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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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남북국시대 당에 유학하고 통일신라의 학자, 문장가, 관료이다. 당을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를 인정하면서도 신라의 고유성과 토착성을 알리려고 하였다. 특히, 사람에 도가 있고 사람은 나라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여, 인간 중심의 보편성과 그에 따른 다양성을 강조하여 신라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다만, 생존 당시 신라가 쇠퇴하여 정치 이념과 사상은 신라 사회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이후 고려 국가의 체제 정비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문장은 동아시아 문서의 형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어서 조선시대에도 특별히 주목을 받았다.
최치원 (崔致遠)
최치원 남북국시대 당에 유학하고 통일신라의 학자, 문장가, 관료이다. 당을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를 인정하면서도 신라의 고유성과 토착성을 알리려고 하였다. 특히, 사람에 도가 있고 사람은 나라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여, 인간 중심의 보편성과 그에 따른 다양성을 강조하여 신라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다만, 생존 당시 신라가 쇠퇴하여 정치 이념과 사상은 신라 사회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이후 고려 국가의 체제 정비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문장은 동아시아 문서의 형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어서 조선시대에도 특별히 주목을 받았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은 반야 경전의 핵심 사상인 공사상을 요약하여 압축적으로 풀어낸 불교 경전이다. 짧은 분량으로 한국에서는 독송 등 의례용으로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주로 현장이 번역한 판본을 독송한다. 산스크리트본으로는 대본과 소본이 전하며, 한역으로는 7종이 있다.
반야심경 (般若心經)
『반야심경(般若心經)』은 반야 경전의 핵심 사상인 공사상을 요약하여 압축적으로 풀어낸 불교 경전이다. 짧은 분량으로 한국에서는 독송 등 의례용으로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주로 현장이 번역한 판본을 독송한다. 산스크리트본으로는 대본과 소본이 전하며, 한역으로는 7종이 있다.
조선의 26대 국왕 고종이 병인양요(丙寅洋擾)와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으면서 서양 세력과의 화친을 배격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
척화비 (斥和碑)
조선의 26대 국왕 고종이 병인양요(丙寅洋擾)와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으면서 서양 세력과의 화친을 배격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
불교에서 방위를 담당하는 수호신.
오방신 (五方神)
불교에서 방위를 담당하는 수호신.
금난전권은 17세기 후반 시전 상인들에게 배타적인 상업 활동을 허가해 주던 권리이다. 임진왜란 이후 시전 상업 체계가 무너지자 중앙정부는 행정 물품을 조달하고 각종 시역에 부응할 시전 상인들을 모집해 이들을 시안(市案)에 등록시키고 난전 활동을 금단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조선 전기 난전은 평시서 소속 금난리가 단속했으나 조선 후기에는 이러한 난전 단속 권한을 시전 상인에게 부여하고 금난전권이라 일컬었다. 기존에는 금난전권의 성립 시기를 17세기 초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었으나 최근 17세기 후반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금난전권 (禁亂廛權)
금난전권은 17세기 후반 시전 상인들에게 배타적인 상업 활동을 허가해 주던 권리이다. 임진왜란 이후 시전 상업 체계가 무너지자 중앙정부는 행정 물품을 조달하고 각종 시역에 부응할 시전 상인들을 모집해 이들을 시안(市案)에 등록시키고 난전 활동을 금단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조선 전기 난전은 평시서 소속 금난리가 단속했으나 조선 후기에는 이러한 난전 단속 권한을 시전 상인에게 부여하고 금난전권이라 일컬었다. 기존에는 금난전권의 성립 시기를 17세기 초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었으나 최근 17세기 후반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삼균주의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조소앙이 독립운동의 기본방략 및 미래 조국건설의 지침으로 삼기 위하여 체계화한 민족주의적 정치사상이다. 삼균주의의 대전제는 ‘완전균등’으로,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완전균등을 표방하였다. 개인 간의 균등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통해, 민족 간의 균등은 민족자결을 통해, 국가 간의 균등은 모든 국가들이 서로 간섭·침탈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이룩된다고 보았다. 한국독립당의 정강으로 채택되어 독립운동의 기본이념이 되었고, 1941년에는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국의 기본이념으로 공포했다.
