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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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先人)은 삼국시대, 3세기부터 고구려에 있었던 관등이다. 선인이 설치된 기원은 3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7세기에도 총 13등급 관등제의 최하위 관등으로 등장한다. 말기에는 보통 관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이 처음 임용되면서 받는 관등이었다.
선인 (先人)
선인(先人)은 삼국시대, 3세기부터 고구려에 있었던 관등이다. 선인이 설치된 기원은 3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7세기에도 총 13등급 관등제의 최하위 관등으로 등장한다. 말기에는 보통 관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이 처음 임용되면서 받는 관등이었다.
인천광역시 남구 도화동에 있는 공립고등학교.
선인고등학교 (善仁高等學敎)
인천광역시 남구 도화동에 있는 공립고등학교.
뱃사공은 전문적으로 배를 부리는 사람이다. 한자로는 고공(篙工), 선부(船夫), 선인(船人), 초공(梢工) 등으로 적는다. 배의 크기나 성격에 따라 뱃사공의 숫자나 명칭이 다르다. 그래서 뱃사공은 선원 모두를 지칭하기보다는 배의 운항을 책임지는 선장(船長)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뱃사공 (뱃沙工)
뱃사공은 전문적으로 배를 부리는 사람이다. 한자로는 고공(篙工), 선부(船夫), 선인(船人), 초공(梢工) 등으로 적는다. 배의 크기나 성격에 따라 뱃사공의 숫자나 명칭이 다르다. 그래서 뱃사공은 선원 모두를 지칭하기보다는 배의 운항을 책임지는 선장(船長)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과절은 고구려 후기, 『한원(翰苑)』에 인용된 「고려기(高麗記)」에 12번째 관명(官名)으로 기록된 고구려의 관명이다. 명칭 외에 그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부절(不節), 또는 불과절(不過節) 같은 계열의 관명으로 파악되는데, 관직명이거나 중국의 유외품과 비슷한 성격으로 추정한다.
과절 (過節)
과절은 고구려 후기, 『한원(翰苑)』에 인용된 「고려기(高麗記)」에 12번째 관명(官名)으로 기록된 고구려의 관명이다. 명칭 외에 그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부절(不節), 또는 불과절(不過節) 같은 계열의 관명으로 파악되는데, 관직명이거나 중국의 유외품과 비슷한 성격으로 추정한다.
부여와 고구려시대의 부족장(部族長).
대가 (大加)
부여와 고구려시대의 부족장(部族長).
사자(使者)는 삼국시대에 대가(大加) 예하 실무 조직의 직명(職名)으로 사용되기도 한 고구려의 관등이다. 계루부가 다른 나부를 견제하고, 나부의 중심세력이 부 내의 다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설치하였다고 보는데, 구체적으로는 조세 수취를 담당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사자의 관명은 대사자와 사자로 분화되어 고구려 관등제의 한 축을 이루었다.
사자 (使者)
사자(使者)는 삼국시대에 대가(大加) 예하 실무 조직의 직명(職名)으로 사용되기도 한 고구려의 관등이다. 계루부가 다른 나부를 견제하고, 나부의 중심세력이 부 내의 다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설치하였다고 보는데, 구체적으로는 조세 수취를 담당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사자의 관명은 대사자와 사자로 분화되어 고구려 관등제의 한 축을 이루었다.
고구려시대 왕명출납(王命出納) 등의 행정업무를 맡은 관명.
대주부 (大主簿)
고구려시대 왕명출납(王命出納) 등의 행정업무를 맡은 관명.
삼국시대 고구려 연개소문의 장남으로 대막리지를 역임한 귀족.
연남생 (淵男生)
삼국시대 고구려 연개소문의 장남으로 대막리지를 역임한 귀족.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2가동에 형성된 컴퓨터 등의 전기·전자제품 전문의 대형 집단상가.
용산전자상가 (龍山電子商街)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2가동에 형성된 컴퓨터 등의 전기·전자제품 전문의 대형 집단상가.
일본군이 재만한인을 학살한 사건.
혼춘참변 (琿春慘變)
일본군이 재만한인을 학살한 사건.
용인 할미성 대동굿은 시월 상달에 경기도 용인의 석성산에서 마을 안녕과 평안을 위해 행하는 마을굿이다. 경기도 용인 석성산 주변 다섯 곳의 서낭을 통합하여 매년 시월상달에 연희된다. 70년대 말 영동고속도로 구축 및 미신 타파로 마을당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중단되었다가 1992년 복원되었다. 석성산 산신제를 시작으로 서낭신 모시기, 대동굿이 이어진다. 상산거리에서 추는 월도창검무는 이 굿에 특별함을 더해 준다. 전승자인 유성관 박수가 대동굿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 단합과 개인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굿으로 치유와 공유의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고 있다.
용인 할미성 대동굿 (龍仁 할미城 大同굿)
용인 할미성 대동굿은 시월 상달에 경기도 용인의 석성산에서 마을 안녕과 평안을 위해 행하는 마을굿이다. 경기도 용인 석성산 주변 다섯 곳의 서낭을 통합하여 매년 시월상달에 연희된다. 70년대 말 영동고속도로 구축 및 미신 타파로 마을당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중단되었다가 1992년 복원되었다. 석성산 산신제를 시작으로 서낭신 모시기, 대동굿이 이어진다. 상산거리에서 추는 월도창검무는 이 굿에 특별함을 더해 준다. 전승자인 유성관 박수가 대동굿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 단합과 개인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굿으로 치유와 공유의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고 있다.
백인엽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일본군 장교, 대한민국 제17연대장, 수도사단장 등을 지낸 군인이다. 일제강점기에 메이지대학과 일본 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군에서 장교로 근무하였다. 정부 수립 후 제17연대장, 수도사단장, 육군 제1훈련소장, 제1군단장, 육군 기획관리참모국장 등을 지낸 뒤 1960년 예편하였다. 전역 전인 1958년 선인학원을 설립하였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혁명재판에 회부되기도 하였다. 1993년 각종 부정과 비리 등으로 인해 학내 분규가 계속되자, 공립화를 조건으로 인천시에 선인학원을 기증하였다.
백인엽 (白仁燁)
백인엽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일본군 장교, 대한민국 제17연대장, 수도사단장 등을 지낸 군인이다. 일제강점기에 메이지대학과 일본 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군에서 장교로 근무하였다. 정부 수립 후 제17연대장, 수도사단장, 육군 제1훈련소장, 제1군단장, 육군 기획관리참모국장 등을 지낸 뒤 1960년 예편하였다. 전역 전인 1958년 선인학원을 설립하였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혁명재판에 회부되기도 하였다. 1993년 각종 부정과 비리 등으로 인해 학내 분규가 계속되자, 공립화를 조건으로 인천시에 선인학원을 기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