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예기"
검색결과 총 13건
조선후기 문신·학자 최석정이 『예기』를 분류하여 1693년에 간행한 주석서. 유학서.
예기유편 (禮記類編)
조선후기 문신·학자 최석정이 『예기』를 분류하여 1693년에 간행한 주석서. 유학서.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재로가 『예기』 1758년에 간행한 주석서. 유학서.
예기보주 (禮記補註)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재로가 『예기』 1758년에 간행한 주석서. 유학서.
고려시대 의장(儀仗)에 쓰이는 예기(禮器)·병기(兵器) 등을 관장하던 관청.
위위시 (衛尉寺)
고려시대 의장(儀仗)에 쓰이는 예기(禮器)·병기(兵器) 등을 관장하던 관청.
고려 전기에, 서북면행영부도통, 추성문리공신상주국,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공신.
곽원 (郭元)
고려 전기에, 서북면행영부도통, 추성문리공신상주국,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공신.
삼패들이 1908년 이후 근대적으로 조직화되는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붙여졌던 부당한 이름.
경성예창기조합 (京城藝娼妓組合)
삼패들이 1908년 이후 근대적으로 조직화되는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붙여졌던 부당한 이름.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김재로의 무덤.
김재로 묘 (金在魯 墓)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김재로의 무덤.
1930년대 거행된 전국의 예기(藝妓) · 명창들의 국악 공연 및 경연대회이다. 전조선명창대회는 1930년대에만 10여 차례 열렸는데 명칭은 같지만 행사주최와 참가자가 모두 다른 일회성적인 행사였다. 대표적인 공연은 1930년 9월 22일∼23일 조선극장에서 열린 전조선명창대회이다. 전국의 각 지역 권번의 대표 기생들과 이름난 명창들의 공연이라 이틀간 경성방송국에서 중계방송했다. 여러 지역 사람들을 모아 공연하는 전조선명창대회 방식은 다른 지역 출신이 자연스럽게 참여함으로서 레파토리가 전국적으로 확장되는 효과가 있었다.
전조선명창대회 (全朝鮮名唱大會)
1930년대 거행된 전국의 예기(藝妓) · 명창들의 국악 공연 및 경연대회이다. 전조선명창대회는 1930년대에만 10여 차례 열렸는데 명칭은 같지만 행사주최와 참가자가 모두 다른 일회성적인 행사였다. 대표적인 공연은 1930년 9월 22일∼23일 조선극장에서 열린 전조선명창대회이다. 전국의 각 지역 권번의 대표 기생들과 이름난 명창들의 공연이라 이틀간 경성방송국에서 중계방송했다. 여러 지역 사람들을 모아 공연하는 전조선명창대회 방식은 다른 지역 출신이 자연스럽게 참여함으로서 레파토리가 전국적으로 확장되는 효과가 있었다.
삼례분휘는 삼례휘찬이라고도 하는데, 중국의 대표적 예서인 『주례』, 『의례』, 『예기』에서 중요한 문구를 뽑아 부문별로 편찬한 유학에 관한 책이다. 『지봉유설(芝峯類說)』과 『성호사설(星湖僿說)』이 각각 천문, 시령, 재이, 지리, 제국 및 천지문, 만물문, 인사문, 경사문, 시문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삼례분휘 또한 이와 같은 형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유학에 관한 책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삼례분휘 (三禮分彙)
삼례분휘는 삼례휘찬이라고도 하는데, 중국의 대표적 예서인 『주례』, 『의례』, 『예기』에서 중요한 문구를 뽑아 부문별로 편찬한 유학에 관한 책이다. 『지봉유설(芝峯類說)』과 『성호사설(星湖僿說)』이 각각 천문, 시령, 재이, 지리, 제국 및 천지문, 만물문, 인사문, 경사문, 시문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삼례분휘 또한 이와 같은 형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유학에 관한 책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 홍석주가 원나라 진호의 『예기집설』에 자신의 견해를 붙여서 편찬한 예서이다. 『예기집설』의 편성을 따르지 않고 6권으로 분류하여,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고서 자신의 견해를 논증하는 방식을 택했다. 서두에 1838년(헌종 4) 9월에 쓴 서문이 붙어있다. 마지막에 독례(讀禮)라는 항목이 있는데, 예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예의 쇠퇴와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폐해를 개선하고자 말년에 이 책을 지은 홍석주의 예의식과 경세관을 시대의 발전방향과 관련지어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예기집설지의 (禮記集說志疑)
조선 후기의 문신 홍석주가 원나라 진호의 『예기집설』에 자신의 견해를 붙여서 편찬한 예서이다. 『예기집설』의 편성을 따르지 않고 6권으로 분류하여,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고서 자신의 견해를 논증하는 방식을 택했다. 서두에 1838년(헌종 4) 9월에 쓴 서문이 붙어있다. 마지막에 독례(讀禮)라는 항목이 있는데, 예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예의 쇠퇴와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폐해를 개선하고자 말년에 이 책을 지은 홍석주의 예의식과 경세관을 시대의 발전방향과 관련지어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미상의 저자가, 『시경』·『서경』·『역경』·『예기』·『논어』·『맹자』 등 6경에서 글귀를 발췌하여 7권7책으로 엮은 유교서.
