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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은 통일신라시기에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에서 선진학술과 사상을 배우고 익히던 행위이다. 서학이라는 용어는 신라 하대에 최치원이 처음 사용했으며 ‘서(西)’는 중국을 가리킨다. 당시 중국은 당나라나 송나라로 신라 하대에는 서학이 크게 유행하였다. 서학활동은 선종을 공부하려는 구법승과 골품제로 사회적 진출에 제약을 받던 6두품 출신의 도당유학생이 많았다. 신라는 서학을 통해 음양학·병법·기술학 등을 익혔다. 신라의 정치·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신라의 문화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어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분야로 성립하지는 못하였다.
서학 (西學)
서학은 통일신라시기에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에서 선진학술과 사상을 배우고 익히던 행위이다. 서학이라는 용어는 신라 하대에 최치원이 처음 사용했으며 ‘서(西)’는 중국을 가리킨다. 당시 중국은 당나라나 송나라로 신라 하대에는 서학이 크게 유행하였다. 서학활동은 선종을 공부하려는 구법승과 골품제로 사회적 진출에 제약을 받던 6두품 출신의 도당유학생이 많았다. 신라는 서학을 통해 음양학·병법·기술학 등을 익혔다. 신라의 정치·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신라의 문화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어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분야로 성립하지는 못하였다.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은 백고좌법회의 근거가 되는 경전이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説仁王般若波羅蜜經)』과 불공이 번역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이 있다. 이 경에서는 국왕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공덕으로 국토를 보호할 수 있다고 하여 왕이 직접 반야바라밀을 외우고 법회를 열도록 요구한다. 이 법회는 인왕재(仁王齋), 인왕반야회(仁王般若會), 인왕도량(仁王道場), 백좌도랑(百座道場) 등으로도 불렸다. 613년(진평왕 35) 7월 황룡사에서 백고좌법회가 열린 이래 고려시대까지 자주 개최되었다.
인왕반야경 (仁王般若經)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은 백고좌법회의 근거가 되는 경전이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説仁王般若波羅蜜經)』과 불공이 번역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이 있다. 이 경에서는 국왕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공덕으로 국토를 보호할 수 있다고 하여 왕이 직접 반야바라밀을 외우고 법회를 열도록 요구한다. 이 법회는 인왕재(仁王齋), 인왕반야회(仁王般若會), 인왕도량(仁王道場), 백좌도랑(百座道場) 등으로도 불렸다. 613년(진평왕 35) 7월 황룡사에서 백고좌법회가 열린 이래 고려시대까지 자주 개최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 비봉산(飛鳳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혜통이 창건한 사찰.
비봉산 의곡사 (飛鳳山 義谷寺)
경상남도 진주시 비봉산(飛鳳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혜통이 창건한 사찰.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금광명최승왕경소』, 『범망경보살계본술기』 등을 저술한 승려.
승장 (勝莊)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금광명최승왕경소』, 『범망경보살계본술기』 등을 저술한 승려.
삼국시대 신라의 『금강반야경소』, 『인명입정리론소』 등을 저술한 승려.
도증 (道證)
삼국시대 신라의 『금강반야경소』, 『인명입정리론소』 등을 저술한 승려.
신라시대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발원문.
왕비김씨봉위선고급망형추도시곡원문 (王妃金氏奉爲先考及亡兄追禱施穀願文)
신라시대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발원문.
해방 이후 「원측의 저서와 사상」,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 등을 저술한 학자. 불교사학자.
조명기 (趙明基)
해방 이후 「원측의 저서와 사상」,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 등을 저술한 학자. 불교사학자.
『성유식론소』는 신라 출신 승려 원측이 현장 역 『성유식론』을 주석한 불교서이다. 전체 분량은 20권 혹은 10권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헌은 산실되어 현재 전하지 않지만, 그 내용의 일부가 다른 유식 논서에 인용 형태로 전하고 있다. 『성유식론소』는 일본에 전해져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일본 법상종의 초조 젠주[善珠, 724∼797]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확인된다.
성유식론소 (成唯識論疏)
『성유식론소』는 신라 출신 승려 원측이 현장 역 『성유식론』을 주석한 불교서이다. 전체 분량은 20권 혹은 10권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헌은 산실되어 현재 전하지 않지만, 그 내용의 일부가 다른 유식 논서에 인용 형태로 전하고 있다. 『성유식론소』는 일본에 전해져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일본 법상종의 초조 젠주[善珠, 724∼797]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확인된다.
원측은 통일신라시대에 『무량의경소』, 『불설반야바라밀다심경찬』, 『인왕경소』, 『해심밀경소』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613년에 신라에서 태어났다. 3세에 출가하였다고 하며, 15세에 당나라로 건너가서 평생을 살았다. 측천무후의 후대를 받으며 지냈고, 인도에서 귀국한 현장의 영향을 받아 유식사상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특히 현장 역 『해심밀경』에 대한 소는 티베트까지 전파되어 그들의 불교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696년 84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원측 (圓測)
원측은 통일신라시대에 『무량의경소』, 『불설반야바라밀다심경찬』, 『인왕경소』, 『해심밀경소』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613년에 신라에서 태어났다. 3세에 출가하였다고 하며, 15세에 당나라로 건너가서 평생을 살았다. 측천무후의 후대를 받으며 지냈고, 인도에서 귀국한 현장의 영향을 받아 유식사상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특히 현장 역 『해심밀경』에 대한 소는 티베트까지 전파되어 그들의 불교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696년 84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인왕반야경소』는 7세기 말 승려 원측이 『인왕경』을 풀이한 주석서인 불교 서적이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이 저본으로, 원측은 이 경의 전체 내용을 크게 교기인연분‧성교소설분‧의교봉행분 등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인왕반야경소 (仁王般若經疏)
『인왕반야경소』는 7세기 말 승려 원측이 『인왕경』을 풀이한 주석서인 불교 서적이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이 저본으로, 원측은 이 경의 전체 내용을 크게 교기인연분‧성교소설분‧의교봉행분 등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해심밀경소』는 신라 승려 원측이 현장이 한역한 『해심밀경』에 주석을 한 불교 서적이다. 현재 경도대 장경서원본, 대곡대본, 용곡대본 세 종류의 필사본이 존재하며, 원측의 유식사상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문헌이다.
해심밀경소 (解深密經疏)
『해심밀경소』는 신라 승려 원측이 현장이 한역한 『해심밀경』에 주석을 한 불교 서적이다. 현재 경도대 장경서원본, 대곡대본, 용곡대본 세 종류의 필사본이 존재하며, 원측의 유식사상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문헌이다.
인왕은 『인왕반야경』의 경전 제목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왕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다. 인도 전통에서 이상적인 왕을 전륜성왕이라 하는데 비해, 인왕 개념은 동아시아적 이상적 통치자 관념을 전제로 한다. 원측의 『인왕경』 주석서에서는 중생들의 선과 악을 참아 주어서 그들의 귀의처가 되는 왕이라는 의미로 설명된다.
인왕 (仁王)
인왕은 『인왕반야경』의 경전 제목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왕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다. 인도 전통에서 이상적인 왕을 전륜성왕이라 하는데 비해, 인왕 개념은 동아시아적 이상적 통치자 관념을 전제로 한다. 원측의 『인왕경』 주석서에서는 중생들의 선과 악을 참아 주어서 그들의 귀의처가 되는 왕이라는 의미로 설명된다.