삼균주의 (三均主義)
삼균주의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조소앙이 독립운동의 기본방략 및 미래 조국건설의 지침으로 삼기 위하여 체계화한 민족주의적 정치사상이다. 삼균주의의 대전제는 ‘완전균등’으로,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완전균등을 표방하였다. 개인 간의 균등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통해, 민족 간의 균등은 민족자결을 통해, 국가 간의 균등은 모든 국가들이 서로 간섭·침탈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이룩된다고 보았다. 한국독립당의 정강으로 채택되어 독립운동의 기본이념이 되었고, 1941년에는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국의 기본이념으로 공포했다.
낭가사상은 신채호가 1920년대에 한국고대사연구를 통해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전통적인 민족사상이다. 신채호는 일제의 역사 왜곡과 날조에 맞서 한국사를 재정립함으로써 민족의 자강과 독립을 위한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정신사관이 아니라 단군조선시대의 수두제전, 연맹왕국시대의 영고·동맹·무천·소도, 고구려의 선배제도, 여기서 발전한 신라의 화랑도 등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 고유 민족사상의 구체적인 형태들을 역사 속에서 복원했다. 이렇게 우리 고유의 민족사상 속에서 민족의 저력을 확인하고 이를 자주독립이라는 시대정신의 씨앗으로 삼고자 한 사상이다.
낭가사상 (郎家思想)
낭가사상은 신채호가 1920년대에 한국고대사연구를 통해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전통적인 민족사상이다. 신채호는 일제의 역사 왜곡과 날조에 맞서 한국사를 재정립함으로써 민족의 자강과 독립을 위한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정신사관이 아니라 단군조선시대의 수두제전, 연맹왕국시대의 영고·동맹·무천·소도, 고구려의 선배제도, 여기서 발전한 신라의 화랑도 등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 고유 민족사상의 구체적인 형태들을 역사 속에서 복원했다. 이렇게 우리 고유의 민족사상 속에서 민족의 저력을 확인하고 이를 자주독립이라는 시대정신의 씨앗으로 삼고자 한 사상이다.
도고는 조선 후기 상품을 매점매석해 가격 상승과 매매 조작을 노리던 상행위의 한 형태, 혹은 그러한 상행위를 하던 상인 또는 상인 조직을 말한다. 시전(市廛) 상인과 공인(貢人)들이 국역(國役)을 부담하는 대가로 받은 해당 물종에 대한 매매 독점권은 합법적인 도고에 해당된다. 한편, 사상(私商)들도 자본력과 조직력을 갖추고 서울 인근의 유통로 또는 지방 생산지를 장악하며 도고를 하였다. 정부는 도고를 근절하려고 했으나 19세기 도고는 더욱 성행하였다.
도고 (都賈)
도고는 조선 후기 상품을 매점매석해 가격 상승과 매매 조작을 노리던 상행위의 한 형태, 혹은 그러한 상행위를 하던 상인 또는 상인 조직을 말한다. 시전(市廛) 상인과 공인(貢人)들이 국역(國役)을 부담하는 대가로 받은 해당 물종에 대한 매매 독점권은 합법적인 도고에 해당된다. 한편, 사상(私商)들도 자본력과 조직력을 갖추고 서울 인근의 유통로 또는 지방 생산지를 장악하며 도고를 하였다. 정부는 도고를 근절하려고 했으나 19세기 도고는 더욱 성행하였다.
