기적인 식량증산을 이루어낸 농업정책.
1966년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정부 정치자금과 관련해 건설자재로 가장하여 사카린을 대량 밀수입한 사건.
사카린 밀수사건 (saccharin 密輸事件)
1966년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정부 정치자금과 관련해 건설자재로 가장하여 사카린을 대량 밀수입한 사건.
1925년 10월에 서울에서 조직된 농민운동단체.
조선농민사 (朝鮮農民社)
1925년 10월에 서울에서 조직된 농민운동단체.
1966년 9월 22일 이병철 삼성 대표가 한국비료 밀수사건으로 인해 한국비료를 정부에 헌납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이후, 정부와 삼성 측 간에 1년여 동안 지속된 갈등.
한국비료 헌납사건 (韓國肥料 獻納事件)
1966년 9월 22일 이병철 삼성 대표가 한국비료 밀수사건으로 인해 한국비료를 정부에 헌납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이후, 정부와 삼성 측 간에 1년여 동안 지속된 갈등.
질소족에 속하는 담황색 반투명의 비금속원소.
인 (燐)
질소족에 속하는 담황색 반투명의 비금속원소.
식산계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설립된 농촌 경제 단체이다. 계원의 경제 발달을 위해 공동 사업을 운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식산계는 금융조합의 엄격한 지도 감독을 받았고, 식산계의 공동 사업과 금융조합의 자금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1940년 전시 농업 정책이 실시되자 식산계는 농촌 지역의 물자 수집과 배급을 담당하는 경제 통제 조직으로 전환되었다.
식산계 (殖産契)
식산계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설립된 농촌 경제 단체이다. 계원의 경제 발달을 위해 공동 사업을 운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식산계는 금융조합의 엄격한 지도 감독을 받았고, 식산계의 공동 사업과 금융조합의 자금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1940년 전시 농업 정책이 실시되자 식산계는 농촌 지역의 물자 수집과 배급을 담당하는 경제 통제 조직으로 전환되었다.
김호반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25년 말경 코민테른의 지시로 국내에서 고려공산청년회 경남도책을 맡았으며, 1926년에는 조선공산당 경남도당 위원을 맡았다. 1931년 2월 함흥질소비료회사의 공장 지대를 중심으로 하여 프로핀테른 조선지부 함흥위원회를 조직하였으나, 체포되어 7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김호반 (金鎬盤)
김호반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25년 말경 코민테른의 지시로 국내에서 고려공산청년회 경남도책을 맡았으며, 1926년에는 조선공산당 경남도당 위원을 맡았다. 1931년 2월 함흥질소비료회사의 공장 지대를 중심으로 하여 프로핀테른 조선지부 함흥위원회를 조직하였으나, 체포되어 7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부전강수력발전소는 함경남도 신흥군에 있는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이다.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전액 출자한 조선수력주식회사가 1926년 착공해 1929년 제1발전소를 준공하였고, 1932년 제4발전소까지 건설해 총 20만㎾의 전력 생산능력을 갖췄다. 부전강수력발전소는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흥남 일대에 설립한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에 전기를 공급하는 자가용 발전소로 식민지 조선의 전력 체계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발전 용량 22만 5950㎾, 연간 14억㎾h의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로서 현재도 북한 지역의 전력공급을 책임지고 있다.
부전강수력발전소 (赴戰江水力發電所)
부전강수력발전소는 함경남도 신흥군에 있는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이다.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전액 출자한 조선수력주식회사가 1926년 착공해 1929년 제1발전소를 준공하였고, 1932년 제4발전소까지 건설해 총 20만㎾의 전력 생산능력을 갖췄다. 부전강수력발전소는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흥남 일대에 설립한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에 전기를 공급하는 자가용 발전소로 식민지 조선의 전력 체계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발전 용량 22만 5950㎾, 연간 14억㎾h의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로서 현재도 북한 지역의 전력공급을 책임지고 있다.
