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수리_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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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는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에 있는, 4세기에 백제에서 처음 축조한 이후 신라, 고려, 조선 태종 대 개축하여 수리에 활용한 저수지이다. 저수지로 파악하는 견해와 방조제로 간주하는 견해가 제출되어 있다. 현재 원래의 제방이 훼손되었지만 발굴 조사를 통해 제방 축조와 수문 구조, 도수로 등이 밝혀지고 있다. 벽골제는 오랜 기간 수리 시설로 활용되었고, 제방 축조와 수문 구조, 도수로 등 토목 기술의 역사적 특색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농업사 연구, 토목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벽골제 (碧骨堤)
벽골제는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에 있는, 4세기에 백제에서 처음 축조한 이후 신라, 고려, 조선 태종 대 개축하여 수리에 활용한 저수지이다. 저수지로 파악하는 견해와 방조제로 간주하는 견해가 제출되어 있다. 현재 원래의 제방이 훼손되었지만 발굴 조사를 통해 제방 축조와 수문 구조, 도수로 등이 밝혀지고 있다. 벽골제는 오랜 기간 수리 시설로 활용되었고, 제방 축조와 수문 구조, 도수로 등 토목 기술의 역사적 특색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농업사 연구, 토목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보는 하천이나 개울 등의 흐르는 물을 둑을 쌓아 막고 도랑을 이용해 유도하여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수리 시설이다. 일정한 높낮이가 있는 지역에서 주변의 하천이나 개울 등의 흐르는 물을 끌어들여 관개하는 방식이다. 보를 이용한 관개는 저수지와 함께 전통사회의 대종을 이루었는데, 저수지처럼 물을 저장하기 위해 많은 양질의 토지를 매몰시키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조선 후기 이앙법이 보급되면서 보의 축조와 이용도 크게 확대되었다.
보 (洑)
보는 하천이나 개울 등의 흐르는 물을 둑을 쌓아 막고 도랑을 이용해 유도하여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수리 시설이다. 일정한 높낮이가 있는 지역에서 주변의 하천이나 개울 등의 흐르는 물을 끌어들여 관개하는 방식이다. 보를 이용한 관개는 저수지와 함께 전통사회의 대종을 이루었는데, 저수지처럼 물을 저장하기 위해 많은 양질의 토지를 매몰시키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조선 후기 이앙법이 보급되면서 보의 축조와 이용도 크게 확대되었다.
공검지는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에 있던 고대 저수지이다. 공검지는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등과 함께 삼한시대 유적으로 알려졌다. 문헌 기록으로는 고려 때인 1195년(명종 25) 상주의 사록이었던 최정분이 옛터를 따라 제방을 그대로 수축하였다는 내용이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전한다. 1959년 상류에 오태저수지를 건설하면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옛터에는 연못 조성과 함께 상주공검지역사관이 2012년에 건립되었다.
공검지 (恭儉池)
공검지는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에 있던 고대 저수지이다. 공검지는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등과 함께 삼한시대 유적으로 알려졌다. 문헌 기록으로는 고려 때인 1195년(명종 25) 상주의 사록이었던 최정분이 옛터를 따라 제방을 그대로 수축하였다는 내용이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전한다. 1959년 상류에 오태저수지를 건설하면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옛터에는 연못 조성과 함께 상주공검지역사관이 2012년에 건립되었다.
관개는 농사에서 재배하는 작물의 성장을 도와주기 위해 농경지의 자연적 물 순환을 인위적으로 보완하거나 조절하는 행위이다. 관개는 농사의 방식에 따라 구분된다. 즉, 농경지의 토양과 재배작물의 특성 차이에 따라 각각 다른 관개 방식이 필요하다. 벼를 재배하는 논농사에서는 인위적인 관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밭농사에서는 논농사에 비해 인공 관개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 그래서 벼를 재배하는 논농사와 관련되며, 논농사에 필요한 수리 시설의 축조 및 운영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유사한 개념으로 수리, 농업수리, 수리 관개 등이 사용된다.
관개 (灌漑)
관개는 농사에서 재배하는 작물의 성장을 도와주기 위해 농경지의 자연적 물 순환을 인위적으로 보완하거나 조절하는 행위이다. 관개는 농사의 방식에 따라 구분된다. 즉, 농경지의 토양과 재배작물의 특성 차이에 따라 각각 다른 관개 방식이 필요하다. 벼를 재배하는 논농사에서는 인위적인 관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밭농사에서는 논농사에 비해 인공 관개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 그래서 벼를 재배하는 논농사와 관련되며, 논농사에 필요한 수리 시설의 축조 및 운영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유사한 개념으로 수리, 농업수리, 수리 관개 등이 사용된다.
