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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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동국대학교 총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대 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언론인, 역사학자.
이선근 (李瑄根)
해방 이후 동국대학교 총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대 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언론인, 역사학자.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원세훈 (元世勳)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권지는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로서 성균관·승문원·훈련원에 분관(分管)되어 임용 대기 중인 견습 관원이다. 을과(乙科)·병과(丙科) 등수의 급제자들 중 급제 전 관직이 없었던 이들이 권지로 임명된 후 해당 부서에서의 권지 근무 기간에 따라 실직(實職)에 임용되었다.
권지 (權知)
권지는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로서 성균관·승문원·훈련원에 분관(分管)되어 임용 대기 중인 견습 관원이다. 을과(乙科)·병과(丙科) 등수의 급제자들 중 급제 전 관직이 없었던 이들이 권지로 임명된 후 해당 부서에서의 권지 근무 기간에 따라 실직(實職)에 임용되었다.
김종림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교육위원,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집행위원, 북미지방동지회 대표회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86년(고종 23)에 태어나 1973년에 사망했다.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로 이민하여 ‘쌀의 대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업가로 크게 성공하였다. 임시정부의 비행기대 편성 방침에 호응하여 자신의 농장에 비행훈련장을 건설하고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을 후원하고 선전할 목적으로 한인공동회를 설립하였다. 나성(LA)한인공동회, 대한인국국민회,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등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김종림 (金鐘林)
김종림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교육위원,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집행위원, 북미지방동지회 대표회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86년(고종 23)에 태어나 1973년에 사망했다.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로 이민하여 ‘쌀의 대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업가로 크게 성공하였다. 임시정부의 비행기대 편성 방침에 호응하여 자신의 농장에 비행훈련장을 건설하고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을 후원하고 선전할 목적으로 한인공동회를 설립하였다. 나성(LA)한인공동회, 대한인국국민회,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등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흑색공포단, 상해해방연맹, 중한청년연합회 등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정화암 (鄭華巖)
일제강점기 때, 흑색공포단, 상해해방연맹, 중한청년연합회 등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전북일보는 전북일보사에서 《전북신보》라는 제호로 1904년에 창간한 신문으로 일간신문이다. 전북일보의 근원은 1904년 창간된 한일어 혼용 주간지인 《전북신보》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1912년 출발한 《전북일일신문》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광복을 전후해 여러 차례 명칭 변화를 거친 후 1950년 다시 《전북일보》로 제호를 바꾸었다. 1973년 《전북매일신문》·《호남일보》와 통합하여 《전북신문》으로 발족했다. 1983년 6월 1일 창간 10주년을 맞이하여 제호를 《전북일보》로 바꾸고 발간을 지속하고 있다.
전북일보 (全北日報)
전북일보는 전북일보사에서 《전북신보》라는 제호로 1904년에 창간한 신문으로 일간신문이다. 전북일보의 근원은 1904년 창간된 한일어 혼용 주간지인 《전북신보》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1912년 출발한 《전북일일신문》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광복을 전후해 여러 차례 명칭 변화를 거친 후 1950년 다시 《전북일보》로 제호를 바꾸었다. 1973년 《전북매일신문》·《호남일보》와 통합하여 《전북신문》으로 발족했다. 1983년 6월 1일 창간 10주년을 맞이하여 제호를 《전북일보》로 바꾸고 발간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중앙상임위원회 기관지로 1945년에 창간한 신문. 재일조선인신문.
조선신보 (朝鮮新報)
일본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중앙상임위원회 기관지로 1945년에 창간한 신문. 재일조선인신문.
