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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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은 조선시대에 일본인이 거주하던 마을로, 조선과 일본 간에 외교 의례와 무역이 이루어진 공간이다. 조선 전기에는 서울에 동평관(東平館)과 포소 왜관(浦所倭館)이 있었다. 포소 왜관은 조선 전기에는 왜관과 왜리(倭里)가 분리되어 있는 이원적 공간이었다면, 조선 후기에는 왜관과 왜리가 합쳐진 일원적 공간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왜관이 부산에만 있었으며, 조선의 대일정책에 따라 절영도 왜관, 두모포 왜관, 초량 왜관으로 변화하였다.
왜관 (倭館)
왜관은 조선시대에 일본인이 거주하던 마을로, 조선과 일본 간에 외교 의례와 무역이 이루어진 공간이다. 조선 전기에는 서울에 동평관(東平館)과 포소 왜관(浦所倭館)이 있었다. 포소 왜관은 조선 전기에는 왜관과 왜리(倭里)가 분리되어 있는 이원적 공간이었다면, 조선 후기에는 왜관과 왜리가 합쳐진 일원적 공간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왜관이 부산에만 있었으며, 조선의 대일정책에 따라 절영도 왜관, 두모포 왜관, 초량 왜관으로 변화하였다.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왜관초등학교 (倭館初等學校)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과 왜관읍을 연결하는 철교.
칠곡 왜관철교 (漆谷 倭館鐵橋)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과 왜관읍을 연결하는 철교.
조선 후기에, 대사성, 대사헌,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민응협 (閔應恊)
조선 후기에, 대사성, 대사헌,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동래 왜관을 중심으로 대외관계에 관한 사실을 편록한 외교서.
동래접왜사목초 (東萊接倭事目抄)
조선후기 동래 왜관을 중심으로 대외관계에 관한 사실을 편록한 외교서.
공작미는 조선 후기, 조선 정부가 공무역의 대가로 대마번에게 지급하던 쌀이다. 임진왜란이 직후 기유약조의 체결로 대일 무역이 재개되면서 조선 정부는 일본에서 수입하던 물품의 대가로 조선 무명인 공목(公木)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17세기 중반부터 일본 측의 요구로 공목의 일부를 쌀로 대신 지급했는데 이를 공작미라고 불렀다.
공작미 (公作米)
공작미는 조선 후기, 조선 정부가 공무역의 대가로 대마번에게 지급하던 쌀이다. 임진왜란이 직후 기유약조의 체결로 대일 무역이 재개되면서 조선 정부는 일본에서 수입하던 물품의 대가로 조선 무명인 공목(公木)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17세기 중반부터 일본 측의 요구로 공목의 일부를 쌀로 대신 지급했는데 이를 공작미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왜관(倭館)을 관리하던 왜인.
관수왜 (館守倭)
조선시대 왜관(倭館)을 관리하던 왜인.
나루터 취락은 하천·수로·해협을 건너기 위한 지점의 나루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취락이다. 하천·강의 폭이 좁거나 얕아서 건너편과 연락하기 쉬운 교통상의 요지에 형성된다. 교통로와 연결된 도하지점은 사람과 물자의 집합 장소가 되어 객주·주막 등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나루는 서울과 지방 중심지를 연결하는 하천에 발달하였다. 대표적인 나루터 취락으로는 예성강의 벽란도, 한강의 삼전도·노량진 등이 있다. 근래에는 철도 등 육상 교통의 발달로 나루터 기능은 거의 사라졌다. 이와 함께 나루터 취락도 대부분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나루터 취락 (나루터 聚落)
나루터 취락은 하천·수로·해협을 건너기 위한 지점의 나루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취락이다. 하천·강의 폭이 좁거나 얕아서 건너편과 연락하기 쉬운 교통상의 요지에 형성된다. 교통로와 연결된 도하지점은 사람과 물자의 집합 장소가 되어 객주·주막 등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나루는 서울과 지방 중심지를 연결하는 하천에 발달하였다. 대표적인 나루터 취락으로는 예성강의 벽란도, 한강의 삼전도·노량진 등이 있다. 근래에는 철도 등 육상 교통의 발달로 나루터 기능은 거의 사라졌다. 이와 함께 나루터 취락도 대부분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안용복은 조선 후기 어부이다. 두 차례 일본으로 가서 호키주 태수와 에도 막부를 상대로 울릉도와 독도에서 일본의 불법 고기잡이에 항의하여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조정으로부터 외교적 분쟁을 일으켰다는 범죄자로 비난을 받았으나, 18세기 이후 재조명되어 근대에는 애국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에는 강호 수역의 상징적인 인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안용복 (安龍福)
안용복은 조선 후기 어부이다. 두 차례 일본으로 가서 호키주 태수와 에도 막부를 상대로 울릉도와 독도에서 일본의 불법 고기잡이에 항의하여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조정으로부터 외교적 분쟁을 일으켰다는 범죄자로 비난을 받았으나, 18세기 이후 재조명되어 근대에는 애국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에는 강호 수역의 상징적인 인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지명.
오해야항 (吾海也項)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지명.
왜학훈도는 조선시대에 사역원에 속한 일본어 역관으로, 일본어 통역과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한 관리이다. 1393년(태조 2)에 정9품 관직으로 사역원에 2명을 두고,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하게 한 것이 시초이다. 조선 정부는 사역원 외에 외임(外任)으로 종9품직의 왜학훈도를 부산포와 제포에 파견하여 일본인들을 접대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사역원 소속으로 동래부에 파견되어 동래부와 왜관 간의 의사를 중개하고 통역을 담당하였다.
왜학훈도 (倭學訓導)
왜학훈도는 조선시대에 사역원에 속한 일본어 역관으로, 일본어 통역과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한 관리이다. 1393년(태조 2)에 정9품 관직으로 사역원에 2명을 두고,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하게 한 것이 시초이다. 조선 정부는 사역원 외에 외임(外任)으로 종9품직의 왜학훈도를 부산포와 제포에 파견하여 일본인들을 접대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사역원 소속으로 동래부에 파견되어 동래부와 왜관 간의 의사를 중개하고 통역을 담당하였다.
조선 후기 호조에 신설된 특별부서.
판별방 (版別房)
조선 후기 호조에 신설된 특별부서.
권쾌복은 일제강점기에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고 당수(黨首)로 추대되었다. 다혁당은 독서와 토론을 통해 학생들에게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으며, 각 분야에서 수재 양성 교육을 통해 독립운동의 역량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목표로 활동하였다.
권쾌복 (權快福)
권쾌복은 일제강점기에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고 당수(黨首)로 추대되었다. 다혁당은 독서와 토론을 통해 학생들에게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으며, 각 분야에서 수재 양성 교육을 통해 독립운동의 역량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목표로 활동하였다.
일본 에도시대의 쯔시마번주(對馬藩主) 소케(宗家)에 전래된 문서. 종가문서·외교문서.
소케문서 (宗家文書)
일본 에도시대의 쯔시마번주(對馬藩主) 소케(宗家)에 전래된 문서. 종가문서·외교문서.
부산광역시 용두산 부근에 있었던 조선후기 일본 사절에게 연회를 베풀던 건물. 연회장소.
연대청 (宴大廳)
부산광역시 용두산 부근에 있었던 조선후기 일본 사절에게 연회를 베풀던 건물. 연회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