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여성독립운동가"
검색결과 총 10건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 임시의정원 의원, 근화회 회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독립운동가.
김마리아 (金瑪利亞)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 임시의정원 의원, 근화회 회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애국부인회 회장, 상해 한인여자청년동맹 간부 등을 역임한 교육자·독립운동가.
김순애 (金淳愛)
일제강점기 때, 대한애국부인회 회장, 상해 한인여자청년동맹 간부 등을 역임한 교육자·독립운동가.
대한제국기 때 의병가를 만들고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독립운동가이다. 16세 때 고흥유씨(高興柳氏) 유제원(柳濟遠)에게 출가했다. 1895년 시아버지 유홍석(柳弘錫)이 춘천과 가평 일대에서 의병 작전을 전개할 때, 윤희순은 「안사람의 의병가」 · 「병정의 노래」 등 수십 수의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직접 · 간접으로 춘천의병 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1935년 8월 1일 향년 76세로 만주땅에서 일생을 마쳤다. 1983년 8월 3일 대통령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윤희순 (尹熙順)
대한제국기 때 의병가를 만들고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독립운동가이다. 16세 때 고흥유씨(高興柳氏) 유제원(柳濟遠)에게 출가했다. 1895년 시아버지 유홍석(柳弘錫)이 춘천과 가평 일대에서 의병 작전을 전개할 때, 윤희순은 「안사람의 의병가」 · 「병정의 노래」 등 수십 수의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직접 · 간접으로 춘천의병 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1935년 8월 1일 향년 76세로 만주땅에서 일생을 마쳤다. 1983년 8월 3일 대통령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정종명은 일제강점기 간호사로 근우회 지명 집행위원, 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고종 33)에 태어났다. 전남 목포 출신으로 1922년 서울에서 여자고학생상조회를 조직하여 불우 여성에 대한 교육을 전담하였다.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1925년에 조선여성동우회를 조직하여 운영하였다. 1927년 신간회가 조직되자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계 여성을 망라한 근우회를 결성하여 항일과 계몽운동을 주도하였다. 근우회의 의장, 중앙집행위원, 검사위원에 선임되어 사회주의계 여성을 대표하면서 여성운동에 투신하였다.
정종명 (鄭鍾鳴)
정종명은 일제강점기 간호사로 근우회 지명 집행위원, 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고종 33)에 태어났다. 전남 목포 출신으로 1922년 서울에서 여자고학생상조회를 조직하여 불우 여성에 대한 교육을 전담하였다.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1925년에 조선여성동우회를 조직하여 운영하였다. 1927년 신간회가 조직되자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계 여성을 망라한 근우회를 결성하여 항일과 계몽운동을 주도하였다. 근우회의 의장, 중앙집행위원, 검사위원에 선임되어 사회주의계 여성을 대표하면서 여성운동에 투신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 참여하였고,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는 등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한 교육자·독립운동가.
황에스터 (黃Esther)
일제강점기 때,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 참여하였고,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는 등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한 교육자·독립운동가.
노영재는 일제강점기 중국 관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 한국혁명여성동맹, 조선민족혁명당 등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를 담당한 독립운동가이다.
노영재 (盧英哉)
노영재는 일제강점기 중국 관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 한국혁명여성동맹, 조선민족혁명당 등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를 담당한 독립운동가이다.
이의순은 일제강점기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에서 명동여학교와 삼일여학교 교사를 지냈고, 한인독립회와 상해한인애국부인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의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주선하였고, 지린성 용정촌 한인 청년들과 한국의 독립 방안을 모색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이의순 (李義橓)
이의순은 일제강점기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에서 명동여학교와 삼일여학교 교사를 지냈고, 한인독립회와 상해한인애국부인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의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주선하였고, 지린성 용정촌 한인 청년들과 한국의 독립 방안을 모색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대적 심리공작을 수행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중국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비서,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법무부 비서,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김정숙 (金貞淑)
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대적 심리공작을 수행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중국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비서,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법무부 비서,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민영숙은 일제강점기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및 외무부 직원으로 활동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2년 2월 9일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부원으로 선임된 이후 임시정부 법무부 총무과 과원, 외무부 정보과 과원, 회계검사원 조리원,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의 선전과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민영숙 (閔泳淑)
민영숙은 일제강점기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및 외무부 직원으로 활동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2년 2월 9일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부원으로 선임된 이후 임시정부 법무부 총무과 과원, 외무부 정보과 과원, 회계검사원 조리원,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의 선전과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신순호는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하여 한중 합동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립되자 참가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 참석하였으며,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를 거쳐 1945년 초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순호 (申順浩)
신순호는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하여 한중 합동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립되자 참가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 참석하였으며,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를 거쳐 1945년 초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