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성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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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서울 성균관대학교 내에 공자와 중국·우리나라 유학자를 모신 문묘이다. 1398년에 창건했다. 앞쪽에 대성전, 뒤쪽에 명륜당을 둔 전형적인 전묘후학의 배치 형식이다. 창건 당시 이곳은 96칸으로 사당 기능과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 역할을 했다. 1895년부터는 교육 기능을 상실한 채 문묘 기능만 유지하게 되었다. 광복 후에 다시 명륜전문학교로 개교하였고 이듬해 성균관대학으로 개명하였다. 1963년에 성균관대학교와 성균관이 분리되었다. 이곳은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건축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서울 문묘와 성균관 (서울 文廟와 成均館)
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서울 성균관대학교 내에 공자와 중국·우리나라 유학자를 모신 문묘이다. 1398년에 창건했다. 앞쪽에 대성전, 뒤쪽에 명륜당을 둔 전형적인 전묘후학의 배치 형식이다. 창건 당시 이곳은 96칸으로 사당 기능과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 역할을 했다. 1895년부터는 교육 기능을 상실한 채 문묘 기능만 유지하게 되었다. 광복 후에 다시 명륜전문학교로 개교하였고 이듬해 성균관대학으로 개명하였다. 1963년에 성균관대학교와 성균관이 분리되었다. 이곳은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건축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살림채·사당채로 구성된 주택.
명륜동 김종국가 (明倫洞 金鍾國家)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살림채·사당채로 구성된 주택.
국자감은 고려시대 성종이 관료로 선발할 인재를 교육하기 위하여 개경에 설치한 최고 교육기관이다. 문종은 국자감을 유학부와 기술학부로 구성된 종합대학으로 만들었다. 예종이 7재를 설치하면서 유학 교육이 활성화되었고 과거와 연동되어 우수한 학생은 과거 응시에 특혜를 받았다. 인종 대에 학식을 정하였으나 그대로 시행된 것은 아니었다. 유학대학인 성균관과 달리 인재 교육이 유학에 제한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었다.
국자감 (國子監)
국자감은 고려시대 성종이 관료로 선발할 인재를 교육하기 위하여 개경에 설치한 최고 교육기관이다. 문종은 국자감을 유학부와 기술학부로 구성된 종합대학으로 만들었다. 예종이 7재를 설치하면서 유학 교육이 활성화되었고 과거와 연동되어 우수한 학생은 과거 응시에 특혜를 받았다. 인종 대에 학식을 정하였으나 그대로 시행된 것은 아니었다. 유학대학인 성균관과 달리 인재 교육이 유학에 제한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었다.
조선시대 성균관·홍문관·승문원·교서관 등의 정7품 관직.
박사 (博士)
조선시대 성균관·홍문관·승문원·교서관 등의 정7품 관직.
대사성(大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정3품 당상관직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장(長)으로 정원은 1명이다. 성균관은 유학(儒學) 교육을 책임지던 기관이었던 만큼 대사성은 문과(文科) 출신이 임명되었다. 대사성은 유생(儒生)들을 지도하고, 성균관 내 행정 업무를 관리하였으며, 관시(館試) 운영에 참여하였다. 또한 문묘(文廟)에서 열리는 석전제(釋奠祭)를 준비하고 아헌관(亞獻官)으로 참여하였다.
대사성 (大司成)
대사성(大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정3품 당상관직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장(長)으로 정원은 1명이다. 성균관은 유학(儒學) 교육을 책임지던 기관이었던 만큼 대사성은 문과(文科) 출신이 임명되었다. 대사성은 유생(儒生)들을 지도하고, 성균관 내 행정 업무를 관리하였으며, 관시(館試) 운영에 참여하였다. 또한 문묘(文廟)에서 열리는 석전제(釋奠祭)를 준비하고 아헌관(亞獻官)으로 참여하였다.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과 사부학당(四部學堂, 四學이라고도 함)을 합쳐 부른 칭호.
