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심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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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선왕은 고려 제26대(재위: 1298, 1308~1313) 왕이다. 1298년(충렬왕 24) 충렬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즉위했으나, 왕비 계국대장공주와의 불화 및 관제 개편의 참월함 등이 문제가 되어 같은 해 폐위되었다. 충렬왕 사후 1308년(충렬왕 34)에 다시 왕위에 오른 후 개혁 교서를 반포하고 원에 가서 체재하였다. 1313년(충선왕 5) 왕위를 아들 충숙왕에게 물려준 후에도 고려 정치를 좌우하다가 1320년(충숙왕 7)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토번에 유배되면서 실각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원에서 사망하였다.
충선왕 (忠宣王)
충선왕은 고려 제26대(재위: 1298, 1308~1313) 왕이다. 1298년(충렬왕 24) 충렬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즉위했으나, 왕비 계국대장공주와의 불화 및 관제 개편의 참월함 등이 문제가 되어 같은 해 폐위되었다. 충렬왕 사후 1308년(충렬왕 34)에 다시 왕위에 오른 후 개혁 교서를 반포하고 원에 가서 체재하였다. 1313년(충선왕 5) 왕위를 아들 충숙왕에게 물려준 후에도 고려 정치를 좌우하다가 1320년(충숙왕 7)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토번에 유배되면서 실각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원에서 사망하였다.
부원세력은 원나라에 기대어 고려와 고려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정치세력이다. 부원배라고도 부른다. 몽골의 고려 침략에서 기원하였으며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이후 더욱 확대되었다. 몽골의 고려 침략과 고려 영토 점령에 적극 협조한 부류와 몽골의 고려 내정 간섭에 적극 협조해 고려의 정국을 혼란에 빠뜨린 부류가 있다. 원간섭기에 왕권을 위협하면서 고려 정국을 주도했던 정치세력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1356년 공민왕의 반원개혁 운동으로 다수가 제거되었으며, 신흥무장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에 의해 축출되었다.
부원세력 (附元勢力)
부원세력은 원나라에 기대어 고려와 고려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정치세력이다. 부원배라고도 부른다. 몽골의 고려 침략에서 기원하였으며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이후 더욱 확대되었다. 몽골의 고려 침략과 고려 영토 점령에 적극 협조한 부류와 몽골의 고려 내정 간섭에 적극 협조해 고려의 정국을 혼란에 빠뜨린 부류가 있다. 원간섭기에 왕권을 위협하면서 고려 정국을 주도했던 정치세력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1356년 공민왕의 반원개혁 운동으로 다수가 제거되었으며, 신흥무장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에 의해 축출되었다.
고려 후기에, 좌정승, 우정승, 상락후 등을 역임한 문신.
김영후 (金永煦)
고려 후기에, 좌정승, 우정승, 상락후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사헌집의 등을 역임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다 파면된 문신.
김천일 (金千鎰)
고려 후기에, 사헌집의 등을 역임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다 파면된 문신.
고려 후기에 언부총랑 · 판밀직 · 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위 (趙瑋)
고려 후기에 언부총랑 · 판밀직 · 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의 제25대 왕, 충렬왕의 첫째 왕자.
강양공 (江陽公)
고려의 제25대 왕, 충렬왕의 첫째 왕자.
고려 후기에, 우부대언,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봉천우 (奉天祐)
고려 후기에, 우부대언,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대언, 동지공거, 정당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
안규 (安珪)
고려 후기에, 대언, 동지공거, 정당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지신사, 밀직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인연 (金仁沇)
고려 후기에, 지신사, 밀직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충숙왕과 대립하던 심양왕 왕고를 돕다가 세력을 잃고 유배된 관리.
김온 (金溫)
고려 후기에, 충숙왕과 대립하던 심양왕 왕고를 돕다가 세력을 잃고 유배된 관리.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영해부사, 권정동성 등을 역임한 문신.
김지겸 (金之兼)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영해부사, 권정동성 등을 역임한 문신.
오잠은 고려 후기에 상의회의도감사, 삼사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간신이다. 지신사, 지밀직사사, 감찰대부 등을 거쳐 지도첨의사사에 올랐으나, 항상 충렬왕·충선왕 부자를 모함하여 이간시켰고, 어진 신하들을 모함하고 살해하여 많은 원망을 샀다. 원나라에 압송되어 안서(安西: 장안의 서쪽 변방)에 유배되었다. 충선왕 때 다시 등용되어 예문관대제학이 되었고, 삼사사, 찬성사에 이어 구성군에 봉해졌다. 1323년(충숙왕 10)에는 고려에 행성을 설치하여 원나라의 직할령으로 두어야 한다는 입성책동을 벌여 고려 측에 많은 해를 끼쳤다.
오잠 (吳潛)
오잠은 고려 후기에 상의회의도감사, 삼사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간신이다. 지신사, 지밀직사사, 감찰대부 등을 거쳐 지도첨의사사에 올랐으나, 항상 충렬왕·충선왕 부자를 모함하여 이간시켰고, 어진 신하들을 모함하고 살해하여 많은 원망을 샀다. 원나라에 압송되어 안서(安西: 장안의 서쪽 변방)에 유배되었다. 충선왕 때 다시 등용되어 예문관대제학이 되었고, 삼사사, 찬성사에 이어 구성군에 봉해졌다. 1323년(충숙왕 10)에는 고려에 행성을 설치하여 원나라의 직할령으로 두어야 한다는 입성책동을 벌여 고려 측에 많은 해를 끼쳤다.
허유전은 고려 후기에 밀직사사, 수첨의찬성사, 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63년(원종 4) 김구가 주관한 과거에 급제하였고, 충렬왕 말에 재추에 올랐으며, 세자(훗날의 충선왕)를 폐하려는 조정 대신들의 주장에 반대하여 세자의 지위를 보전하였다. 충숙왕 대에는 가락군에 봉해지고 최고위직인 정승에 이르렀다. 말년에는 티베트로 유배 간 충선왕의 귀환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심양왕과 그 일파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허유전 (許有全)
허유전은 고려 후기에 밀직사사, 수첨의찬성사, 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63년(원종 4) 김구가 주관한 과거에 급제하였고, 충렬왕 말에 재추에 올랐으며, 세자(훗날의 충선왕)를 폐하려는 조정 대신들의 주장에 반대하여 세자의 지위를 보전하였다. 충숙왕 대에는 가락군에 봉해지고 최고위직인 정승에 이르렀다. 말년에는 티베트로 유배 간 충선왕의 귀환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심양왕과 그 일파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