의림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고대 저수지이다. 산곡형 저수지로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삼한시대 축조설, 우륵 축조설, 정인지 축조설 등이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지질학적 학술 조사의 결과로는 AD 800~900년인 삼국시대 말기~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본다. 고대 수리 시설 중에서 오늘날까지 폐기된 적 없이 사용되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수리 시설만이 아니라 노송과 누정 그리고 호수가 어우러진 경관이 뛰어나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의림지 (義林池)
의림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고대 저수지이다. 산곡형 저수지로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삼한시대 축조설, 우륵 축조설, 정인지 축조설 등이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지질학적 학술 조사의 결과로는 AD 800~900년인 삼국시대 말기~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본다. 고대 수리 시설 중에서 오늘날까지 폐기된 적 없이 사용되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수리 시설만이 아니라 노송과 누정 그리고 호수가 어우러진 경관이 뛰어나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경양지는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에 있던 조선 전기에 축조한 수리 시설이다. 경양지 둑에 나무가 우거져 지역민들이 노닐며 구경하는 곳이 되어 여러 시문이 전하며 명칭도 10여 개 이상이 있다. 둘레는 5,560자이었다. 1937년 15만 515㎡가 매립되었고, 1968년 나머지도 매립되어 택지가 조성되었다. 조선시대 광주목 42개 제언 가운데 가장 큰 수리 시설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경양지 (景陽池)
경양지는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에 있던 조선 전기에 축조한 수리 시설이다. 경양지 둑에 나무가 우거져 지역민들이 노닐며 구경하는 곳이 되어 여러 시문이 전하며 명칭도 10여 개 이상이 있다. 둘레는 5,560자이었다. 1937년 15만 515㎡가 매립되었고, 1968년 나머지도 매립되어 택지가 조성되었다. 조선시대 광주목 42개 제언 가운데 가장 큰 수리 시설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저수지는 빗물이나 흐르는 물 등을 둑을 쌓아 가두어 두었다가 필요한 시기에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인공 수리 시설이다. 제(堤), 지(池), 제언(堤堰), 택(澤)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데, 순우리말은 ‘못’이다. 수원은 샘처럼 솟는 물, 흐르는 작은 개울, 큰 하천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기후상 건기와 우기가 구분되는 지역에 유용한데, 강우량이 많은 여름철에 주로 취수하여 저장하고, 가뭄이 심한 봄철 모내기 때나 농사철에 배수하여 관개용으로 사용한다. 오늘날은 홍수 조절용, 식수용, 공업용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기도 한다.
저수지 (貯水池)
저수지는 빗물이나 흐르는 물 등을 둑을 쌓아 가두어 두었다가 필요한 시기에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인공 수리 시설이다. 제(堤), 지(池), 제언(堤堰), 택(澤)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데, 순우리말은 ‘못’이다. 수원은 샘처럼 솟는 물, 흐르는 작은 개울, 큰 하천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기후상 건기와 우기가 구분되는 지역에 유용한데, 강우량이 많은 여름철에 주로 취수하여 저장하고, 가뭄이 심한 봄철 모내기 때나 농사철에 배수하여 관개용으로 사용한다. 오늘날은 홍수 조절용, 식수용, 공업용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기도 한다.
울산 약사동 제방은 울산광역시 중구 약사동에 있는 6~7세기경 조영된 수리시설이다. 저수를 목적으로 조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수리시설이다. 이 유적은 고대 제방의 축조 공정을 보여줄 뿐 아니라, 나뭇가지와 풀이 부식된 데에 흙을 부어 만든 부엽 공법 등 고대 토목 기술을 파악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유적이다.
울산 약사동 제방 (蔚山 藥泗洞 堤防)
울산 약사동 제방은 울산광역시 중구 약사동에 있는 6~7세기경 조영된 수리시설이다. 저수를 목적으로 조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수리시설이다. 이 유적은 고대 제방의 축조 공정을 보여줄 뿐 아니라, 나뭇가지와 풀이 부식된 데에 흙을 부어 만든 부엽 공법 등 고대 토목 기술을 파악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