육경상람 (六經常覽)
미상의 저자가, 『시경』·『서경』·『역경』·『예기』·『논어』·『맹자』 등 6경에서 글귀를 발췌하여 7권7책으로 엮은 유교서.
권번은 1917년부터 사용된 기생조합의 일본식 명칭이다. 기생조합은 갑오개혁 이후 가무 여성들이 신분 제약에서 벗어나 근대적 전문 집단으로 자리 잡으며 형성되었다. 1910년대 이후 기생조합은 조직 체계를 갖추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917년 이후 명칭이 권번으로 바뀌고 일부는 주식회사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부터 일제의 통제와 전시 체제로 활동이 위축되었고, 해방 후 혼란 속에서 조직은 점차 해체되었다. 권번은 전통예술 전승·교육의 중심지였으며 신민요 창출 등 근대 대중음악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권번 (券番)
권번은 1917년부터 사용된 기생조합의 일본식 명칭이다. 기생조합은 갑오개혁 이후 가무 여성들이 신분 제약에서 벗어나 근대적 전문 집단으로 자리 잡으며 형성되었다. 1910년대 이후 기생조합은 조직 체계를 갖추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917년 이후 명칭이 권번으로 바뀌고 일부는 주식회사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부터 일제의 통제와 전시 체제로 활동이 위축되었고, 해방 후 혼란 속에서 조직은 점차 해체되었다. 권번은 전통예술 전승·교육의 중심지였으며 신민요 창출 등 근대 대중음악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예기의』는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이 『예기』에서 의문이 가는 사례를 제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한 예서이다. 1책의 필사본이다. 『예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의절과 변례 가운데 의심이 가는 사례를 제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안설로 정리하였다. 조선에서 『예기』는 『의례』·『주례』와 함께 『가례』를 고증하고 해석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책이다. 안정복 또한 『예기』의 사례를 검토하여 『가례』의 의절과 의미를 재해석하는데 활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예기의 (禮記疑)
『예기의』는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이 『예기』에서 의문이 가는 사례를 제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한 예서이다. 1책의 필사본이다. 『예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의절과 변례 가운데 의심이 가는 사례를 제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안설로 정리하였다. 조선에서 『예기』는 『의례』·『주례』와 함께 『가례』를 고증하고 해석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책이다. 안정복 또한 『예기』의 사례를 검토하여 『가례』의 의절과 의미를 재해석하는데 활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예기집설보』는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이 『예기집설』에서 불분명하거나 난해한 부분을 보완한 예서이다. 1권 1책의 필사본으로, 정확한 편찬 및 간행 경위는 확인할 수 없다. 『예기집설』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중국과 조선의 예서로 고증하고, 이를 근거로 안설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정리하였다. 특히 상례와 관련된 내용을 위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례』의 문제 의식을 가지고 저술된 예서라고 할 수 있다.
예기집설보 (禮記集說補)
『예기집설보』는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이 『예기집설』에서 불분명하거나 난해한 부분을 보완한 예서이다. 1권 1책의 필사본으로, 정확한 편찬 및 간행 경위는 확인할 수 없다. 『예기집설』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중국과 조선의 예서로 고증하고, 이를 근거로 안설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정리하였다. 특히 상례와 관련된 내용을 위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례』의 문제 의식을 가지고 저술된 예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