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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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부인전」은 1923년에 박종화가 발표한 「목 매이는 여자」를 표지 및 판권만 바꿔, 1930년에 회동서관에서 고전소설 형태로 간행한 작품이다. 내용은 「목 매이는 여자」와 동일하다. 당시 신숙주 부인 일화를 사실로 인지하게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텍스트다.
신숙주부인전 (申叔舟夫人傳)
「신숙주부인전」은 1923년에 박종화가 발표한 「목 매이는 여자」를 표지 및 판권만 바꿔, 1930년에 회동서관에서 고전소설 형태로 간행한 작품이다. 내용은 「목 매이는 여자」와 동일하다. 당시 신숙주 부인 일화를 사실로 인지하게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텍스트다.
조선 초기의 문신 신숙주(申叔周)를 그린 초상화.
신숙주 초상 (申叔舟 肖像)
조선 초기의 문신 신숙주(申叔周)를 그린 초상화.
조선 전기에, 예문관제학, 의정부우참찬,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강맹경 (姜孟卿)
조선 전기에, 예문관제학, 의정부우참찬,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병조좌랑, 형조좌랑,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박처륜 (朴處綸)
조선 전기에, 병조좌랑, 형조좌랑,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 있는 개항기 신숙주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
청주 묵정영당 (淸州 墨井影堂)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 있는 개항기 신숙주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
경기도 의정부시 부용산(芙蓉山)에 있는 조선전기 혜암이 창건한 암자.
부용산 미륵암 (芙蓉山 彌勒庵)
경기도 의정부시 부용산(芙蓉山)에 있는 조선전기 혜암이 창건한 암자.
1469년(예종 1) 4월 민수(閔粹)의 사초(史草) 개서(改書)로 인해 일어난 사건.
민수사옥 (閔粹史獄)
1469년(예종 1) 4월 민수(閔粹)의 사초(史草) 개서(改書)로 인해 일어난 사건.
승정원에서 세조와 신하들이 주고 받은 시를 수록하여 1457년에 간행한 시문선집. 어제.
사후어제시 (射侯御製詩)
승정원에서 세조와 신하들이 주고 받은 시를 수록하여 1457년에 간행한 시문선집. 어제.
1886년(고종 23) 이건창(李建昌)이 지은 한시.
고령탄 (高靈歎)
1886년(고종 23) 이건창(李建昌)이 지은 한시.
조선 중기에, 홍문관검열, 대사간, 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신설 (申渫)
조선 중기에, 홍문관검열, 대사간, 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충청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신식 (申湜)
조선 후기에, 충청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부여현령, 원주통판, 군자감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신여주 (申汝柱)
조선 전기에, 부여현령, 원주통판, 군자감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예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신용개 (申用漑)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예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신장은 조선 태종~세종 대의 문신이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급제하고, 세종 대 창설된 중요한 학문 기관인 집현전의 첫 부제학을 역임하였으며, 명필로도 널리 알려졌다. 세조~성종 대 중요한 대신인 신숙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신장 (申檣)
신장은 조선 태종~세종 대의 문신이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급제하고, 세종 대 창설된 중요한 학문 기관인 집현전의 첫 부제학을 역임하였으며, 명필로도 널리 알려졌다. 세조~성종 대 중요한 대신인 신숙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조선 전기에, 병조참지, 병조참의,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신정 (申瀞)
조선 전기에, 병조참지, 병조참의,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이조참판, 우참찬,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신준 (申浚)
조선 전기에, 이조참판, 우참찬,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안평대군은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왕자이자 서예가이다. 1418년(세종 즉위)에 태어나 1453년(단종 1)에 사망했다. 시문·서·화에 모두 능해 삼절이라 불렸으며 당대 제일의 서예가로 유명하다. 도성의 북문 밖에 무이정사를 짓고 많은 책과 서화 명적들을 수장하여 시회를 열고 서화가를 후원하는 등 당대 서화계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황보인·김종서 등 문신들과 제휴, 수양대군측 무신 세력과 맞서 조정의 배후 실력자로 등장했으나 1453년 계유정난으로 대신들이 살해된 뒤 강화도로 귀양 갔다가 교동으로 옮겨져 사사되었다.
안평대군 (安平大君)
안평대군은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왕자이자 서예가이다. 1418년(세종 즉위)에 태어나 1453년(단종 1)에 사망했다. 시문·서·화에 모두 능해 삼절이라 불렸으며 당대 제일의 서예가로 유명하다. 도성의 북문 밖에 무이정사를 짓고 많은 책과 서화 명적들을 수장하여 시회를 열고 서화가를 후원하는 등 당대 서화계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황보인·김종서 등 문신들과 제휴, 수양대군측 무신 세력과 맞서 조정의 배후 실력자로 등장했으나 1453년 계유정난으로 대신들이 살해된 뒤 강화도로 귀양 갔다가 교동으로 옮겨져 사사되었다.
조선 전기에, 선전관, 장흥고주부,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한 문신.
신한 (申瀚)
조선 전기에, 선전관, 장흥고주부,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오위도총부도총관, 자의대부, 통헌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신항 (申沆)
조선 전기에, 오위도총부도총관, 자의대부, 통헌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의금부도사, 사옹원직장, 군기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신경락 (申景洛)
조선 중기에, 의금부도사, 사옹원직장, 군기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