수풍댐은 평안북도 삭주군에 있는 중력식 콘크리트댐이다. 이 댐은 압록강을 가로막아 막대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설비를 갖추었다. 국경 하천인 압록강에 건설된 만큼 형식적으로나마 두 나라인 만주국과 조선총독부 사이의 협력 사업으로 진행되었고,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실질적인 개발을 맡았다. 1938년 착공해 1944년 완공된 70만㎾급 수풍댐은 아시아 최대 규모였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위용을 자랑하였다. 1953년 북한과 중국이 함께 한중압록강수력발전회사를 설립한 이래 현재까지 양국이 공동 관리, 운영하고 있다.
수풍댐 (水豊dam)
수풍댐은 평안북도 삭주군에 있는 중력식 콘크리트댐이다. 이 댐은 압록강을 가로막아 막대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설비를 갖추었다. 국경 하천인 압록강에 건설된 만큼 형식적으로나마 두 나라인 만주국과 조선총독부 사이의 협력 사업으로 진행되었고,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실질적인 개발을 맡았다. 1938년 착공해 1944년 완공된 70만㎾급 수풍댐은 아시아 최대 규모였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위용을 자랑하였다. 1953년 북한과 중국이 함께 한중압록강수력발전회사를 설립한 이래 현재까지 양국이 공동 관리, 운영하고 있다.
수풍수력발전소는 평안북도 삭주군에 있는 댐식 발전시설이다. 압록강은 일찍부터 유력한 발전소 건설지로 주목되었으나 국경 하천이라 개발에 제약이 있었다. 만주국과 조선총독부는 개발이익을 절반씩 나눈다는 조건으로 협력 사업을 진척시켰고, 수력발전소 개발에 오랜 기술력은 물론 압도적인 자금력을 가진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둘 사이를 오가며 발전소 건설을 주도하였다. 그 결과 1944년 총 70만㎾급 발전설비를 갖춘 수풍수력발전소를 건설하였다.
수풍수력발전소 (水豊水力發電所)
수풍수력발전소는 평안북도 삭주군에 있는 댐식 발전시설이다. 압록강은 일찍부터 유력한 발전소 건설지로 주목되었으나 국경 하천이라 개발에 제약이 있었다. 만주국과 조선총독부는 개발이익을 절반씩 나눈다는 조건으로 협력 사업을 진척시켰고, 수력발전소 개발에 오랜 기술력은 물론 압도적인 자금력을 가진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둘 사이를 오가며 발전소 건설을 주도하였다. 그 결과 1944년 총 70만㎾급 발전설비를 갖춘 수풍수력발전소를 건설하였다.
장진강수력발전소는 함경남도 영광군에 있는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이다.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부전강수력발전소에 이어 전액 출자한 장진강수력전기회사가 개발사로 나서 1934년 8월 착공해 1935년 10월 14만 4,000㎾급 제1발전소를 준공하였고, 1938년 제4발전소까지 완공해 총 32만㎾의 전원을 확보하였다. 이 중 절반은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가 독점으로 사용하였고, 나머지 절반을 식민지 조선 전체를 위한 전력으로 공급하였다.
장진강수력발전소 (長津江水力發電所)
장진강수력발전소는 함경남도 영광군에 있는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이다.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부전강수력발전소에 이어 전액 출자한 장진강수력전기회사가 개발사로 나서 1934년 8월 착공해 1935년 10월 14만 4,000㎾급 제1발전소를 준공하였고, 1938년 제4발전소까지 완공해 총 32만㎾의 전원을 확보하였다. 이 중 절반은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가 독점으로 사용하였고, 나머지 절반을 식민지 조선 전체를 위한 전력으로 공급하였다.
한국토양비료학회는 1968년 토양학 및 비료학 연구를 위해 설립된 학술 단체이다. 토양학·비료학 및 식물영양학과 그 응용에 관한 제반 농업기술의 발전 및 보급을 위하여 조백현 등이 중심이 되어 1968년 6월 서울에서 설립되었다. 봄에는 법정기념일인 ‘흙의 날’ 행사와 더불어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가을에는 정기총회와 더불어 분과별로 학술 발표회를 개최한다. 학술지 『한국토양비료학회지』를 연 4회 간행하고 있다. 그 밖에 장기 연용 시험 연구, 바이오차 연구 등 특별 세션을 개최하고 있다.
