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영창"
검색결과 총 33건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국왕으로 15년간(1608~1623) 재위하였으나, 정변을 맞아 폐위당한 인물이다. 부왕 선조의 핍박과 명나라의 세자 책봉 거부 등 숱한 난관을 뚫고 즉위하였다. 하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데 집착하면서 주로 대북 계열을 중용하였으며,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마침 명과 후금이 전쟁을 벌이자, 명과는 사대관계를 유지하되 후금과도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였다. 하지만 숭명배금 노선을 절대시한 신료들의 거센 반대가 장기화하면서 국가 행정이 사실상 마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했다.
광해군 (光海君)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국왕으로 15년간(1608~1623) 재위하였으나, 정변을 맞아 폐위당한 인물이다. 부왕 선조의 핍박과 명나라의 세자 책봉 거부 등 숱한 난관을 뚫고 즉위하였다. 하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데 집착하면서 주로 대북 계열을 중용하였으며,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마침 명과 후금이 전쟁을 벌이자, 명과는 사대관계를 유지하되 후금과도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였다. 하지만 숭명배금 노선을 절대시한 신료들의 거센 반대가 장기화하면서 국가 행정이 사실상 마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했다.
영창대군은 조선후기 제14대 선조의 열네째 아들인 왕자이다. 1606년(선조 39)에 태어나 1614년(광해군 6)에 사망했다. 선조의 아들 중 유일한 정비 소생으로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선조가 세자를 광해군에서 영창대군으로 바꾸려 하자 소북파가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선조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영창대군은 대북파의 미움만 사게 되었다. 1613년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 후로도 조야에서 구원의 상소가 이어지자 대북파 이이첨의 명을 받은 강화부사 정항이 이듬해에 살해했다.
영창대군 (永昌大君)
영창대군은 조선후기 제14대 선조의 열네째 아들인 왕자이다. 1606년(선조 39)에 태어나 1614년(광해군 6)에 사망했다. 선조의 아들 중 유일한 정비 소생으로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선조가 세자를 광해군에서 영창대군으로 바꾸려 하자 소북파가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선조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영창대군은 대북파의 미움만 사게 되었다. 1613년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 후로도 조야에서 구원의 상소가 이어지자 대북파 이이첨의 명을 받은 강화부사 정항이 이듬해에 살해했다.
인목왕후는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계비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과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 노씨의 딸이다. 1602년(선조 35) 15세에 선조의 계비가 되고 1603년에 정명공주(貞明公主)를,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로 영창대군이 유배되어 죽었고 본인은 폐위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었다.
인목왕후 (仁穆王后)
인목왕후는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계비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과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 노씨의 딸이다. 1602년(선조 35) 15세에 선조의 계비가 되고 1603년에 정명공주(貞明公主)를,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로 영창대군이 유배되어 죽었고 본인은 폐위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었다.
조선시대 예조판서, 대제학,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이호민 (李好閔)
조선시대 예조판서, 대제학,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해남 전라우수영(海南 全羅右水營)은 조선시대 수군 영진보성(營鎭堡城)에 설치된 전라 우도 수군의 본영이다. 앞바다는 명량(鳴梁) 또는 울돌목이라는 매우 좁은 해협이며, 전라우수영 앞으로 양도(羊島)가 있어 명량의 거친 물살을 막아준다. 또한 성의 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길목이 좁아지는 곳에 원문성(轅門城)을 축조하여 육지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해남 전라우수영은 1992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39호로 지정되었으며, 2016년 9월 30일에 국가지정문화재(현, 국가지정유산) 사적 제535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전라우수영 (海南 全羅右水營)
해남 전라우수영(海南 全羅右水營)은 조선시대 수군 영진보성(營鎭堡城)에 설치된 전라 우도 수군의 본영이다. 앞바다는 명량(鳴梁) 또는 울돌목이라는 매우 좁은 해협이며, 전라우수영 앞으로 양도(羊島)가 있어 명량의 거친 물살을 막아준다. 또한 성의 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길목이 좁아지는 곳에 원문성(轅門城)을 축조하여 육지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해남 전라우수영은 1992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39호로 지정되었으며, 2016년 9월 30일에 국가지정문화재(현, 국가지정유산) 사적 제535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강변칠우에 속한 문인.
서양갑 (徐羊甲)
조선시대 강변칠우에 속한 문인.
조선시대 호종공신 2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이성윤 (李誠胤)
조선시대 호종공신 2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조선 후기에, 호조좌랑, 예조정랑,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강대수 (姜大遂)
조선 후기에, 호조좌랑, 예조정랑,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호조판서, 형조판서,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명 (李溟)
조선 후기에, 호조판서, 형조판서,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성동고등학교 (城東高等學校)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조선 후기에, 진안현감, 정언, 경성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오장 (吳長)
조선 후기에, 진안현감, 정언, 경성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좌부승지, 밀양부사, 청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언영 (李彦英)
조선 후기에, 좌부승지, 밀양부사, 청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대사간, 경상도관찰사,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명웅 (李命雄)
조선 후기에, 대사간, 경상도관찰사,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광해군의 폭정과 조정을 비판하여 처형된 유생.
이창록 (李昌祿)
조선 후기에, 광해군의 폭정과 조정을 비판하여 처형된 유생.
조선 광해군 때 소북파 유영경(柳永慶) 등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정운공신 (定運功臣)
조선 광해군 때 소북파 유영경(柳永慶) 등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조선 중기에, 사헌부지평, 병조좌랑,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유홍 (李惟弘)
조선 중기에, 사헌부지평, 병조좌랑,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순천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원엽 (李元燁)
조선 후기에, 순천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해방 이후 주식회사 영창악기를 설립한 기업인.
김재섭 (金在燮)
해방 이후 주식회사 영창악기를 설립한 기업인.
조선 후기에, 진릉군에 봉해졌으며, 김직재의 무옥 사건에 연루되어 역모죄로 유배된 종실.
이태경 (李泰慶)
조선 후기에, 진릉군에 봉해졌으며, 김직재의 무옥 사건에 연루되어 역모죄로 유배된 종실.
조선 중기에, 고산현감, 흠곡현령, 평창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통 (李通)
조선 중기에, 고산현감, 흠곡현령, 평창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