『전자신문』은 1982년에, 전자신문사에서 전자 정보 산업 진흥과 정보 사회 구현을 표방하며 창간한 일간 신문이다. 미래 정보화를 예측하여 전자 및 정보통신산업 관련 정보를 신속히 보도하여 우리나라의 정보화를 확산하는 것을 발행목적으로 하고 있다. 초기에는 ‘전자시보’라는 이름으로 주간지로 시작해, 1991년 일간지로 전환했다. 경제과학·정보통신·컴퓨터 등으로 분야를 세분화하고 기사의 전문성을 강화하여 독자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기사 작성부터 제작까지 컴퓨터로 이루어지는 첨단CTS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1995년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자신문 (電子新聞)
『전자신문』은 1982년에, 전자신문사에서 전자 정보 산업 진흥과 정보 사회 구현을 표방하며 창간한 일간 신문이다. 미래 정보화를 예측하여 전자 및 정보통신산업 관련 정보를 신속히 보도하여 우리나라의 정보화를 확산하는 것을 발행목적으로 하고 있다. 초기에는 ‘전자시보’라는 이름으로 주간지로 시작해, 1991년 일간지로 전환했다. 경제과학·정보통신·컴퓨터 등으로 분야를 세분화하고 기사의 전문성을 강화하여 독자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기사 작성부터 제작까지 컴퓨터로 이루어지는 첨단CTS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1995년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중일보사에서 주한중국인을 대상으로 1953년에 창간한 신문. 중국어일간신문.
한중일보 (韓中日報)
한중일보사에서 주한중국인을 대상으로 1953년에 창간한 신문. 중국어일간신문.
조선예수교장로회에서 『종교시보』를 개제하여 1936년에 창간한 신문. 개신교신문.
기독교보 (基督敎報)
조선예수교장로회에서 『종교시보』를 개제하여 1936년에 창간한 신문. 개신교신문.
변희용은 일제강점기 청년운동 및 신간회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고 령출신. 게이오(慶應)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사상단체인 신인회, 효민회, 코스모구락부, 십월회, 북성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전진(前進)』의 편집 발행인이었다. 1927년 신간회 고령지회 지회장에 선임되었다.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했고. 1947년 잡지 [재건]의 주간이 되었다. 1960년 4월혁명 시 재경교수단 구국선언과 4․25교수 데모를 주도했다.
변희용 (卞熙瑢)
변희용은 일제강점기 청년운동 및 신간회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고 령출신. 게이오(慶應)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사상단체인 신인회, 효민회, 코스모구락부, 십월회, 북성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전진(前進)』의 편집 발행인이었다. 1927년 신간회 고령지회 지회장에 선임되었다.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했고. 1947년 잡지 [재건]의 주간이 되었다. 1960년 4월혁명 시 재경교수단 구국선언과 4․25교수 데모를 주도했다.
김익진(金益鎭)은 해방 이후 순심중학교 교장, 성의중학교 교감, 근화여자중학교 교감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문필가이다. 한국가톨릭교회에서 1950~1970년대에 활동했던 대표적 평신도이자 교육자, 문필가로서 가톨릭신앙의 토착화를 추진한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인정된다.
김익진 (金益鎭)
김익진(金益鎭)은 해방 이후 순심중학교 교장, 성의중학교 교감, 근화여자중학교 교감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문필가이다. 한국가톨릭교회에서 1950~1970년대에 활동했던 대표적 평신도이자 교육자, 문필가로서 가톨릭신앙의 토착화를 추진한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인정된다.
행루는 조선시대의 이동식 물시계이다. 조선시대 세종 대에 행루가 처음 제작되어 양계의 군영에 설치되었고, 이 기기를 통해 흐린 날에도 시각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나라의 제사에서 시보(時報)하는 용도로 행루가 활용되었다. 행루는 파수호(播水壺)와 수수호(受水壺)가 각각 하나씩 있고, 6시간마다 물을 교체하였다.
행루 (行漏)
행루는 조선시대의 이동식 물시계이다. 조선시대 세종 대에 행루가 처음 제작되어 양계의 군영에 설치되었고, 이 기기를 통해 흐린 날에도 시각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나라의 제사에서 시보(時報)하는 용도로 행루가 활용되었다. 행루는 파수호(播水壺)와 수수호(受水壺)가 각각 하나씩 있고, 6시간마다 물을 교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