환웅은 초기국가시대 고조선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단군의 아버지인 신이다. 하느님인 환인의 서자로서 잠시 사람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은 신이다. 환웅의 ‘환’자의 어의와 의미는 하늘 또는 빛으로, 태양신 내지 천신·천왕을 뜻한다. ‘웅’자는 글자 자체가 수컷을 나타내며 웅녀와 결혼한 것을 보아도 남신임을 알 수 있다. 환웅은 유목문화집단을 상징하고 곰은 농경문화집단을 상징하여 환웅의 하강설화는 환웅으로 대표되는 하늘숭배사상의 문화집단과 곰으로 상징되는 지모신신앙의 문화집단이 결합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환웅 (桓雄)
환웅은 초기국가시대 고조선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단군의 아버지인 신이다. 하느님인 환인의 서자로서 잠시 사람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은 신이다. 환웅의 ‘환’자의 어의와 의미는 하늘 또는 빛으로, 태양신 내지 천신·천왕을 뜻한다. ‘웅’자는 글자 자체가 수컷을 나타내며 웅녀와 결혼한 것을 보아도 남신임을 알 수 있다. 환웅은 유목문화집단을 상징하고 곰은 농경문화집단을 상징하여 환웅의 하강설화는 환웅으로 대표되는 하늘숭배사상의 문화집단과 곰으로 상징되는 지모신신앙의 문화집단이 결합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제너럴셔먼호사건은 1866년(고종 3) 7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에서 군민의 화공으로 불타버린 일이다. 병인박해가 있었던 1866년, 프랑스의 보복 소문이 자자하던 때 정체불명의 이양선이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교역을 강요했다. 미국 상선 셔먼호였다. 조선관리가 통상교역은 국법에 위배되며 대동강 항행은 영토침략·주권침해 행위임을 통보하며 강력 만류했으나 만경대까지 올라왔다. 갑자기 대동강 수위가 낮아져 운항이 어려워지자 난폭하게 대포까지 발사해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평양감사 박규수가 화공으로 셔먼호를 불태우고 선원을 몰살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 (GeneralSherman號 事件)
제너럴셔먼호사건은 1866년(고종 3) 7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에서 군민의 화공으로 불타버린 일이다. 병인박해가 있었던 1866년, 프랑스의 보복 소문이 자자하던 때 정체불명의 이양선이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교역을 강요했다. 미국 상선 셔먼호였다. 조선관리가 통상교역은 국법에 위배되며 대동강 항행은 영토침략·주권침해 행위임을 통보하며 강력 만류했으나 만경대까지 올라왔다. 갑자기 대동강 수위가 낮아져 운항이 어려워지자 난폭하게 대포까지 발사해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평양감사 박규수가 화공으로 셔먼호를 불태우고 선원을 몰살했다.
남녀가 동등한 사회적 조건과 지위, 권리, 의무를 갖는 것을 가리키는 사회학용어.
양성평등 (兩性平等)
남녀가 동등한 사회적 조건과 지위, 권리, 의무를 갖는 것을 가리키는 사회학용어.
백의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는 전통에서 비롯된 한민족의 별칭이다. 고대부터 한민족은 제천(祭天) 사상과 여러 종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흰색을 숭상하고 흰옷을 즐겨 입었다. 한민족의 문화 양식을 지배한 삼교(三敎) 사상은 절제의 미학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색을 강조하여 흰옷을 즐기는 전통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백의민족 (白衣民族)
백의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는 전통에서 비롯된 한민족의 별칭이다. 고대부터 한민족은 제천(祭天) 사상과 여러 종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흰색을 숭상하고 흰옷을 즐겨 입었다. 한민족의 문화 양식을 지배한 삼교(三敎) 사상은 절제의 미학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색을 강조하여 흰옷을 즐기는 전통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화엄종은 화엄경의 사상을 기반으로 형성된 불교 종파이다. 신라 의상이 당 화엄종의 지엄 문하에 유학하여 그 교학을 본격적으로 수용하였고, 부석사를 건립하고 화엄종을 열었다. 신라 말에 선종의 성행으로 타격을 받은 화엄종은 후삼국 통합 후에 다시 부각되었고 균여, 의천 등에 의해 화엄교학이 발전하였다. 고려 후기 화엄종의 동향은 체원의 저술, 사경과 불화를 통해 실천적인 경향이 강조되었다. 조선시대에 독자적인 교단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사상적인 영향이 적지 않았고, 조선 후기 화엄 강경이 유행하고 다양한 주석서가 저술되었다.
