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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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9대 임금 숙종(肅宗)이 1700년경에 칠언율시를 짓고 쓴 필적.
숙종 어필 칠언시 (肅宗 御筆 七言詩)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肅宗)이 1700년경에 칠언율시를 짓고 쓴 필적.
명릉(明陵)은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여흥민씨의 합장릉 및 제2계비 인원왕후 경주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릉, 인원왕후는 뒷편 동원이강으로 조성되어 있다. 명릉은 정종 후릉의 체제를 따라 왕릉 석문 간소화의 표본이 된 곳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고양 서오릉’에 자리한다.
명릉 (明陵)
명릉(明陵)은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여흥민씨의 합장릉 및 제2계비 인원왕후 경주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릉, 인원왕후는 뒷편 동원이강으로 조성되어 있다. 명릉은 정종 후릉의 체제를 따라 왕릉 석문 간소화의 표본이 된 곳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고양 서오릉’에 자리한다.
고려전기 제15대 숙종의 왕비.
명의왕태후 (明懿王太后)
고려전기 제15대 숙종의 왕비.
조선후기 여항육인의 한 사람으로 은거한정을 노래한 음악인.
김삼현 (金三賢)
조선후기 여항육인의 한 사람으로 은거한정을 노래한 음악인.
고려전기 제15대 숙종의 아들인 왕자.
대방공 (帶方公)
고려전기 제15대 숙종의 아들인 왕자.
고려전기 제15대 숙종의 다섯째 아들인 왕자.
대원공 (大原公)
고려전기 제15대 숙종의 다섯째 아들인 왕자.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필명 (朴弼明)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경종은 조선 제20대 임금이다. 재위 기간은 1720~1724년이다. 숙종과 희빈장씨 사이에서 태어나서 곧 원자로 정해졌고, 3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왕비는 심호의 딸 단의왕후(端懿王后)이고, 계비는 어유구의 딸 선의왕후(宣懿王后)이다. 30년 동안 왕세자로 국왕 수업을 받았고, 무리 없이 대리청정을 수행하였다. 왕위에 올라서 4년의 재위 기간 동안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세제의 대리청정 문제 등으로 소론과 노론 사이에 격심한 정쟁이 있었지만, 부왕인 숙종의 뜻을 지키고 백성을 위한 정사를 펼치려 애쎴다.
경종 (景宗)
경종은 조선 제20대 임금이다. 재위 기간은 1720~1724년이다. 숙종과 희빈장씨 사이에서 태어나서 곧 원자로 정해졌고, 3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왕비는 심호의 딸 단의왕후(端懿王后)이고, 계비는 어유구의 딸 선의왕후(宣懿王后)이다. 30년 동안 왕세자로 국왕 수업을 받았고, 무리 없이 대리청정을 수행하였다. 왕위에 올라서 4년의 재위 기간 동안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세제의 대리청정 문제 등으로 소론과 노론 사이에 격심한 정쟁이 있었지만, 부왕인 숙종의 뜻을 지키고 백성을 위한 정사를 펼치려 애쎴다.
금정산성은 부산 금정구 금정산 정상부에 있는 조선 시대 돌로 쌓은 성곽이다. 동래산성이라고도 한다. 성벽은 18,845m, 성벽 둘레는 9,011보, 높이가 15척이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남북 4곳의 성문과 물이 흘러나가는 수구문, 누가 없이 만들어진 암문 등이 있다. 1667년(현종 8)에 보수를 건의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축성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수축과 개축이 이루어졌다. 금정산성은 조선 시대 국방사 연구와 해안 관방체계 연구에 중요한 산성이다.
금정산성 (金井山城)
금정산성은 부산 금정구 금정산 정상부에 있는 조선 시대 돌로 쌓은 성곽이다. 동래산성이라고도 한다. 성벽은 18,845m, 성벽 둘레는 9,011보, 높이가 15척이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남북 4곳의 성문과 물이 흘러나가는 수구문, 누가 없이 만들어진 암문 등이 있다. 1667년(현종 8)에 보수를 건의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축성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수축과 개축이 이루어졌다. 금정산성은 조선 시대 국방사 연구와 해안 관방체계 연구에 중요한 산성이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온천.
수안보온천 (水安堡溫泉)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온천.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송악산(松嶽山)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사찰.
송악산 복령사 (松嶽山 福靈寺)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송악산(松嶽山)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사찰.
조선후기 황해도병마사, 부총관, 통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신익하 (申翊夏)
조선후기 황해도병마사, 부총관, 통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영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선적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15대 숙종의 능이다. 1105년(숙종 10) 10월 기축일에 승하하여 송림현에 장례를 지냈다. 근래 발견된 바에 의하면 능구역은 남북 길이 29m, 동서 너비 13m, 3단으로 구획되어 있다. 1단에는 봉분과 2기의 석수 및 곡장을 둘렀고, 2단과 3단에는 문인석 1쌍씩 동서 6m를 사이에 두고 대칭으로 마주 서 있다. 1단의 무덤칸은 화강암 통돌로 남북 길이 3m, 동서 너비 1.2m,높이 1.6m이며 금박을 입힌 목관 조각 등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다.