한국토양비료학회 (韓國土壤肥料學會)
한국토양비료학회는 1968년 토양학 및 비료학 연구를 위해 설립된 학술 단체이다. 토양학·비료학 및 식물영양학과 그 응용에 관한 제반 농업기술의 발전 및 보급을 위하여 조백현 등이 중심이 되어 1968년 6월 서울에서 설립되었다. 봄에는 법정기념일인 ‘흙의 날’ 행사와 더불어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가을에는 정기총회와 더불어 분과별로 학술 발표회를 개최한다. 학술지 『한국토양비료학회지』를 연 4회 간행하고 있다. 그 밖에 장기 연용 시험 연구, 바이오차 연구 등 특별 세션을 개최하고 있다.
허천강수력발전소는 함경남도 허천군에 있는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이다.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개발을 주도한 세 번째 수력발전소로, 1936년 착공해 1943년 제4발전소까지 완공해 총 34만㎾의 발전설비를 갖추었다. 생산된 전력 중 2/3만 공공용 전원으로 식민지 조선의 전력 체계에 편입되었고, 나머지 1/3은 흥남비료공장에서 독점으로 사용하였다.
허천강수력발전소 (虛川江水力發電所)
허천강수력발전소는 함경남도 허천군에 있는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이다.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개발을 주도한 세 번째 수력발전소로, 1936년 착공해 1943년 제4발전소까지 완공해 총 34만㎾의 발전설비를 갖추었다. 생산된 전력 중 2/3만 공공용 전원으로 식민지 조선의 전력 체계에 편입되었고, 나머지 1/3은 흥남비료공장에서 독점으로 사용하였다.
충주비료공장은 1959년 10월에 미국 원조 자금을 이용하여 충북 충주에 요소 비료를 생산하기 위해 설립된 공장이다. 1950년대에 최대의 수입품이었던 비료는 자립 경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내 생산 공장을 건설하여 비료 수입을 대체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비료 공장 건설 논의가 정부 내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었고, 이것은 원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1954년에 실현되었다. 한국 정부는 비료 공장 건설사로 결정된 MHC와 1955년에 비료 공장 건설 계약을 체결했고, 비료 공장은 1959년 10월에 준공되었다.
충주비료공장 (忠州肥料工場)
충주비료공장은 1959년 10월에 미국 원조 자금을 이용하여 충북 충주에 요소 비료를 생산하기 위해 설립된 공장이다. 1950년대에 최대의 수입품이었던 비료는 자립 경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내 생산 공장을 건설하여 비료 수입을 대체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비료 공장 건설 논의가 정부 내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었고, 이것은 원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1954년에 실현되었다. 한국 정부는 비료 공장 건설사로 결정된 MHC와 1955년에 비료 공장 건설 계약을 체결했고, 비료 공장은 1959년 10월에 준공되었다.
충주산업단지는 충청북도 충주시 목행동, 용탄동, 금릉동 일대에 있는 산업단지이다. 1979년 이 일대가 지방공업개발 장려지구로 지정되면서 충주산업단지 개발에 착수하였다. 4개 산업단지가 단계별로 연접하여 조성되어 현재의 충주산업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2.64㎢이며, 115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유치 업종은 전자·전기, 비금속, 석유화학, 음식료품, 금속기계, 제지·인쇄기계 등이다.
충주산업단지 (忠州産業團地)
충주산업단지는 충청북도 충주시 목행동, 용탄동, 금릉동 일대에 있는 산업단지이다. 1979년 이 일대가 지방공업개발 장려지구로 지정되면서 충주산업단지 개발에 착수하였다. 4개 산업단지가 단계별로 연접하여 조성되어 현재의 충주산업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2.64㎢이며, 115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유치 업종은 전자·전기, 비금속, 석유화학, 음식료품, 금속기계, 제지·인쇄기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