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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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삼일신보 주필로 활동하였으며, 조선어학회에 참여하여 사전편찬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김양수 (金良洙)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삼일신보 주필로 활동하였으며, 조선어학회에 참여하여 사전편찬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정치인·독립운동가.
태평양문제연구회는 1925년 11월 동아시아 ‧ 태평양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결성된 민족주의 계열의 정치단체이다. 1925년에 개최된 제1차 태평양회의에 참석하고 국내에 돌아온 신흥우, 유억겸, 송진우 등은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를 설립하여 정치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1925년 11월 28일 서울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창립모임이 열렸다.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는 중앙기독교청년회 및 『동아일보』 ‧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국내 민족주의 세력이 중심이 되었다. 또한, 이승만과 연결된 비밀조직인 흥업구락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태평양문제연구회 (太平洋問題硏究會)
태평양문제연구회는 1925년 11월 동아시아 ‧ 태평양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결성된 민족주의 계열의 정치단체이다. 1925년에 개최된 제1차 태평양회의에 참석하고 국내에 돌아온 신흥우, 유억겸, 송진우 등은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를 설립하여 정치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1925년 11월 28일 서울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창립모임이 열렸다.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는 중앙기독교청년회 및 『동아일보』 ‧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국내 민족주의 세력이 중심이 되었다. 또한, 이승만과 연결된 비밀조직인 흥업구락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흥업구락부는 1925년 3월 이승만의 독립혁명동지회와 연계되어 서울에서 조직된 비밀 독립운동단체이다. 서울 신흥우의 집에서 비밀리에 흥업구락부가 조직되었으며, 창립회원 대부분은 YMCA와 밀접하게 연관을 가진 민족주의 계열의 인물이었다. 이들은 실력양성운동을 수행하였으며, 사회주의 계열과 함께 민족연합전선인 신간회를 결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관련자 54명이 체포되었다. 1938년 9월 일제는 ‘흥업구락부 사건’ 관련자에게 ‘전향 성명서’를 받은 후, 이들을 기소유예 처분으로 석방하였다.
흥업구락부 (興業俱樂部)
흥업구락부는 1925년 3월 이승만의 독립혁명동지회와 연계되어 서울에서 조직된 비밀 독립운동단체이다. 서울 신흥우의 집에서 비밀리에 흥업구락부가 조직되었으며, 창립회원 대부분은 YMCA와 밀접하게 연관을 가진 민족주의 계열의 인물이었다. 이들은 실력양성운동을 수행하였으며, 사회주의 계열과 함께 민족연합전선인 신간회를 결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관련자 54명이 체포되었다. 1938년 9월 일제는 ‘흥업구락부 사건’ 관련자에게 ‘전향 성명서’를 받은 후, 이들을 기소유예 처분으로 석방하였다.
1926년 2월 중앙YMCA회관에서 기독교 사회적 표준 마련과 한국적 기독교 수립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독교 연구단체.
기독교연구회 (基督敎硏究會)
1926년 2월 중앙YMCA회관에서 기독교 사회적 표준 마련과 한국적 기독교 수립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독교 연구단체.
적극신앙단은 1932년 6월 신흥우를 비롯한 기독교계 인물들이 ‘적극신앙’에 동의하여 설립한 단체이다. 피안적·관념적인 천국주의를 비판하고, 기독교 개혁, 민족의식 고취, 독립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새로운 생활 신앙 선언과 21개조 실천 강령을 구상하고, 선교사들과 목사들에게 개혁구상을 밝히며 협조를 요청하였다. 참여 인물들은 기호지역 출신 감리교와 장로교인들로 3·1운동 이후 YMCA, 신간회 등 여러 민족·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35년 신흥우가 YMCA를 떠나면서 적극신앙단도 그 중심을 잃고 사실상 해체되었다.
적극신앙단 (積極信仰團)
적극신앙단은 1932년 6월 신흥우를 비롯한 기독교계 인물들이 ‘적극신앙’에 동의하여 설립한 단체이다. 피안적·관념적인 천국주의를 비판하고, 기독교 개혁, 민족의식 고취, 독립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새로운 생활 신앙 선언과 21개조 실천 강령을 구상하고, 선교사들과 목사들에게 개혁구상을 밝히며 협조를 요청하였다. 참여 인물들은 기호지역 출신 감리교와 장로교인들로 3·1운동 이후 YMCA, 신간회 등 여러 민족·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35년 신흥우가 YMCA를 떠나면서 적극신앙단도 그 중심을 잃고 사실상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