관학 (館學)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과 사부학당(四部學堂, 四學이라고도 함)을 합쳐 부른 칭호.
관학유생응제는 조선시대,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 또는 일반 유생을 대상으로 실시된 제술 시험이다. 유생들에게 학문을 격려할 목적으로 실시하였으며, 전국의 일반 유생을 대상으로 급제자를 선발하는 과거시험처럼 확대 운영되기도 하였다. 과거시험으로 확대 운영된 응제는 이후 고종 대의 『문과방목』에 기로유생응제(耆老儒生應製)라는 이름으로 별시의 한 종류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관학유생응제 (館學儒生應製)
관학유생응제는 조선시대,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 또는 일반 유생을 대상으로 실시된 제술 시험이다. 유생들에게 학문을 격려할 목적으로 실시하였으며, 전국의 일반 유생을 대상으로 급제자를 선발하는 과거시험처럼 확대 운영되기도 하였다. 과거시험으로 확대 운영된 응제는 이후 고종 대의 『문과방목』에 기로유생응제(耆老儒生應製)라는 이름으로 별시의 한 종류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경서(經書)의 잘못된 곳을 바로잡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기구.
경서교정청 (經書校正廳)
조선 후기 경서(經書)의 잘못된 곳을 바로잡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기구.
김창숙은 조선 후기 『심산만초』, 『벽옹만초』, 『벽옹칠십삼년회상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1879년(고종 16)에 출생하여 1962년에 사망했다.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이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청참오적소」를 올려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오적을 성토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여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하였다. 광복 이후 정치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육영사업에 힘써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저서로는 『심산유고(心山遺稿)』가 있다.
김창숙 (金昌淑)
김창숙은 조선 후기 『심산만초』, 『벽옹만초』, 『벽옹칠십삼년회상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1879년(고종 16)에 출생하여 1962년에 사망했다.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이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청참오적소」를 올려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오적을 성토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여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하였다. 광복 이후 정치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육영사업에 힘써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저서로는 『심산유고(心山遺稿)』가 있다.
도기과는 조선시대에 성균관에 거재(居齋) 중인 유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시험이다. 왕명으로 출석부인 도기를 점검하고 그날의 도기에 이름을 올린 유생에게만 응시를 허용하였다. 왕명에 따라 수시로 시행하였지만 정조 대부터는 봄 · 가을에 정례화된 춘추도기도 별도로 시행하였다.
도기과 (到記科)
도기과는 조선시대에 성균관에 거재(居齋) 중인 유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시험이다. 왕명으로 출석부인 도기를 점검하고 그날의 도기에 이름을 올린 유생에게만 응시를 허용하였다. 왕명에 따라 수시로 시행하였지만 정조 대부터는 봄 · 가을에 정례화된 춘추도기도 별도로 시행하였다.
변희용은 일제강점기 청년운동 및 신간회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고 령출신. 게이오(慶應)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사상단체인 신인회, 효민회, 코스모구락부, 십월회, 북성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전진(前進)』의 편집 발행인이었다. 1927년 신간회 고령지회 지회장에 선임되었다.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했고. 1947년 잡지 [재건]의 주간이 되었다. 1960년 4월혁명 시 재경교수단 구국선언과 4․25교수 데모를 주도했다.
변희용 (卞熙瑢)
변희용은 일제강점기 청년운동 및 신간회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고 령출신. 게이오(慶應)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사상단체인 신인회, 효민회, 코스모구락부, 십월회, 북성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전진(前進)』의 편집 발행인이었다. 1927년 신간회 고령지회 지회장에 선임되었다.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했고. 1947년 잡지 [재건]의 주간이 되었다. 1960년 4월혁명 시 재경교수단 구국선언과 4․25교수 데모를 주도했다.