영릉 (英陵)
영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선적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15대 숙종의 능이다. 1105년(숙종 10) 10월 기축일에 승하하여 송림현에 장례를 지냈다. 근래 발견된 바에 의하면 능구역은 남북 길이 29m, 동서 너비 13m, 3단으로 구획되어 있다. 1단에는 봉분과 2기의 석수 및 곡장을 둘렀고, 2단과 3단에는 문인석 1쌍씩 동서 6m를 사이에 두고 대칭으로 마주 서 있다. 1단의 무덤칸은 화강암 통돌로 남북 길이 3m, 동서 너비 1.2m,높이 1.6m이며 금박을 입힌 목관 조각 등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다.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지은 교훈서인 『어제상훈』을 풀이하여 1745년에 간행한 어제(御製). 언해서·교훈서.
어제상훈언해 (御製常訓諺解)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지은 교훈서인 『어제상훈』을 풀이하여 1745년에 간행한 어제(御製). 언해서·교훈서.
이식은 조선 후기 정언, 지평, 수찬, 부교리,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주로 숙종 대에 남인 계열 대간으로서 남인을 옹호하고 송시열 등 서인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활약하였다. 형벌의 남용, 군정의 문란함, 탐관오리들의 활동 등을 경계하는 등 그 능력을 인정받아 갑술환국 이후 소론 중심의 정국에서도 계속 기용되었다.
이식 (李湜)
이식은 조선 후기 정언, 지평, 수찬, 부교리,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주로 숙종 대에 남인 계열 대간으로서 남인을 옹호하고 송시열 등 서인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활약하였다. 형벌의 남용, 군정의 문란함, 탐관오리들의 활동 등을 경계하는 등 그 능력을 인정받아 갑술환국 이후 소론 중심의 정국에서도 계속 기용되었다.
조선 후기에, 사옹원과 종부시의 제조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양군에 봉해진 종실.
이환 (李桓)
조선 후기에, 사옹원과 종부시의 제조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양군에 봉해진 종실.
조선후기 「군원유희도」를 그린 화가. 선비화가.
정유승 (鄭維升)
조선후기 「군원유희도」를 그린 화가. 선비화가.
은병은 고려 전기 숙종 대에 표인(標印)하여 유통한 법정 은화이다. 숙종이 1097년(숙종 2)에 주전관을 설치하며 동전의 주조와 유통을 시작하였고, 1101년(숙종 6)에는 기존에 칭량 화폐의 역할을 하던 은(銀)을 제도권으로 편입하여 은병에 표인하여 유통하기 시작했다. 이후 원 간섭기 원의 지폐 보초(寶鈔)가 유입되며 은이 대량 유출되자 1331년(충혜왕 1)에는 은병의 유통을 금지하고 새로이 소은병을 제작하여 유통하는 제도 변화를 시도하였다. 고려시대 주조된 금속 화폐 중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유통되었으며 고액권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은병 (銀甁)
은병은 고려 전기 숙종 대에 표인(標印)하여 유통한 법정 은화이다. 숙종이 1097년(숙종 2)에 주전관을 설치하며 동전의 주조와 유통을 시작하였고, 1101년(숙종 6)에는 기존에 칭량 화폐의 역할을 하던 은(銀)을 제도권으로 편입하여 은병에 표인하여 유통하기 시작했다. 이후 원 간섭기 원의 지폐 보초(寶鈔)가 유입되며 은이 대량 유출되자 1331년(충혜왕 1)에는 은병의 유통을 금지하고 새로이 소은병을 제작하여 유통하는 제도 변화를 시도하였다. 고려시대 주조된 금속 화폐 중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유통되었으며 고액권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익릉(翼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 서오릉에 있는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단릉이다. 숭릉의 전례를 따라, 8칸 정자각과 재실의 공간 구성이 이루어져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의 특징을 갖는다. 창릉 · 경릉 · 명릉 · 홍릉과 함께 하나의 능역을 이루어 고양 서오릉으로 불리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익릉 (翼陵)
익릉(翼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 서오릉에 있는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단릉이다. 숭릉의 전례를 따라, 8칸 정자각과 재실의 공간 구성이 이루어져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의 특징을 갖는다. 창릉 · 경릉 · 명릉 · 홍릉과 함께 하나의 능역을 이루어 고양 서오릉으로 불리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정은 조선 후기 역모죄로 사사된 왕족·종실이다. 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아들로, 복창군에 봉해져 동생 복선군, 복평군과 함께 ‘3복’이라 불렸다. 왕실 및 외교 관련 업무를 맡아 활약하였으나, 평소 행실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남인과 깊게 연결되어 숙종의 왕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결국 ‘홍수의 변’으로 정치적 갈등의 한복판에 섰으며, 경신환국 당시 역모죄로 사사당하였다.
이정 (李楨)
이정은 조선 후기 역모죄로 사사된 왕족·종실이다. 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아들로, 복창군에 봉해져 동생 복선군, 복평군과 함께 ‘3복’이라 불렸다. 왕실 및 외교 관련 업무를 맡아 활약하였으나, 평소 행실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남인과 깊게 연결되어 숙종의 왕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결국 ‘홍수의 변’으로 정치적 갈등의 한복판에 섰으며, 경신환국 당시 역모죄로 사사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