화엄종 (華嚴宗)
화엄종은 화엄경의 사상을 기반으로 형성된 불교 종파이다. 신라 의상이 당 화엄종의 지엄 문하에 유학하여 그 교학을 본격적으로 수용하였고, 부석사를 건립하고 화엄종을 열었다. 신라 말에 선종의 성행으로 타격을 받은 화엄종은 후삼국 통합 후에 다시 부각되었고 균여, 의천 등에 의해 화엄교학이 발전하였다. 고려 후기 화엄종의 동향은 체원의 저술, 사경과 불화를 통해 실천적인 경향이 강조되었다. 조선시대에 독자적인 교단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사상적인 영향이 적지 않았고, 조선 후기 화엄 강경이 유행하고 다양한 주석서가 저술되었다.
균여는 고려전기 「보현십원가」, 『수현방궤기』, 『공목장기』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923년(태조 6)에 태어나 973년(광종 24)에 사망했다. 경전의 해석과 강설에 뛰어났으며 남악·북악 두 파로 갈라진 화엄종을 하나로 통일했다. 화엄을 처음 전한 의상을 이어 교풍을 바로잡고 교세를 떨친 화엄의 거장으로 많은 저술을 남겼고 제자가 3000인에 이르렀다. 광종이 그를 위해 창건한 귀법사에서 주지로 있으면서 민중을 교화하고 불법을 펴다가 973년에 입적했다. 불교 이외의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고 향가를 지어 국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균여 (均如)
균여는 고려전기 「보현십원가」, 『수현방궤기』, 『공목장기』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923년(태조 6)에 태어나 973년(광종 24)에 사망했다. 경전의 해석과 강설에 뛰어났으며 남악·북악 두 파로 갈라진 화엄종을 하나로 통일했다. 화엄을 처음 전한 의상을 이어 교풍을 바로잡고 교세를 떨친 화엄의 거장으로 많은 저술을 남겼고 제자가 3000인에 이르렀다. 광종이 그를 위해 창건한 귀법사에서 주지로 있으면서 민중을 교화하고 불법을 펴다가 973년에 입적했다. 불교 이외의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고 향가를 지어 국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박경리는 해방 이후 「불신시대」·「김약국의 딸들」·「토지」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다. 1955년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는 단편소설을 창작했다. 1960년대에는 「김약국의 딸들」, 「파시」 등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1969년부터 대하소설 「토지」 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 8월 전체를 탈고했다. 대표작인 「토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변천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고난을 그려내면서, 민족과 역사에 대한 총체적인 조망을 시도한 작품이다.
박경리 (朴景利)
박경리는 해방 이후 「불신시대」·「김약국의 딸들」·「토지」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다. 1955년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는 단편소설을 창작했다. 1960년대에는 「김약국의 딸들」, 「파시」 등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1969년부터 대하소설 「토지」 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 8월 전체를 탈고했다. 대표작인 「토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변천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고난을 그려내면서, 민족과 역사에 대한 총체적인 조망을 시도한 작품이다.
고려시대의 구호기관.
대비원 (大悲院)
고려시대의 구호기관.
도선(道詵)의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에 의해 지정되거나 건립된 사원.
비보사찰 (裨補寺刹)
도선(道詵)의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에 의해 지정되거나 건립된 사원.