사학합제는 조선 후기에 사학(四學)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한 시험의 한 종류이다. 사학에서 매년 4차에 걸쳐 제술과 고강 시험을 시행하여 일정 수의 인원을 선발하고, 선발된 인원을 연말에 성균관 대사성이 다시 시험하여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였다. 최종 합격자에게는 식년시 생원 · 진사시 때 초시를 면제받고 바로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사학합제 (四學合製)
사학합제는 조선 후기에 사학(四學)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한 시험의 한 종류이다. 사학에서 매년 4차에 걸쳐 제술과 고강 시험을 시행하여 일정 수의 인원을 선발하고, 선발된 인원을 연말에 성균관 대사성이 다시 시험하여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였다. 최종 합격자에게는 식년시 생원 · 진사시 때 초시를 면제받고 바로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보우는 조선전기 봉은사 주지, 판선종사도대선사, 선종판사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509년(중종 4)에 태어나 1565년(명종 20)에 사망했다. 유학자들과도 깊이 사귀었고 재상 정만종과의 교유를 통해 문정대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선교일체론을 주창했고 일정성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선교양종을 부활시키고 도첩제와 승과를 다시 실시했다. 1565년 4월에 회암사 중창사업을 마치고 낙성식을 겸한 무차대회를 열었지만 문정왕후가 사망하자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제주목사 변협에 의하여 죽음을 당했다.
보우 (普雨)
보우는 조선전기 봉은사 주지, 판선종사도대선사, 선종판사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509년(중종 4)에 태어나 1565년(명종 20)에 사망했다. 유학자들과도 깊이 사귀었고 재상 정만종과의 교유를 통해 문정대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선교일체론을 주창했고 일정성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선교양종을 부활시키고 도첩제와 승과를 다시 실시했다. 1565년 4월에 회암사 중창사업을 마치고 낙성식을 겸한 무차대회를 열었지만 문정왕후가 사망하자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제주목사 변협에 의하여 죽음을 당했다.
고려·조선시대 국학생에게 보인 승급시험.
승보시 (陞補試)
고려·조선시대 국학생에게 보인 승급시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성균관의 별당.
비천당 (丕闡堂)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성균관의 별당.
조선시대 교육·문예를 담당하던 4개 관서.
사관 (四館)
조선시대 교육·문예를 담당하던 4개 관서.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의 생가.
심산 김창숙 생가 (心山 金昌淑 生家)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의 생가.
조선시대 성균관·향약·계·향회·향교·서원 등에서 처해지던 벌칙 중 한 종목.
손도 (損徒)
조선시대 성균관·향약·계·향회·향교·서원 등에서 처해지던 벌칙 중 한 종목.
조선시대 성균관 소속의 임원.
색장 (色掌)
조선시대 성균관 소속의 임원.
생원(生員)은 조선시대 소과인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이다. 고려 때 국자감 승보시 합격자를 생원이라고 하였으나, 조선시대에는 소과로서 생원진사시가 설행되었다. 생원시에 합격하면 생원이라는 칭호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들은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면서 대과인 문과를 준비하여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반드시 문과에 합격하지 않더라도 생원, 진사는 음직에 나갈 수도 있었다. 관직에 나가지 않더라도 지방 사회에서 엘리트 계층으로 존경받았다. 생원은 진사와 더불어 행교나 서원 운영에 관여하였으며, 지방 사회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생원 (生員)
생원(生員)은 조선시대 소과인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이다. 고려 때 국자감 승보시 합격자를 생원이라고 하였으나, 조선시대에는 소과로서 생원진사시가 설행되었다. 생원시에 합격하면 생원이라는 칭호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들은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면서 대과인 문과를 준비하여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반드시 문과에 합격하지 않더라도 생원, 진사는 음직에 나갈 수도 있었다. 관직에 나가지 않더라도 지방 사회에서 엘리트 계층으로 존경받았다. 생원은 진사와 더불어 행교나 서원 운영에 관여하였으며, 지방 사회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