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영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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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의 영묘사를 관리한 관서.
영묘사성전 (靈廟寺成典)
삼국시대, 신라의 영묘사를 관리한 관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김유신의 처로서 영묘사에서 수도한 비구니.
법정 (法淨)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김유신의 처로서 영묘사에서 수도한 비구니.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의상의 제자가 되어 구족계를 받은 승려.
삼법 (三法)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의상의 제자가 되어 구족계를 받은 승려.
성전(成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영창궁과 왕실 사원의 건립, 운영, 제사의례 등을 지원하던 관부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영창궁을 비롯하여 사천왕사, 봉성사, 감은사, 봉덕사, 봉은사, 영묘사, 영흥사 등 왕실이 건립한 사원에 설치되었고, 금석문 자료로 볼 때 중대에는 황복사, 하대에는 황룡사에도 설치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한편 하대에는 일반 사찰에서 종과 탑의 조성을 위하여 임시로 만든 조직도 성전이라 칭하였다.
성전 (成典)
성전(成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영창궁과 왕실 사원의 건립, 운영, 제사의례 등을 지원하던 관부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영창궁을 비롯하여 사천왕사, 봉성사, 감은사, 봉덕사, 봉은사, 영묘사, 영흥사 등 왕실이 건립한 사원에 설치되었고, 금석문 자료로 볼 때 중대에는 황복사, 하대에는 황룡사에도 설치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한편 하대에는 일반 사찰에서 종과 탑의 조성을 위하여 임시로 만든 조직도 성전이라 칭하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신평리에 있는 신라 때의 지명.
여근곡 (女根谷)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신평리에 있는 신라 때의 지명.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선덕여왕 (善德女王)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삼국시대 신라의 제25대 진지왕 때의 승려.
진자 (眞慈)
삼국시대 신라의 제25대 진지왕 때의 승려.
혜공은 불교 대중화에 앞장선 7세기 신라의 승려이다. 천진공 집에서 일하던 노파의 아들이었는데, 출가 후 신통력이 있었고, 원효가 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갈 정도로 교학에도 밝았다. 특히 『조론』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 승조의 후신으로 불렸다고 한다. 9세기 흥륜사 금당에 모신 십성 가운데 한 명이다.
혜공 (惠空)
혜공은 불교 대중화에 앞장선 7세기 신라의 승려이다. 천진공 집에서 일하던 노파의 아들이었는데, 출가 후 신통력이 있었고, 원효가 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갈 정도로 교학에도 밝았다. 특히 『조론』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 승조의 후신으로 불렸다고 한다. 9세기 흥륜사 금당에 모신 십성 가운데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