백련사결사는 고려후기 천태종 승려인 요세가 개창된 결사를 가리키는 종교용어이다. 백련결사라고도 한다. 1198년 천태종에 크게 실망한 요세가 신앙결사에 뜻을 두고 영동산 장연사에서 수행하였다. 1216년 전라도 강진의 토호인 최표, 최홍, 이인천 등의 지원을 받아 강진 만덕산으로 주거를 옮겨 본격적으로 결사를 결행하였다. 점차 지방관과 최씨정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고 1232년에 보현도량을 개설하여 대몽항전을 표방하였다. 불교의 실천성을 강조함으로써 불교계의 세속화와 사회모순을 극복하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백련사결사 (白蓮寺結社)
백련사결사는 고려후기 천태종 승려인 요세가 개창된 결사를 가리키는 종교용어이다. 백련결사라고도 한다. 1198년 천태종에 크게 실망한 요세가 신앙결사에 뜻을 두고 영동산 장연사에서 수행하였다. 1216년 전라도 강진의 토호인 최표, 최홍, 이인천 등의 지원을 받아 강진 만덕산으로 주거를 옮겨 본격적으로 결사를 결행하였다. 점차 지방관과 최씨정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고 1232년에 보현도량을 개설하여 대몽항전을 표방하였다. 불교의 실천성을 강조함으로써 불교계의 세속화와 사회모순을 극복하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형평사는 1923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백정(白丁)들의 신분 해방을 위해 설립된 사회운동단체이다. 개항 이후 자유평등사상의 유입과 일본에서 조직된 수평사(水平社)의 영향으로 창립되었다. 창립 1년 만에 전국적으로 지사 12개, 분사 64개가 조직되었다. 1924년 본사를 서울로 이전하는 문제를 두고 대전을 중심으로 결성된 혁신동맹과 대립하였다. 1925년 서울에서 전조선형평대회를 개최하여 통합하였다. 다른 사회운동과의 제휴 문제와 조직 해소와 재결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면서 세력이 급격히 퇴조하였다.
형평사 (衡平社)
형평사는 1923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백정(白丁)들의 신분 해방을 위해 설립된 사회운동단체이다. 개항 이후 자유평등사상의 유입과 일본에서 조직된 수평사(水平社)의 영향으로 창립되었다. 창립 1년 만에 전국적으로 지사 12개, 분사 64개가 조직되었다. 1924년 본사를 서울로 이전하는 문제를 두고 대전을 중심으로 결성된 혁신동맹과 대립하였다. 1925년 서울에서 전조선형평대회를 개최하여 통합하였다. 다른 사회운동과의 제휴 문제와 조직 해소와 재결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면서 세력이 급격히 퇴조하였다.
이제마는 개항기 『동의수세보원』, 『격치고』 등을 저술한 의학자이다. 병법을 좋아하여 무인이 되기를 원하여 호를 동무라고 지었다. 1875년(고종 12) 나이 39세에 무과에 등용되어 다음 해에 무위별선 군관으로 입위되었다. 1886년(고종 23)에 진해현감겸병마절도사에 제수되어, 이듬해 2월 현감으로 부임하여 1889년 12월에 퇴임했다. 서울로 돌아와 1894년 『동의수세보원』 상하 2권을 저술하였다. 이제마는 태극설에 의한 태양·소양·태음·소음의 사상원리를 인체의 기질과 성격에 따라 사상인으로 구분하였으며, 의학 분야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제마 (李濟馬)
이제마는 개항기 『동의수세보원』, 『격치고』 등을 저술한 의학자이다. 병법을 좋아하여 무인이 되기를 원하여 호를 동무라고 지었다. 1875년(고종 12) 나이 39세에 무과에 등용되어 다음 해에 무위별선 군관으로 입위되었다. 1886년(고종 23)에 진해현감겸병마절도사에 제수되어, 이듬해 2월 현감으로 부임하여 1889년 12월에 퇴임했다. 서울로 돌아와 1894년 『동의수세보원』 상하 2권을 저술하였다. 이제마는 태극설에 의한 태양·소양·태음·소음의 사상원리를 인체의 기질과 성격에 따라 사상인으로 구분하였으며, 의학 분야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